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글쓰는 것에 대한 간절함이 나를 이곳에 오게 한 것 같다."

1월 31일, 한적한 폐교를 다시 학교로 바꾸어놓은 인천시 강화군 '오마이스쿨'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라정현(40)씨는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올해로 15년째 이어져오는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이하 오기만). 달리는 버스는 라정현씨와 같이 '오기만'에 참가한 43기 수강생 32명으로 가득 찼고, 이들의 높은 취재 열기로 시끌벅적하다.

"이곳은 어떻게 오게 되었어요?"
"대선이 끝나고 '멘붕'이 왔는데, 이곳에 오면 '힐링'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왔어요."

이들은 2인이 짝꿍이 돼서 서로 묻고 답하고 한 번은 취재원이 되고 다시 기자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오마이뉴스>에서 나눠준 작은 취재수첩에 취재원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쓰려는 펜의 움직임은 갈수록 빨라진다. 1월 31일부터 2월 2일까지 2박 3일 동안 인천시 강화군 넙성마을 작은 폐교에 둥지를 튼 오마이스쿨에서 열린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 43기는 이렇게 버스 안 인터뷰에서부터 시작했다.

"기자의 기본은 가슴이 뛰는 것에서부터"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 43기 수강생들과 오연호 대표기자.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 43기 수강생들과 오연호 대표기자.
ⓒ 오마이스쿨

관련사진보기


10대에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수강생 32명이 모인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기자가 꿈인 학생에서부터 대학 학보사 기자, 세상을 위해 글을 쓰고 싶다는 30대 청년과 오기만을 통해 지난 대선 이후 지속된 아픔을 잊으려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의 깊이는 비슷했다.

오기만의 강좌는, 특출난 어느 개인이 기자를 하는 것이라는 관념을 깨고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고 선언한 <오마이뉴스>의 언론강좌다웠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는 "발로 뛰기 전에 가슴이 뛰어야 한다"는 자신의 지론을 강조하며 사전 취재의 중요성과 열정을 강조했다.

"글쓰기의 기본은 가슴이 뛰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해도 결국 변하지 않는 것은 사실과 진실이 승리한다는 것이다. 뉴스는 기자를 뛰게 하는 것이며 그것이 기자의 가슴까지 뛰게 하는 것이면 더욱 좋다."
"용기는 내가 취재한 사실에서부터 나오고 내 양심이 기사 쓰기를 명령할 것이다. 용기의 다른 말은 부지런한 취재."

3년 동안 아마추어 기자로 활동한 김정현씨는 "요즘 내가 쓴 글이 정말 진실한가에 대한 의문이 컸다. 그런데 오 대표기자의 말처럼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떨쳐낼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면서 "아직 다 풀린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평생 탐구해야 할 고민을 알게 된 것 같다"고 오 대표기자의 강좌를 들은 소감을 전했다.

이번 수강생 중 유일한 10대인 김상헌(19)씨는 "이곳에 오기 전에는 막연하게 정치부와 사회부에 들어가서 기자회견에서 빛나 보이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면서 "그런데 오 대표기자의 강연을 들으면서 기자는 쓰고 싶은 글을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쓸 때 빛나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오기만은 1998년 1기를 시작해서 현재까지 1100여 명의 시민들이 수강한 대표적인 '장수강좌'이다. 지난 34기부터는 직업 언론인을 꿈꾸는 청년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수강기회를 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신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2박 3일 동안 기사쓰기 강좌, 현장취재에서 중요한 점 등 기자로서의 기본 소양을 배우며 직접 기사를 작성해보고 현장 기자들로부터 첨삭을 받는다.

"꿈을 꾸고 노력하는 이를 보니 어느새 나도 시민기자"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 강좌 현장.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 강좌 현장.
ⓒ 오마이스쿨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오기만이 기자의 기본 소양만을 교육하지는 않는다. 특히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함께하는 2박 3일간의 공동체 생활은 소양 교육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특별한 배움을 선물한다.

오 대표기자는 "마감일에도 대기자들이 참여의사를 밝혀, 무리가 있지만 25명 정원을 32명으로 늘렸다"며 "분위기가 좋은 편이고 나이든 사람들도 지칠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오기만 43기의 특징을 설명했다.

