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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그 중 하나로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을 무시할 수 없다. 고도성장을 이뤘던 박정희 향수와 어머니 육영수의 현모양처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았던 박근혜는 대선 막바지 '잘살아보세' 구호까지 다시 들고 나오며 5060 표심을 효과적으로 자극했다. 여기에 이번 대선 프레임을 박정희 vs 노무현으로 끌고 나가며 표결집을 시도한 전략 역시 아주 주효했다. 이런 의미에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1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박정희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박근혜는 대통령이 된 그 순간부터 아버지를 넘어서야 하는, 더 나아가 아버지를 버려야만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됐다. 박정희는 죽었지만 '박정희 패러다임'은 남아 여전히 한국 사회에 잔존해 있고 이것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한국 사회의 진일보한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과연 박근혜는 박정희를 버릴 수 있을까. 여기, 박근혜가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기 위해 반드시 버려야 할 '세 가지 박정희'가 있다.

박근혜 18대 대통령 당선인
 박근혜 18대 대통령 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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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라는 이름의 박정희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장장 18년간 대한민국을 통치했던 박정희는 군인 출신답게 매우 권위적이고 통제적인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했다. 대통령은 명령을 내리고, 아랫사람은 실행에 옮기는 상명하복의 정치 문화 속에서 박정희는 곧 국가였고, 권력 그 자체였다. 그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았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한 것은 어떤 부작용이 있더라도 끝까지 밀어붙였다. 이는 "나만이 국가를 경영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3선 개헌으로 시작해 유신으로 이어지는 잔혹한 독재는 박정희식 권위주의가 극단적으로 발현된 형태다. 소통과 상생을 거부한 채 일방통행으로 치달았던 그의 독재는 수많은 시민들을 희생시켰고, 결국 김재규의 총탄과 함께 끝을 맺었다. 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울려퍼진 총성은 권위주의 정치의 말로가 얼마나 비극적인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박정희로 인해 누구보다 고초를 겪었던 김대중이 집권하자마자 '탈권위주의'를 부르짖은 것은 다시는 이러한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우려스러운 것은 최근 박근혜의 행보가 탈권위주의와는 정반대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식 정치는 2인자를 두지 않고, 최종 결정은 항상 혼자하며, 정보는 최소한의 사람만이 공유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본질적으로 박정희식 정치와 아주 유사한 점이 많다. 유신의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하며 지척에서 보고 배우며, 체내화 한 정치 DNA가 박정희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최근 인수위 선정 과정은 박근혜표 권위주의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보좌관 몇 명을 제외하고, 심지어 대변인도 모르게 결정된 인수위 '깜깜이 인사'는 언론에 의한 1차 검증 없이 발표돼 지금까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선 과정에서 상대 진영을 '빨갱이'로 매도한 인수위 대변인 윤창중은 물론이고, 지역갈등 조장 발언으로 논란이 된 김경재, 돈봉투 혐의를 받고 있는 하지원, 하도급법 위반 윤상규까지 인사 잡음이 멈추지 않고 있다. 문제는 박근혜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더 이상 계파의 수장이 아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수하는 따르면 그만이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비판과 견제를 당연한 것으로 수용해야 하며 그 속에서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인수위 선정처럼 깜깜이 인사, 밀실 인사, 밀봉 인사로는 논란과 뒷말을 피할 수 없다. 정보는 최대한 공개하고 의사결정 과정은 투명하게 운영해야만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좋은 결과가 나오는 법이다. 박근혜 스스로 신비주의와 권위주의의 장막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이명박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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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제일주의' 라는 이름의 박정희

박정희가 만든 고도성장의 이면에는 매우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대기업 중심의 통제 경제체제로 진행 된 박정희 시대의 경제 성장은 자유와 분배 등 다른 중요한 가치를 희생하는 동시에 대다수 국민의 소비력을 억제하고 자본 축적을 극대화 함으로써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에게 막대한 희생을 강요했다. 성장지상주의와 재벌 중심 체제 및 적대적 노사관계 역시 박정희가 한국 경제에 남긴 암울한 유산이다.

