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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세불망비 멋진 소나무 한 그루와 어우러진 영세불망비가 서 있는 고성군 현내면 산학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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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아의 깁흔 뜻을 뎐하나니 긔 뉘신고(風雅深意 傳者其誰)고됴를 됴하하나 아나니 전혀 업내(古調雖自 愛知者少)졍셩이 하 미망하니 다시 블너 보리라(正聲何微 茫欲更吟)내 말이 긔 어니 몰고 또 모라라(我馬維騏 載馳載驅)질고를 믈을지니 원습을 갈힐소냐(詢其疾苦 奚憚原濕)셩은이 지듕하시니 못갑흘가 하노라(聖恩至重 惟恐不能酬)위의도 거룩하고 녜모도 너를시니(威儀盛大 禮貌寬兮)희학을 됴하하나 학하미 되올쇼냐(善戱謔兮 不爲虐兮)아마도 성덕지션을 못니즐가 하노라(盛德至善 終不可諼兮)(하략 김광섭 역)권익륭이란 고성군수가 지은 연작시이다. 권익륭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시조작가이며, 본관은 안동 자는 대숙이다. 호는 하처산인으로 숙종 34년인 1708년에 양성(안성시) 현감을 지낸 후, 1710년 간성군수로 부임을 했다. 이 시는 <풍아별곡>이라고 하는 권익륭이 1710년 간성군수로 있을 때 지은 모두 6수의 연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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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망비 권익륭 군수의 선정을 칭송하는 마음으로 1711년 지역민들이 세운 영세불망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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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가곡집'에 실린 권익륭의 풍아별곡 이 내용은 고성군 현내면을 답사하고 난 뒤, 고성향토사연구회 연구위원인 김광섭 선생의 논문과 자료에서 취합한 글이다. 김광섭 선생은 고성지역의 향토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지역의 향토사를 정리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김광섭 선생이 보내 준 자료에는 1710년 간성군수를 지낸 권익륭에 대한 자료와 <고성화진포의 팔경과 시문학 고찰>이란 선생의 논문이었다.
풍아별곡은 이 작품은 작가가 교방(敎坊)에서 손님을 맞이해 즐길 때, 기존의 노래만 갖고는 부족하다고 판단해 부르기 위해 지은 노래란다. 풍아별곡의 첫 수는 고조(古調)와 정성(正聲)이 전하지 않음을 한탄하면서 이를 재현해 보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 다음부터 다섯째 수까지는 사람이 주연(酒宴)에서 갖춰야 할 마음 자세와 도리를 밝힌 다음, 마지막 수에서 인생은 무상하므로 생전에 후회 없이 놀고 즐기자는 뜻을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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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 수령 300년이 지난 것으로 추정되는 소나무. 어디서 보아도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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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 밑동과 불망비 소나무는 불망비 위편 쯤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실하게 자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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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에 서 있는 소나무와 불망비
이렇게 권익륭에 대해 김광섭 선생을 통해 자세한 자료를 얻게 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고성군 현내면 산학리를 답사하고 있는데, 마을 앞 논가에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무가 하도 아름다워 쫒아갔더니, 옆에 영세불망비가 한 기 서 있다. 하지만 불망비라는 각자는 보이는데, 그 위의 글씨가 지워져 알아볼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던 차에 김광섭 선생을 소개를 받기에 이르렀고, 선생은 자신이 연구를 한 자료를 선뜻 보내줬다. 논가에 있는 소나무 주변은 펜스를 쳐놓았고, 안내판에는 이 소나무가 수령이 150년 이상이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나무의 모습을 보니 300~400년 가까이 된 나무처럼 보인다.
그 옆에 세워놓은 영세불망비. 군수였던 권익륭이 선정을 베푼 것에 대해 잊지 않겠다고 주민들이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세운 비이다. 1711년에 이 불망비를 소나무 곁에 세웠다고 치면, 이 소나무의 수령은 이미 300년이 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결국 불망비 때문에 이 소나무의 수령이 우리가 짐작한대로 맞아 떨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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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 이곳이 예전 금강산으로 드나드는 길목이었다고. 뭉망비를 이곳에 세운 이유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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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곳에 불망비를 세워놓았던 것일까? 이곳 현내면 산학리는 바로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 불망비 앞을 지나쳐 금강산으로 오갈 때, 이 불망비를 보고 이곳에 선정을 베푼 권익륭 군수가 있었음을 알아달라는 뜻이었다는 것. 이 불망비와 동일한 불망비가 안성시 양성면사무소 뒤편에도 한 기가 서 있다고 한다. 결국 권익륭은 지역의 방백으로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었음을 알 수 있다.
300년이 지난 소나무 가지 밑에 서 있는 권익륭 군수의 영세불망비. 각자는 다 흐려져 알 수가 없지만, 당시 주민들의 정성이 그곳에 깃들어 있다. 이곳 산학리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300년 세월 그렇게 의지를 하면서 자리를 지켜 온 소나무 한 그루와 영세불망비 한 기. 그 모습에서 아주 오래 전의 역사 한 자락을 만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불교문화신문과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