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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들은 끝내 눈물을 보였다. 15만4000볼트 고압 송전철탑 30미터 상공에 합판 한 장 위태롭게 걸쳐놓고, 고작 천막과 비닐로 유난히 추운 이번 겨울 한파를 견디고 있는 후배, 복기성(37). 지난해 11월 20일 밤에 올라가 해를 넘기고, 벌써 두 달이 넘었다는데 언제까지 저러고 있어야 하는 건지, 기약이 있기는 한 건지 알 수 없는데, 정작 당사자는 "잘 될 겁니다"라며 큰 목소리로 명랑하게 외친다.

철탑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문기주, 복기성, 한상균(왼쪽부터)씨가 방문자들에게 손을 흔들어보이고 있다.
 철탑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문기주, 복기성, 한상균(왼쪽부터)씨가 방문자들에게 손을 흔들어보이고 있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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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잘 먹어가 뭐야. 겨우. 멋있는 말 해주고 싶었는데…."

확성기에 대고 인사말을 하고 난 전용숙씨가 자조섞인 목소리로 되뇌이자, 곁에 있던 현범희씨가 말한다.

"밥 잘 먹는 게 젤로 중요하지. 그게 안되서 저기 올라가 있는 거 아냐."

그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돌아서 눈물을 훔친다.

"늦게 와서 미안해. 사랑해. 밥 잘먹어"

우리 지역이 고향인 기성씨가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송전탑 고공농성장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예산사람 43명이 13일과 20일 두 차례, 희망버스를 타고 기성씨를 만나러 갔다. 20일 2차 희망버스에는 기성씨가 예산에 있을 때 함께 활동했던 책마당 회원들이 주축을 이뤘다. 예산 뿐만 아니라 서울, 인천 등 외지로 삶터를 옮긴 선배들도 먼길 마다 않고 달려왔다.

고압 송전철탑 30미터 상공에 합판 한 장 걸쳐놓고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고압 송전철탑 30미터 상공에 합판 한 장 걸쳐놓고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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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이후 활동을 중지하고 있는 책마당 회원들이 아주 오랜만에 모인 자리다. 안부는 기성씨와의 확성기 대화를 통해 진행됐다.

"늦게 와서 미안하다. 고생해서 어쩌냐"
"회장님 오셨어요? 건강하시죠?"

"선생님 오셨어요? 많이 아프셨다면서요?"
"잘 회복하고 있다. 힘내고. 복기성 파이팅"

"장환이형이야. 멀리서 보려니 얼굴도 잘 안 보이네."
"형! 장가가셔야죠."
"나 장가가면 내려오냐?"
"그럼요."
"내 장가보다 네 일이 더 문제다."
"잘 견디고 웃으면서 내려가겠습니다."

그리고 기성씨를 향한 마음은 한동안 계속됐다.

"내일이라도 빨리 해결되서 내려왔으면 좋겠다."
"건강해야 할 거 한다."
"내려오면 같이 밥먹자."
"기성아, 누난 네편이야. 알지? 사랑해."
"기성아 누나왔어. 미안해. 밥 잘먹어"

지금까지 3000여명이 해고되고, 2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병들어 세상을 달리했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는 쌍용차 사태.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이슈가 됐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큰 과제가 된 절박한 현장에서 기성씨와 예산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나눈 대화는 거창한 내용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었다.

고향 예산으로 돌아가는 희망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철탑 위에서 손을 흔드는 기성씨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쌍용차사태 해결책 역시 오늘과 같은 관심과 걱정에서 시작하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순댕이, 고공농성장 악바리 되다

기성씨는 현재 쌍용차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을 맡고 있다. 그런데 복기성을 오래 알았던 책마당 사람들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그는 "순하고 착실하고 말없이 웃기만 하던 순댕이"라고 한다. 무엇이 그를 칼바람 부는 철탑 고공농성장에서 수십일을 버티는 악바리로 변하게 한 것일까?

기성씨는 "저도 쌍용차에 입사하기 전까지 노동운동이 뭔지 몰랐습니다. 2009년에 동료들과 함께 해고됐고, 저와 같이 일하던 후배의 죽음을 옆에서 보면서 이 자리까지 서게 됐습니다. 정리해고가 이렇게 엄청난 것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라고 말한다.

기성씨가 쌍용차 사내하청노동자로 입사한 것은 지난 2003년 9월이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의 절반 임금으로 살았고, 그밖의 처우나 근무조건 모두 차별된 환경이었지만 묵묵히 일했다. 2006년 약 500명의 하청노동자들이 해고된다. 2008년 말 쌍용차비정규직지회가 구성되고, 비정규직 350명이 다시 해고된다.

철탑이 있는 곳으로 큰 찻길을 하나 건너면 기성씨가 그토록 돌아가고파 하는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이 있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흰 연기를 보며 기성씨는 무슨 생각을 할까.
 철탑이 있는 곳으로 큰 찻길을 하나 건너면 기성씨가 그토록 돌아가고파 하는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이 있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흰 연기를 보며 기성씨는 무슨 생각을 할까.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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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9년, 먹튀자본의 실체가 드러나고 2646명이라는 초유의 정리해고 숫자가 발표되면서 노동자들의 잇딴 죽음이 시작된다. 2005년에 쌍용차를 인수했던 중국 상하이차는 4년 동안 투자 없이 기술만 빼내고는 회계조작 등을 통해 모든 경영 부실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한 뒤 법정관리 신청을 했고, 우리 정부는 어이없게도 이를 받아들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투쟁이 시작되고, 목숨을 건 86일 동안의 굴뚝농성, 파업과 정리해고, 계속되는 죽음, 경찰과 용역들의 진압, 노조원에 대한 회사 측의 수백억원 손해배상청구소송 같은 일련의 일들이 이어진다.

쌍용차는 2011년 다시 인도 마힌드라사에 인수돼 정상기업이 됐다. 마힌드라사는 먹튀자본인 상하이차와 마찬가지로 투자를 하지 않아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쌍용차의 생산과 판매대수는 금융위기 이전인 10만대를 넘어섰다.

딸 입학식에 꼭 가게 되기를

2차 예산희망버스가 다녀오고 닷새가 흐른 25일 현재, 기성씨는 철탑 상공에서 67일째를 보내고 있고, 정치권은 쌍용차사태의 해결을 위해 국정조사 여부를 여전히 '논의'하고 있다.

"쌍용차는 이미 한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가 됐습니다. 이제 더이상 갈등과 반목을 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치유돼야 하고, 그렇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전화기 속 기성씨의 목소리가 거센 바람소리에 묻혀 자꾸 멀어져 갔다.

며칠 풀렸던 날씨는 다시 영하 10도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서해바람이 불어오는 평택 철탑 고공농성장의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이하라고 했다.

기성씨의 첫 딸은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부인 전은숙씨는 "아이들이 요즘들어 아빠를 자꾸 찾는다"고 했다. 딸의 입학식장에서 기성씨가 가족들과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쌍용자동차 사태, #평택공장 송전탑 고공농성, #예산희망버스, #복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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