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대형 트럭에 무대를 설치하고 앞에 현수막을 설치했다. 희망버스 진행 준비중이다.
▲ 다시,희망만들기 대형 트럭에 무대를 설치하고 앞에 현수막을 설치했다. 희망버스 진행 준비중이다.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문 쪽에 있는 철탑 위에 노동자들이 올라간 지 81일째 되던 날이었던 지난 5일. 오후 3시 30분께 갑자기 대형 트럭이 오더니 철탑 앞에 세워졌다. 그리고 트럭 위에 무대를 설치했다. 그리곤 전국에서 관광버스가 줄지어 도착했다. 모두 33대가 도착한다고 했다. 희망버스였다.

'희망버스'는 지난해 부산 한진중공업 노동자 400여 명의 정리해고 문제가 풀리지 않자 한진중공업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전국의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이 모이기 시작한 데서 생겨난 이름이었다.

그 힘이 작용했는지 모르지만 한진중 사태는 309일 만에 타결을 보게 됐고, 김진숙 지도위원도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오게 됐다. 그 희망버스 주체들이 다시 모여서 희망버스를 조직했다. 참 아름다운 연대다. 희망버스는 울산에서 연대행사를 하고 곧바로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향했다. 희망버스가 조직되어 울산으로 온 것은 현대자동차라는 대기업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현대차는 1998년 IMF를 거치면서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1만여 명의 정규직을 정리해고 했으며 그 자리에 16.9% 규모로 노사합의 한 후(당시 정갑득 위원장) 2000년부터 사내 파견업체를 만들고 1만여 명의 비정규직을 간접채용하여 사용하다 2003년 말께 노동부로부터 '제조업 공정 파견노동자 투입은 불법'이라는 판정을 받으면서 현대차가 불법으로 파견노동자를 간접고용·사용해 왔음이 알려지게 됐다. 그러나 2005년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검찰로 넘어간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는 무협의 처분으로 끝나고 만다.

"재벌이 불법파견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나라"

2000여명이 모였다고 한다. 철탑앞 주차장이 복잡할 정도로 모였다.
▲ 전국에서 모여든 희망버스 2000여명이 모였다고 한다. 철탑앞 주차장이 복잡할 정도로 모였다.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노동부에서 현대차를 불법파견업체를 사용하는 원청사로 판정했을 무렵 비정규직 노조원은 3000여 명까지 늘어나다가 2005년 검찰의 무혐의 처분과 현대차의 노동탄압과 공세에 밀려 600여 명으로 노조원이 줄어들면서 그저 그냥 명맥만 유지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이렇게 억울하게 당할수 없다고 판단한 비정규직 노조는 "대표소송 이라도 해서 끝까지 가보자"고 결의를 모으고 안기호 초대위원장과 최병승 전 사무국장이 대표소송을 이어가게 되었다. 대법원까지 간 결과 2010년 7월 22일 최병승 전 사무국장이 일부 승소판결을 받게 된 것이다. 대법원 판결 요지는 "제조업 파견업종 금지"와 파견법 고용의제 조합을 들어 "이미 정규직"으로 본다는 취지의 판결문이었다.

희망버스가 다 도착했는지 철탑 앞에서 집회가 시작되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는 민주노총에 소속되어 있고 금속노조에 가입된 지회조직이다. 앞자리를 두리번 거리며 찾아봤지만, 금속노조 박상철 위원장과 현대차 지부 문용문 지부장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박현제 지회장과 신임 강성신 민주노총 울산본부장만 같이 앉아 있었다. 이빨이 두어 개 빠진 것처럼 별로 보기 좋지 않아보였다. 반면, 과거 군부독재 정권시절부터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민주화 운동에 열정으로 앞장섰던 어르신들이 여럿이 참석하셨다. 보기 좋았다.

"정리해고 때문에 노동자가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나라. 손배가압류 때문에 귀한 생명을 끊는 나라. 독점 재벌이 자신의 호주머니 채우려고 불법파견을 십수 년 저질러 왔어도 처벌받지 않는 나라. 이게 제대로 된 나라입니까?"

"죽을 때 죽더라도 아름다운 일 하고 싶다"

희망버스 행사날 맨 앞줄에 수십년 젊은 시절부터 독재권력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해 오신 어르신들이 않아 계셨다. 보기 좋았다.
▲ 민주화 운동의 어르신들 희망버스 행사날 맨 앞줄에 수십년 젊은 시절부터 독재권력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해 오신 어르신들이 않아 계셨다. 보기 좋았다.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한 어르신이 단상에 올라 말했다. 부산에서 울산에서 서울에서 5명의 목숨을 앗아간 건 "자살이 아니고 사회적 타살"이라고 평했다.

"제가 나이가 많아서 이제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아름다운 일을 하다 죽자는 생각이 들어 투쟁하는 노동자와 함께 하고자 해서 이렇게 늙은이가 울산에 왔습니다."

