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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의 겨울 풍경중 제1경을 꼽으라면 저는 V자 편대를 이루어 머리 위를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뽑겠습니다. 보통은 수십 미터 길이, 수십 마리로 이루어진 편대로 움직이지만 때로는 헤이리 하늘을 모두 덮을 수백 미터짜리 편대를 이루어 움직이기도 합니다.   

도시민이 이 편대를 처음 대하면 감동은 충격에 가깝습니다. 대부분 걸음을 멈추고 '아~!'라는 탄성 한마디 외에는 말을 잊지 못합니다.

겨울철새들이 비행하는 편대를 보면 늘 가슴이 설렌다.
 겨울철새들이 비행하는 편대를 보면 늘 가슴이 설렌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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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색색~'하는 비행소리를 내며 제 머리 바로 위를 지나가는 이 대형은 오래 전 이곳에서 첫 대면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저를 꼼짝할 수 없도록 얼어붙게 만듭니다.

가만히 서있으면 '색색'하는 날갯짓 소리까지 들를 수 있다. 이들의 비행속도는 우리의 짐작보다 훨씬 빠르다.
 가만히 서있으면 '색색'하는 날갯짓 소리까지 들를 수 있다. 이들의 비행속도는 우리의 짐작보다 훨씬 빠르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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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큰 갯벌이 형성된 강 하구지역과 고개 너머의 금산리, 만우리, 축현리, 갈현리의 넓은 들판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겨울철새들이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강 하구의 개활지는 이들에게 안전한 서식장소를 제공한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강 하구의 개활지는 이들에게 안전한 서식장소를 제공한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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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밤에 천적으로부터 안전한 한강과 임진강의 갯벌 개활지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이면 거대한 대오를 이루어 겨울 휴경지인 빈 들에서의 먹이 활동을 위해 헤이리 하늘을 날아서 뒤쪽 너른 들로 갑니다.

헤이리 하늘을 지나는 철새들의 V자 편대
 헤이리 하늘을 지나는 철새들의 V자 편대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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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서 벼이삭과 벌레들을 찾아 먹으며서 낮시간을 보낸 이들은 해가 기울면 다시 서쪽의 강 갯벌로 가기위해 아침과는 반대방향으로 비행을 합니다.

헤이리 뒤쪽들에서의 먹이활동을 마치고 강으로 가고 있는 긴 대형의 철새들
 헤이리 뒤쪽들에서의 먹이활동을 마치고 강으로 가고 있는 긴 대형의 철새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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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이런 활동은 4월 봄과 함께 끝이 납니다. 이들은 다시 이곳 월동지를 떠나 시베리아쪽으로 북진합니다. 이들을 다시 보기위해서는 가을이 깊어지는 때를 기다려야합니다. 한반도의 남쪽은 10월 중·하순을 기다려야 하지만 헤이리에서는 빠르면 10월 초순에도 이들의 행렬과 첫 대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봄에도 가장 늦게까지 남쪽에서 올라오는 행렬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월동하는 새들과 더 남쪽에서 월동하는 새들이 통과하는 길목이기도 한 헤이리가 남한의 가장 북쪽 전방에 위치한 덕에 누리는 지리적 혜택입니다.

마을 앞 무논이 언 곳에 썰매를 탈 곳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
 마을 앞 무논이 언 곳에 썰매를 탈 곳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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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기러기, 큰기러기, 흰이마기러기 등 기러기들과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개리 등 오리류 외에도 재두루미와 독수리 등 수많은 겨울철새들이 이 지역의 겨울을 생동감 있고 격조 있게 만들어줍니다.

갈현리 들판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철새들
 갈현리 들판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철새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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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주로 가을걷이 후의 논에서 먹이를 찾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 논이 이들에게는 먹이 창고인 셈이지요. 하지만 이 겨울철새들의 먹이창고는 해가 거듭될수록 제 역할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가을 추수 후 볏짚을 흰색 비닐로 돌돌 말아서 발효시킵니다. 이 '볏짚 곤포 사일리지'를 만드는 것은 소의 여물로 사용하기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추수 이후에도 논에서 볏짚을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추수와 함께 볏짚들은 바로 소의 여물로 사용될 곤포 사일리지로 만들어진다.
 추수와 함께 볏짚들은 바로 소의 여물로 사용될 곤포 사일리지로 만들어진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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볏짚은 낱알 외에도 벌레들이 겨울을 나기위해 볏짚에 깃들기 때문에 먹이의 공급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축산농가의 수요에 따라 이제 겨울에도 들판에서 볏짚을 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육식 습관이 축산농가의 대형화를 부추겼고 이 기업형 목축은 들판의 볏짚조차 모조리 거두어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결국 오늘밤 우리 식탁의 쇠고기가 겨울철새들에게 시련을 안기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게다다 무논으로 두는 경우도 드물어졌습니다. 겨울 휴경기에 논에 물을 빼지 않고 그대로 두는 간단한 일만으로 습지에 서식하는 수많은 철새들에게 안락한 월동 보금자리가 됩니다.

겨울의 빈 들. 텅 비어보이는 이 들이 단순히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생태계의 현장이다.
 겨울의 빈 들. 텅 비어보이는 이 들이 단순히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생태계의 현장이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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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무논의 경우 물의 보온과 축열효과 때문에 담수생물이 풍부한 생태계를 이루고 겨울 철새들에게 먹이를 공급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휴경기에 논을 갈아엎지 않는 것만으로도 겨울철새들의 먹이 시름을 들어주는 일이 됩니다. 쟁기질이 된 논에서는 기러기들이 볍씨는커녕 풀씨 하나도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농산물을 수확하면서 모조리 다 거두지는 않았습니다. 거둔 것조차도 고수레를 통해 첫술을 먼저 자연으로 되돌려주었고 스님들의 공양에서도 식전에 축생에게 먹일 음식을 덜어 놓았고, 식후에는 아귀에게 줄 것까지 남겼습니다.   

자신이 수확한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자연과 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으로 여겼던 조상님의 넉넉한 마음이 갈현리 들판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기르기 떼를 보면서 더욱 간절해집니다.

들판에서 먹이활동중인 겨울철새들
 들판에서 먹이활동중인 겨울철새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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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겨울철새, #헤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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