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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인 A,B씨는 정규직원들과 다른 설 선물세트를 받았다
▲ 한 직장인이 설 선물세트를 들고 있다 비정규직인 A,B씨는 정규직원들과 다른 설 선물세트를 받았다
ⓒ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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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죠. 저는 치약이랑 비누 받았어요. 저 쪽(정규직)은 과일선물 받았다네요."

A씨는 로펌의 1년 차 계약직원이다. 그는 얼마 전 설 선물로 치약·비누 선물세트를 받았다. 정규직 직원들은 과일·곶감·굴비 중에서 선물을 골랐다.

"이런 차이구나, 새삼 느꼈어요. 나 같은 사람(비정규직)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고, 정규직은 고를 수 있는 거고."

A씨는 설을 앞두고 자신의 처지를 확인한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선물 하나 때문에 마음 상하는 비정규직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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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건설기업에 다니는 B씨도 며칠 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정규직 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며 설 선물 얘기를 하던 중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른 선물을 받았다는 걸 알았다. 

"회사가 집으로 설 선물을 배달했는데, 저는 식용유 세트를 받았거든요. 정규직 직원들은 마 한 뿌리, 홍삼 엑기스 세트 등을 이야기 해서 깜짝 놀랐죠."

B씨가 다른 부서 비정규직들에게 물으니 모두들 식용유를 받았다고 했다. B씨는 "퇴근도 야근도 같이 하고. 제가 일을 더하면 더했지 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막상 이런 취급을 당하니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B씨는 정규직 채용을 준비중이다.

"기분 더럽죠. 나도 같이 일하는 사람인데, 순식간에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어요."

몇년 전, 모 대학의 비정규직 직원으로 일한 C씨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퇴근할 때 정 직원들의 손엔 참치 선물세트 한 박스씩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거 몇 푼이나 한다고 이럴까 싶었어요. 그러면서도 이런 것 때문에 정규직 하려고 하는 거지 싶고."

결국 C씨는 1년 후 일을 그만뒀다. 꼭 명절 선물세트 때문은 아니지만 그때의 서러움도 한몫했다. 현재 다른 대학에서 비정규직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C씨는 며칠 전 다른 회사의 정규직 직원 채용공고에 지원해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신용평가사의 계열사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직원 D씨 역시 설 보너스 때문에 서러운 기억이 있다. D씨가 일하는 회사는 설 보너스로 상여금을 주는데 그 해 회사는 생각보다 많은 흑자를 냈다. 나중에 안 사실은 정규직 직원들끼리 회의실에 모여 비정규직의 설 보너스 처리를 논의했다는 것이다. 결국 정규직 직원들은 자신들이 조금 더 많은 보너스를 받기로 결정했다. D씨와 같은 계약직 직원들에게는 참치 세트 하나가 쥐어졌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각기 다른 설 선물세트를 받았다
▲ 설 선물세트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각기 다른 설 선물세트를 받았다
ⓒ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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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씨는 "세상에 계약직과 정규직, 두 종류의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며 "설 선물 때문에 한 순간에 무능력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바로 이직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제는 설이든 추석이든 마음 편하다"

6개월 전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입사한 E씨는 다가오는 설이 두렵지 않다. 입사 후 처음 맞았던 지난해 추석, 회사에서 명절 선물이라며 전통시장 상품권 30장이 나왔다. E씨는 장인·장모님, 부모님에게 상품권을 나눠드렸다. 다가올 설 선물은 상품권이 아니라 현금이라는 얘기가 있다. 뭐든 어떠랴. 부모님에게 옷 한 벌씩 사 드리고, 장인·장모님에게 용돈을 드릴 수 있으면 충분하다.

모연구소에서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일했던 작년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당시 연구소는 비정규직 직원에게 설날 선물을 지급하지 않았다. 정규직 박사들에게야 대우가 달랐겠지만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한두 번 함께 일하는 박사들이 사비를 털어 식용유 한 박스를 사주었다.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라고 스스로를 달랬지만 설을 앞두고 친구들이 명절 보너스를 자랑할 때 주눅 들었던 게 사실이다.

"이제는 설이든 추석이든 명절에 마음이 편해요. 가족들에게도 당당하고."

정규직 직원으로 처음 설을 맞이하는 E씨의 말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달 30일 전국 303개 기업을 대상으로 '2013년 설 연휴 및 상여금 실태조사'를 조사했다. 올해 설 상여금을 지급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응답기업의 72.3%가 '지급할 것'이라고 답했다. 기업 규모별로는 대기업의 76.7%, 중소기업 71.8%가 설 상여를 지급할 계획인 것으로 조사됐다. 설 상여 지급액은 평균 121만 원으로 전년 117만 원 대비 2.9% 증가한 액수다.

한편, 지난달 31일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비정규직(계약직·파견직·임시직 등 포함)은 지난해 8월 기준 591만 명에 달한다. 2011년 3월 577만 명, 2011년 8월 599만 명, 2012년 3월 580만 명으로 해마다 증감을 거듭하고 있다. 기간제와 특수고용 등도 비정규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노동계의 주장에 따르면 비정규직은 총 842만여 명에 이른다.

이번 설에는 또 얼마나 많은 비정규직들이 설 선물 때문에 차별을 겪었을까.

덧붙이는 글 | 신나리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설 선물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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