자신을 목사라고 밝힌 여성 어르신이 나와서 자신이 희망버스에 올라 울산 철탑농성장까지 온 이유를 말했다.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환호성과 박수를 보내줬다. 알고 보니 그분은 대단한 분이셨다. 젊어서는 방직회사에 취직해서 노동착취와 탄압을 당하는 여성노동자를 규합해 노조를 만들고 함께 투쟁했다고 한다. 그분은 이야기 도중 울먹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린다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젊어 방직회사에 들어가서 노조활동을 한 적 있어요. 그때 경찰들이 그 어린 여성노동자를 잡아다 똥물을 퍼붓고 어떤 경찰은 한 여성 노동자를 붙잡아 강제로 눕히고 똥물을 퍼먹이기도 했어요.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나이가 많으셔서 걷기조차 힘들어 하셨지만 "현대차는 재벌기업이라 상대하기가 힘들겠지만 불법파견 투쟁 꼭 승리해서 정규직 전환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처음보는 분이지만 가슴 뭉클한 연설이었다. 불교교단 노동위원장으로 활동하는 스님도 오셨다. 그분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을 지지한다"면서 "꼭 승리하자"고 말했다.

중간마다 문화공연도 하면서 행사가 진행됐고, 희망버스 주최 측은 다시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길게는 할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철탑위에서 80일 넘게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최병승·천의봉 씨와 전화 연결을 했다. 최병승씨는 "현대차가 불법파견 인정하지 않고 노동탄압만 악날하게 진행시켜서 철탑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며 간단하게 인사를 대신했고 천의봉 씨는 철탑 위에 있으면서 쓴 일기 3일 치를 읽는 것으로 대신했다.

최병승,천의봉 농성자가 참석자와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철탑농성 81일차 희망버스 날 최병승,천의봉 농성자가 참석자와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지난 1월 3일 오후 2시경 울산법원에서 집행관이 왔다. 그리고 저렇게 2개의 고시문 간판을 붙혀놓고 가버렸다.
▲ 울산법원서 붙인 고시문 간판 지난 1월 3일 오후 2시경 울산법원에서 집행관이 왔다. 그리고 저렇게 2개의 고시문 간판을 붙혀놓고 가버렸다.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오후 3시 30분께 시작된 집횐느 오후 5시 20분께 마무리됐다. 집회가 끝나자 희망버스 참석자는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다 빠져 나가고나니 텅 빈 공허감 같은 기분이 밀려들었다. 지난해 말, 현자노조·금속노조는 불법파견 협상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2013년 1월 3일 오후 2시께 불청객이 찾아 왔다. 법원 집행관이 가처분 판결문을 들고 와서 두개나 세워두고 사라졌다. 이에 비정규직 노조는 다시 고립되고 힘들어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나마 새로 취임한 민주노총 울산지부 강성신 지부장이 "불법파견 문제는 정규직 전환으로 똑바로 풀어야 한다"며 적극 나서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자동차에서 내놓고 있는 '신규채용 안'을 비정규직 노조는 받아 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한 비정규직 노조 간부가 이렇게 말했다.

"신규 채용은 말이 안 됩니다. 신규채용은 선별 채용이고 해고자 문제도 선별 복직하겠다는 것인데 받아 들일 수 있겠습니까? 2003년부터 2012년까지 200여 명의 해고자와 정리해고자가 있는데 현대차는 2010년 이후 발생된 해고건에 대해서만 사내하청 복직을 알선하겠다는 제시안을 내놨습니다. 그렇게 되면 변동지처럼 억울하게 정리해고 당한 사람이나 2003년 후 불법파견 투쟁하면서 해고된 5공장 100여 명의 해고자는 모르겠다 하는 것이고요. 또, 핵심 노조간부 14명도 복직불가 방침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건 쓰레기 안이지요. 그런 안을 우리가 어찌 받아 들일 수 있겠습니까."

희망버스가 온 그날. 나는 딸과 아들을 대리고 철탑으로 갔다. 자식들에게 그 상황을 분명히 보여주고 아버지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회사를 경영하려면 양심을 지키며 해야 한다고, 도덕과 윤리도 지켜가면서 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현대자동차처럼 불법파견으로 노동착취나 노동탄압 하면서 기업을 경영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보여주고 싶었다. 아버지가 이렇게 생계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현대차를 상대로 왜 투쟁에 나서는 지를 말하고 싶었다.

사랑스런 자식들이 철탑을 바라보고 있다. 너희들이 커서 직장생활 할 때는 불법파견도 비정규직도 촉탁직도 임시직도 사라진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고용 불안에 떨면서 비정규직으로 살기 힘겨운 세상이다. 

시내 볼일보러 갔다가 같이 희망버스 행사에 참석했다.
▲ 딸과 아들 시내 볼일보러 갔다가 같이 희망버스 행사에 참석했다.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태그:#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 #희망버스, #투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간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노동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청소노동자도 노동귀족으로 사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