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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시작한 지 거의 10년이 지났어요, 저는 10년이면 어떻게든 문제가 풀릴 줄 알았는데, 아직도 제도적으로 개선이 안 된 거죠. 앞으로는 이런 가이드북이 필요 없는 세상이 와야 할 텐데..." (한홍구 평화박물관 상임이사)

지난 18일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자치공간 민중의 집에서 '병역거부가이드북'(개정판) 출간 기념 행사가 열렸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와 현재 고민하고 있는 이 40여 명이 함께 한 이날 행사는 병역거부자인 이길준·안지환씨 등 네 명의 '사색(四色)' 토크쇼로 진행됐다. 이들은 병역거부 후 겪은 교도소 경험담과 관련 질의응답을 나눴다. 또 중간 쉬는 시간에는 기타 연주를 하는 등 편안한 분위기에서 행사가 계속됐다.

출간기념 행사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왼쪽부터 나동혁·김도형·이길준·안지환·여옥씨.
 출간기념 행사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왼쪽부터 나동혁·김도형·이길준·안지환·여옥씨.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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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종교·사상·양심 등의 이유로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대안으로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했고 2007년 노무현 정부는 이에 대해 허용할 방침이라고 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백지화됐다. 병역거부 양심수는 2012년 6월 기준으로 740명이었다.

이번 가이드북을 기획한 '전쟁없는 세상' 여옥 활동가는 "병역거부를 고민하고 있는 분들게 현실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병역거부라고 하면 다들 어렵고 무겁게만 생각하는데, 실제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와 똑같은 보통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라 덧붙였다. 2004년 7월 처음 발간돼 병역거부 '절차' 소개에 초점을 맞춘 가이드북과 달리, 이번 개정판은 병역거부자들의 실제 생활 및 거부 과정에서의 생생한 고민들을 담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 결심부터 출소까지

8년 5개월 만에 개정된 '병역거부가이드북'의 한 페이지. 병역거부 절차를 표로 상세히 정리했다.
 8년 5개월 만에 개정된 '병역거부가이드북'의 한 페이지. 병역거부 절차를 표로 상세히 정리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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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출소한 안지환씨는 2006년 5월 '평택 대추리 사태(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시민단체와 군인·전경이 충돌)'에서 국가 폭력을 목격하면서 병역거부를 결심하게 됐다. 안씨는 "병역거부를 하다 보면 '나는 왜 대체 여기에 있는 거지?'라는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며 "스스로에게 매몰되지 말고, 여러분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감당하기 덜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발언 중인 안지환씨는 2010년 병역거부를 선언해 지난해 봄 출소했다.
 발언 중인 안지환씨는 2010년 병역거부를 선언해 지난해 봄 출소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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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쇼 진행을 맡은 나동혁씨 역시 2004년 11월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선배'다. 그는 청중들에게 "살면서 한 번도 스스로가 소수자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병역거부를 하면서 나 자신조차 추스를 수 없는 미약한 존재라는 걸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이후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과적으로는 주위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는 '축복'이 됐다"고 말했다.  

병역거부자는 보통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하게 된다. 그간 병역거부자들과 상담해온 여옥 활동가는 "감옥에 갈 것을 결심한 사람도 실제로 들어가면 힘들어한다"며 "가기 전에 반드시 먼저 감옥이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일지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거부를 하는 본인의 신념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부모님 등 다른 사람들이 겪을 고통과 슬픔도 돌아보고 챙기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군대 대신 감옥... 총 대신 평화 선택한 사람들

23세 당시 입영통지서를 받은 뒤부터 양심적 병역거부를 고민했다는 임아무개(28)씨는 "실제로 먼저 경험해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도움이 된다"며 "그래도 병역 거부를 선택하고 실행하는 건 결국 나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참가자는 "병역거부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가족들을 설득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이에 병역거부자들은 "(병역거부는) 어떻게든 부모님 가슴에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일이니 평소에 효도하자"며 "부모님 심정을 헤아려보고 진심으로 대화하려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토크쇼가 끝난 후에도 병역거부를 고민해온 참가자들의 질문이 1시간가량 이어졌다.
 토크쇼가 끝난 후에도 병역거부를 고민해온 참가자들의 질문이 1시간가량 이어졌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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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양심수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나동혁 활동가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지 군대를 피해 편하게 살려고 (병역거부를)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고생하게 된다"며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존중해 달라'는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병역거부를 경험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다른 이들과 '함께할 것'을 요구했다. 안지환씨는 "저 스스로도 병역거부 전에는 지나치게 스스로에게 매몰돼 있었다, 하지만 (교도소) 안에서 사람들 덕분에 '연대의 힘'을 많이 느끼면서 사회적 시선을 많이 배웠다"며 "힘든 상황이 닥쳐도 연대의 힘을 꼭 기억하시라"고 당부했다.

여옥 활동가는 "구호가 아닌, 삶에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병역거부"라며 "이건 전쟁을 막는, 느리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8년 만에 개정된 이번 병역거부 가이드북은 '전쟁없는 세상' 누리집에서 받아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유성애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양심적 병역거부, #병역거부 가이드북, #전쟁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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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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