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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후보자로 지명받아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28일 오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리는 새누리당-인수위 첫 연석회의에 침석해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다.
 총리 후보자로 지명받아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28일 오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리는 새누리당-인수위 첫 연석회의에 침석해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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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기자들이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겸 인수위원장에게 물어본 내용입니다.

기자 :  아드님 모습이 공개되면서 병역면제 된 게 이해가 안 된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김용준 후보자 : "…."

기자 : 자녀에게 부동산을 편법증여 한 거 아니냐는 얘기도 있는데요?
김용준 후보자 : "…."

기자 : 판사 시절 부동산 투기했다는 얘기도 있는데요?
김용준 후보자 : (껄껄 웃고는 물어본 기자를 쳐다보며, 나즈막이) "뭐라고?"

기자 : 각종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용준 후보자 : "…," (차량에 탄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 의해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뒤 김 후보자 본인과 가족, 또 그 재산 등에 대해 여러가지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김 후보자는 "뭐라고?" 한마디로 제압해버립니다. 물어본 사람이 머쓱해질 정도죠.

사실, 이젠 좀 익숙해져 갑니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지난 10월 12일 김용준 후보자가 황우여·정몽준·김성주 위원장과 함께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 자격으로 기자간담회에 나섰을 때도 거의 비슷했습니다. 기자가 마이크를 잡고 물어본 건 '헌법재판소장을 지내신 분으로서, 5·16과 긴급조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느냐'였습니다.

당시에도 기자는 길지도 않은 내용의 질문을 반복해야 했고, 옆에 앉은 정몽준 선대위원장의 도움을 받아 질문의 요지를 파악한 김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평생 법조인으로, 재판관으로만 근무해서 정치적 문제에 대해선 식견도 없고 말씀드릴 능력도 없다. 5·16에 대한 평가는 벌써 40년, 50년이 지나서 어느 정도 학계나. 정치가들에 의해서 좋든 나쁘든 평가가 이뤄진 것으로 안다. 저도 그 이상 옳고 그런 것에 대해 더 이상 말씀드릴 게 없다."

그 다음, 기자가 김 위원장과 문답을 한 건 지난해 12월 31일입니다.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맡게 된 김용준 후보자는 인수위 분과가 9개로 이뤄진다는 내용, 3명의 인수위 대변인들의 직책을 정의해줬습니다. 당초 '인수위 수석 대변인에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에 박선규·조윤선'으로 발표됐던 걸 김 후보자가 '인수위 대변인에 윤창중, 당선인 대변인에 박선규·조윤선'으로 바로 잡아준 거죠.

기지가 물어본 건 '인수위원장이 오늘 설명한 내용은 기존에 발표된 내용을 바로잡는 건데, 애초에 윤창중 대변인이 언론에 설명을 잘했으면 이렇게 나설 필요가 없지 않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김 후보자는 "뭐라고?"라고 반응했고, 기자의 질문은 2번 정도 반복됐습니다. 질문하는 동안 김 후보자는 안경도 벗고 땀도 닦으면서 조윤선 대변인의 도움도 받았지만, 결국 그 질문엔 "내가 청력이 시원찮아서…"라면서 답을 주지 않았죠. 옆에 앉은 다른 기자가 "오늘 직접 나오신 이유는 뭡니까?"라고 큰 소리로 요약을 해주기도 했지만 결과는 그렇습니다.

그 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김 후보자가 청력이 좋지 않으니 질문을 미리 전달하면 어떨까?'. 그러나 기자회견의 핵심은 실시간으로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현재 답변자가 갖고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드러내도록 하는 겁니다. 미리 질문을 보내면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조절된 답변이 돌아올 건 뻔하기에 별로라는 생각입니다.

말 빠른 의원들, 인사청문회는 어떡하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곧 있을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때문이죠. 국회의원들 중에는 말이 빠른 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국정감사나 청문회에선 더 그런 편인데, 각자 질의시간은 한정돼 있고 그 안에서 질의도 하고 답변도 듣고, 자신의 주장도 펴야하기 때문이죠.

국회의원들이 이런 저런 의혹들을 제기하면서 답변을 요구할때, 김 후보자가 "뭐라고?"라거나 "잘 안 들린다. 다시 물어봐 달라"고 하면 의원들로선 맥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의혹들이 제기만 될 뿐 답변이 안되는 인사청문회가 돼 버리는 거죠.

그러나 귀가 잘 안들린다고 해서 국무총리라는 직책을 맡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눈이 안 보인다고 해도, 말을 못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장애가 있다고 해서 훌륭한 자질을 갖춘 이에게 국가의 중책을 맡지 말라고 하는 건 후보자 개인에게는 차별이요, 시민과 국가에게는 손실입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선 자막기계를 준비하는 게 좋겠습니다. 대선 후보들이 정책 발표에서 즐겨 쓰는 프롬프터도 좋고 큰 TV도 좋습니다. 의원들의 질의 내용을 바로바로 화면에 띄워서 김 후보자가 질문 내용을 알아볼 수 있게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김 후보자도 질문을 못 알아들어서 답변을 못하는 경우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IT강국'이라고 하고, ICT(정보통신기술)로 창조경제를 여는 걸 목표로 하는 미래창조과학부라는 거대 행정부처가 생길 대한민국이, 청력 때문에 국가의 중대사를 그르칠 순 없는 일입니다. 대한민국의 정보통신기술이 청력장애 정도는 손쉽게 극복할 역량은 되지 않습니까?

별로 어려울 것 같지도 않은 자막기계라는 '기술'을 통해 이번 인사청문회를 잘 치른다면, 앞으로는 어떤 장애도 주요 공직에 있어 결격 사유가 되지 않을 거라 봅니다. 김 후보자는 어릴 적 소아마비로 장애를 얻어 다리가 불편하지만 장애를 딛고 최연소 사법시험 합격, 대법관, 헌법재판소장까지 지낸 인물입니다. 아무쪼록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청력이 부족한 것 따윈 공직 수행에 아무 장애도 안 된다는 걸 입증한다면, 그야말로 '장애는 아무 것도 아니다'란 걸 다시 한번 세상에 입증하는 일이 될 겁니다.


태그:#김용준, #인사청문회, #자막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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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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