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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 한인 유학생 폭행사건을 '인종범죄'로 규정한 언론과 이를 비판한 다른 언론의 칼럼
 호주 한인 유학생 폭행사건을 '인종범죄'로 규정한 언론과 이를 비판한 다른 언론의 칼럼
ⓒ 동아일보-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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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휴가를 이용해 한국에 다녀왔다. 4년 반 만의 귀국. 반갑게 만나야 할 얼굴들이 많았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서 일상적으로 들을 수 있는 반가운 표현 외에 올해는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궁금한 질문'이 있었다. 예상하지 않았던 일은 아니다. 분명, 이번에는 '설명'이란 걸 장황하게 해야 할 일이 생길 줄 미리 알았다.

"호주에서는 한국 사람들을 타깃으로 폭행을 한다면서? 괜찮아? 위험하지 않아?"

요약하자면 그런 내용의 질문이다. '신문에도 났고, 방송에도 나오던데 왜 아니라고 하느냐, 뭘 그렇게 좋은 나라에서 온 것 같은 표정을 짓느냐, 안 됐다'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이다. 신문에도 났고 방송에서도 나오니 '맞는 말'이어야 한다. 그게 오히려 바라는 바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실제는 전혀 다르다. 한국인이 폭행의 타깃이 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최근 왜 이런 오해(결단코 오해라고 표현할 수 있다)가 불거져 나왔는지 그 이유를 모르지 않는다. 지난해 9월경 호주 멜버른에서 한인 유학생이 폭행을 당했고, 그 와중에 새끼손가락 골절의 부상을 입었다. 이 유학생은 이 같은 사실을 인터넷상에 올렸다.

그리고 그 진위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한국으로부터 많은 전화문의를 받았다. 멜버른에 취재를 올 것이라면서 현지 코디를 부탁하는 전화였다. 한국의 공중파 방송을 비롯한 매체들로부터 오는 문의였던 것이다. 하나같이 유학생 폭행 피해 사건이 주된 취재는 아니라고 했다. '인종차별문제'를 다루려고 하는데 멜버른에서도 취재를 하고 싶다면서 특히 최근 이러저러한 폭행 사건도 있었으니 취재거리가 많을 거라고 했다.

인종차별 취재 위해 각본따라 연기까지... 이게 최선입니까?

그렇다면 다각도의 취재를 할 수 있도록 인권센터(Human Rights Centre) 등을 섭외하겠다고 했더니 다소 난감한 기색을 표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인종차별주의 발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섭외해주세요."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메일과 전화로 설왕설래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인종차별을 취재하실 생각이라면 한국에서 하시지 그러세요. 보도되는 걸 보면 한국의 농촌 등지에서 (이주민들에 대해) 윤리와 도덕성이 땅에 떨어져버릴 만큼의 인종차별이 일어나던데…. 그러니 현지에서 인종차별 취재하시면 더 빠를 것 같은데."

결국 비아냥으로 갈 때쯤 되었을 때 "오셔서 현지 분위기를 스스로 느껴보시고 길거리에서 무작위 인터뷰를 하세요. 그래야 제대로 보도가 될 것 같습니다. 나도 실제 상황이 알고 싶습니다"라는 내 말에 일단 그렇게 하겠노라는 답을 얻었다. 하지만 취재를 온 팀들의 방향은 모두 한 곳으로 모아지고 있었다.

"인종차별 발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섭외해주시죠."
"그런 발언을 하면 처벌받아요. 누가 그런 말을 하겠다고 나서겠어요. 게다가 저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아시안들에 호감을 가진 걸 텐데 그렇게 말을 하겠어요? 물론 여기 집주인들 중에 인도 사람이나 중국인에게 세놓는 걸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대요. 온 집안에 기름때가 끼고 카레 냄새가 너무 독하게 배어들기 때문이라고요. 하지만 그런 이유라고 말을 하면 안 되니까 그런 표현을 하지 않는다고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얼굴이 환해지는 취재팀 대표를 보며 의아했다. 내 의아한 표정에는 아랑곳 없이 그는 설명을 했다.

"부동산 하는 친구 사무실에 가서, 동양인이 아닌 여기 현지 직원 한 분에게 부탁을 합시다. 전화받는 신을 하나 찍고요, 그리고 전화 끊으면서 카메라를 향해서 지금 인도 사람이 세 들어오려고 하니까 주인이 인도 사람이라 안 된다고 말했다고 설명을 하는 거죠."
"이게 최선입니까?"

