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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깨친 할머니들이 쓴 글. 〈세상이 달라졌어요〉에 실린 글이다.
 한글을 깨친 할머니들이 쓴 글. 〈세상이 달라졌어요〉에 실린 글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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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배운 뒤무터는 거리에 다니면서 가판을 읽고 식당을 찾아가고 딸들이 써 둔 편지도 읽으니 너무 좋다. 글을 전혀 모르는 친구들을 보면 내가 대견하게 느껴진다. 얖으로 더 열심히 배워 책을 줄줄 읽고 손자들에게 편지도 쓰고 싶다.

늘그막에 한글을 익힌 강덕자(73)할머니의 소감글이다.

시장에서 동네 사람을 놓치면 사오리 길을 걸어서 집에 오니 겁이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글을 알고부터는 버스를 타고 아들 집에도 가고 딸 집에도 갑니다. (중략) 이제는 농협에도 자신있게 들어가 청구서를 써서 여금을 찾습니다. 전기요금 청구서를 보고 금액이 얼마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환한 돋보기를 쓴 것처럼 세상이 밝습니다.

같은 처지에 놓였던 김대방(75)할머니의 글 <선생님 감사합니다>의 일부분이다.

문해학교 할머니들의 생활글을 책으로 묶은 이임순 씨. 달라진 세상을 사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문해학교 할머니들의 생활글을 책으로 묶은 이임순 씨. 달라진 세상을 사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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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학교 할머니들의 글모음집 〈세상이 달라졌어요〉의 앞표지.
 문해학교 할머니들의 글모음집 〈세상이 달라졌어요〉의 앞표지.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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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할머니들의 글과 그림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이가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전남 광양시 광양읍에 사는 이임순(61·광양아카데미어린이집 원감)씨.

개인사정으로 3년 동안 해왔던 문해(文解)학교 교사를 그만두면서 할머니들한테 해줄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생각해낸 것이 바로 이 책, <세상이 달라졌어요>다.

"저는 어머니들한테 글을 가르쳐줬을 뿐인데, 어머니들은 저에게 너무나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셨어요. 그동안 진 빚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책으로 엮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이씨의 말이다. 그는 바로 (재)전남문화예술재단의 문을 두드렸다. 운 좋게도 문예진흥기금(10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책을 만드는 데 필요한 나머지 돈은 개인적으로 해결할 생각이었다.

이씨는 한편으로 원고를 수집했다. 할머니들이 썼던 일기와 편지글, 그리고 수업시간에 그렸던 그림을 모았다. 언뜻 유치원생의 글과 그림처럼 보였지만 거기에는 할머니들의 한과 설움, 눈물이 배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책에 실은 게 일기와 편지 등 글 79편, 그림 70편이다. 잘못 쓴 글자도 있었지만 손대지 않고 그대로 실었다. 글을 익히면서 같이 찍었던 사진도 18장을 골랐다. 할머니들과의 생활 이야기를 쓴 이씨 자신의 수필 3편도 덤으로 담았다. 분량이 모두 164쪽에 이르렀다.

광양 현월마을 할머니들의 문해교육 모습. 지난 한 해 동안 마을회관에서 진행됐다. 〈세상이 달라졌어요〉의 주인공들이다.
 광양 현월마을 할머니들의 문해교육 모습. 지난 한 해 동안 마을회관에서 진행됐다. 〈세상이 달라졌어요〉의 주인공들이다.
ⓒ 이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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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학교 할머니들의 〈세상이 달라졌어요〉 출판기념회. 할머니들이 책 한 권씩을 들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한 할머니가 책을 들고 감격에 겨워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이다.
 문해학교 할머니들의 〈세상이 달라졌어요〉 출판기념회. 할머니들이 책 한 권씩을 들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한 할머니가 책을 들고 감격에 겨워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이다.
ⓒ 이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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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마을회관에서 약간의 다과를 준비해 놓고 할머니들과 함께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할머니들은 책장을 넘기고 읽으며 "이 글을 정말 내가 썼냐"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기뻐했다. 감격의 눈물을 훔치는 할머니도 있었다. 이씨 자신도 뿌듯했다.

이씨는 "예전엔 식당의 메뉴판을 읽지 못해 옆사람이 주문한 것만 시켜서 먹었는데 지금은 나 먹고 싶은 것을 골라서 주문한다거나, 농협에 가더라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청구서를 써달라고 했는데 지금은 청구서를 직접 쓴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문해교사로 일했다는 게 정말 뿌듯하다"면서 "앞으로 문해학교가 더 활성화돼서 모든 어르신들이 달라진 세상을 체험하며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임순 씨가 문해교육 할머니들의 글모음집 〈세상이 달라졌어요〉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임순 씨가 문해교육 할머니들의 글모음집 〈세상이 달라졌어요〉를 들어보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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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라남도 도정 소식지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세상이달라졌어요, #이임순, #문해교육, #현월마을, #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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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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