수강생 김상헌씨도 "강좌도 좋았지만 여러 사람들이 꿈을 꾸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까 여기서 배우게 되는 것도 많다. 32명이 있으니까 오연호 대표기자를 포함해 33명에게 배워가는 기분이 든다"고 이번 강좌에 크게 만족했다. 기자를 꿈꾸는 강요한(27)씨도 "이번 강좌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을 들으면서 20대만이 기자를 할 수 있다는 기존의 생각을 지울 수 있었다"고 달라진 생각을 전했다.

젊은 수강생들의 이렇게 소감을 전한 배경에는 40~50대 비교적 연령이 높은 수강생들의 열기 때문이다. 모두 7명의 40~50대 수강생들은 강좌 내내 진지한 자세로 임했다. 그리고 젊은 수강생들과도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며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말하고 들으며 2박 3일 내내 분위기를 이끌었다.

서강대에서 연구교수로 있다는 정은실(40)씨는 "마흔이 되어서 오 대표기자의 가슴이 뛰어야 한다는 강연을 들으니 너무 놀랐고, 그 말에 집중했다"며 "젊은 친구들이 많이 오는 강좌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젊은 수강생들이 자기 분야에서 시민기자를 꿈꾸고 세상에 대한 비판과 관심을 갖는 것을 보고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내가 하고 싶은 것과 기쁨만을 생각했는데, 젊은 친구들이 오히려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것을 보고 많이 느꼈다"고 소감을 전했다.

시 한 편에 마음을 나누는 밤... "정말 좋다"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 43기 수강생이 지난 2박 3일의 일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 43기 수강생이 지난 2박 3일의 일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
ⓒ 이아지

관련사진보기


이번 오기만 일정의 백미는 둘째 날 밤에 있었던 막걸리 파티와 기사쓰기 실습. 막걸리 파티에서는 기존 '오기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시낭송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글쓰는 설렘이 이곳으로 자신을 이끈 것 같다고 강화로 오는 버스 안에서 고백한 라정현씨가 "외국에서는 이런 즐거운 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시낭송"이라면서 "여러분들에게 시 한 편 들려주고 싶은데 괜찮겠냐"고 제안했다. 이에 수강생들은 흔쾌히 승낙했고, 라정현씨는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낭송했다.

이에 올해 20살이 된 정자연씨도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생각난 시를 들려주고 싶다"면서 정호승 시인의 <그는>라는 시 한 편을 낭송했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김종훈씨도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이 정말 좋다"면서 황명길의 <이럴 수가 없다>를 낭송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순수의 전조>를 낭송한 민성욱(41)씨는 "시를 읽을 때 단어가 주는 어감과 여운을 여럿이 함께 느낄 수 있어 좋았다"면서 "모두 함께 노래를 부르는 기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오 대표기자는 "지금까지 오기만을 하면서 시낭송으로 분위기가 즐거웠던 적은 없었다"며 오기만 43기의 분위기에 놀라워했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기자와 글쓰기의 꿈을 함께 꾼 2박 3일 오기만. 모든 일정이 정리되고 수강생들은 두 편의 기사를 써보는 실습을 했다. 기사를 처음 써보는 수강생도 있었지만, 오마이스쿨 곳곳에서 서로를 인터뷰하면서 진지하게 기사를 썼다. 

김상헌씨는 모든 강좌를 마치고 "내 꿈은 퓰리처 상을 받는 것이다"라면서 "그러나 그 원대한 꿈보다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여러 사람을 대하면서 '이 정도 하면 되겠지'라는 마음을 가지지 않고, 굴하지 않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기자 혹은 글쓰기의 꿈을 품고 온 32명의 예비 기자들. 서로를 인터뷰하며 시작했던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 43기는 서로의 꿈을 나누며 예비 기자라는 딱지를 어느새 떼어버렸다. 이제 그들에게는 '시민기자'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지 않을까? '가슴 뛰는 기자가 되라', 앞으로 이들의 멋진 이름을 <오마이뉴스>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태그:#오기만, #시민기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