화가 나는 것을 꾹 참고 안 된다고 했다. 첫째 이유는 그런 '연기자'를 섭외할 자신이 없다는 것. 아무도 그런 연기를 하려 들지 않을 것이며 나 자신도 괜히 우스운 사람으로 비쳐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고, 둘째 이유는 '시사 보도'를 왜 '그 따위'로 하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왜 각본을 만들어야 하죠? 지금 드라마 찍는 거 아니잖아요. '보도'하러 오신 거 아닌가요?"

결국 나는 이번에 문의 들어온 모든 취재를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철저히 '현지 코디' 일에만 충실할 수 있는 후배들에게 모두 넘겼다. 공정한 설명을 위해 기관 섭외를 여러 군데 했던 것에 대한 보수도 물론 받지 않았다.

"왜 각본을 만들어야 하죠? 지금 드라마 찍는 거 아니잖아요"

취재팀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서로 경쟁을 해야 하고, 뒷북 치는 보도도 아니어야 하고, 보다 자극적이고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그리고 '구독자'를 확 늘릴 수 있는 방송이나 신문, 잡지를 만들어야 하겠지. "우리도 그런 짜여진 보도를 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하는 그 말도 진심으로 여겼다. 그러면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보려고 애썼다. '비싼 제작비' 들여가며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왔는데 '뭔가 눈과 귀를 끌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어 가야 하겠지.

하지만 그 넓디 넓은 '이해심'보다 더 가슴을 짓누른 것은 현재 한국 여론을 이런 '언론'이 주도하고 있으니 한국이 '탈도 많고 문제도 많은' 나라가 되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슬픔이었다. 조용히 와서 이곳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이름을 심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음악, 미술, 운동, 영화… 크고 작게 한국인의 긍지를 알리고 '친한파'를 최소한 한 명이라도 확보해놓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 정말 눈물나게 고맙고 자랑스러워 따뜻한 차 한잔이라도 정성껏 대접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진심을 다해 해야 할 일을 하고 떠나는 정치인들도 봤다(거들먹에서 끝나는 '나라 일 보시는 높은 분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진심'을 보여준 사람들도 많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렇게 '국민'들이 열심히 쌓아놓은 국격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일들이 내 조국에서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다.

언론 탄압을 비롯해 외국인들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는데 막상 '한국인'들은 모른다. 그것도 한국을 대표하는(?) 주류 언론에 의지하는 '지식인'들이 더 그렇다. 편협된 사고(아니면 세뇌?)나 신문 보도에서 얻은 '지식'을 그저 무조건으로 휘두른다. 그리고 그렇게 믿어 마지 않는 매체에서 "한국인을 타깃으로 하는 폭행이 급증"했다고 하니 이곳에 사는 한인들을 안쓰럽게 쳐다보는 것이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비슷하다. 동네 불량배도 있고, 사소한 시비가 주먹다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종차별주의자도 분명 존재는 한다. 하지만 유수의 일간지(!)나 공중파 방송(!) 이 호들갑스럽게 보도한, 그런 일은 없다.

내가 도와줘야 할 일이 너무 많아도 좋으니 '짜여진 이야기가 없어서 답답한' 취재팀들을 만나고 싶다. 몇 년 전 큰 산불로 인한 피해를 취재하러 왔던 MBC의 PD처럼. 그 PD도 '땅을 치며 통곡하고 모든 걸 다 잃었다고 몸부림치며 우는' 피해자의 모습을 담고 싶어했다. 하지만 난민촌에 모인 피해자들이 모두 웃으면서 취재에 응하자 그걸 그대로 담았다. "자신보다 더 힘든 일을 당한 사람도 있다면서 담담하게 새로 앞날을 준비하는 피해자들의 모습" 그대로 다른 감동을 줄 수도 있겠다고 하면서.

'좋게 보도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사실대로 보도하는' 한국언론을 보고 싶다. TV 앞에 앉아 쓰는 연예 기사, '작가'가 필요한 심층 취재 보도…. 이제는 '독자'와 '시청자'들의 수준을 두려워할 줄 아는 분위기가 생길만 하다고 믿고 싶다. 우리나라는 그만 한 수준이 충분히 되어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호주한인폭행#한국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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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민 45 년차. 세상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고 그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사를 찾아 쓰고 싶은 사람. 2021 세계 한인의 날 대통령 표창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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