박정희 정권은 정치적 권력을 이용해 소수의 선택된 집단, 바로 재벌을 통해 국가가 추진하는 대규모 사업을 진행했고 이를 통해 증가 된 물질적 이익의 대부분을 재벌에게 돌려줌으로써 부의 편중화를 심화시켰다. 이는 80~90년대를 지나면서 분배의 불평등, 사회 통합 저해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고 쉽게 해결하기 힘든 구조적 모순을 누적했다. 현재 시대적 과제가 된 양극화의 뿌리도 거슬러 올라가면 박정희에게 큰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장률에 목매달고 있고, 대기업이 잘 살면 나도 잘 산다는 근거 없는 낙수효과를 신봉하고 있다. 그러나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며 성장지상주의 이데올로기를 채택한 이명박 정부는 어떠했는가. 부자감세와 규제완화, 4대강 토건사업과 관치금융의 부활 등 특권 성장 동맹에만 집착한 결과 양극화의 심화와 계층 갈등만 심화됐다. 이명박 정권의 실패는 박정희식 성장제일주의가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명박 정권의 실패로 이번 대선의 화두가 양극화 해소와 복지로 이어진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에 대해 박근혜는 4.11 총선 때부터 야권의 전유물이었던 복지 담론을 선점해 큰 이득을 봤다. 경제 민주화의 대부인 김종인 위원장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인 것은 매우 효과적이었고, "아버지의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던 말은 화룡점정이었다. 문제는 대통령으로 선정 된 지금 박근혜가 재벌 중심의 성장주의를 과감히 버리고 복지국가 건설에 앞장설만한 소양을 갖추고 있느냐는 것이다.

박근혜가 대선 막판에 들고 나온 구호는 "잘살아보세"였다. 이 "잘살아보세"가 아버지처럼 성장률에 집착하는 "잘살아보세"면 곤란하다. 눈에 보이는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내실 있는 성장을 다져야 한다. 과감한 과세는 기본이고, 이를 통해 복지 재원을 마련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박정희의 경제성장이 빠른 근대화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비용은 기꺼이 지불해야 하는 '일방통행식 성장'이었다면, 박근혜의 경제성장은 안정적 성장 속에서 획득한 다양한 비용과 자본이 모든 계층에 골고루 돌아가는 '상생의 성장'이어야만 한다. 기회의 평등과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고 경제력 집중 억제와 공정경쟁 질서의 확립, 금융건전성을 위한 규제감독, 경제적 약자의 보호, 사회안전망 확립은 박정희식 성장담론으론 결코 이룩할 수 없는 것들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얼마나 성장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성장할 것이냐'다. 중산층 70%를 공언했던 박근혜가 가장 먼저 버려야 하는 것은 바로 박정희식 성장담론이다. 대승적인 결정이 필요한 때다.

막말 논란으로 비판을 받은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
 막말 논란으로 비판을 받은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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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주의'라는 이름의 박정희

박정희는 "반공을 국시로 삼은" 인물이다. 허나 반공은 국시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국시의 사전적 의미는 "국민 전체가 지지하는 국가의 이념이나 국정의 근본 방침"인데 반공에 이념이나 방침이 있을 수 없다. 공산주의 타도, 김일성을 때려잡자는 게 국가의 이념이라면 그건 너무 저급이다. 무엇을 반대하는 것을 국시로 정한 사람은 아마 세계적으로도 박정희가 유일할 것이다.  

말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박정희 정권은 북한과의 대결 정책을 즐겨 사용했다. 자신을 비판하는 반대 진영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로 몰아 탄압했고, 이로써 자신의 독재를 정당화 했다. 박정희에게 빨갱이라고 지목받은 사람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사회적으로 매장 당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헌신하다시피 한 김대중이 죽는 그 순간까지, 아니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빨갱이 소리를 듣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박정희에게 반공이란 정당성이 약한 자기 정권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방편이었고, 손쉽게 반대파를 제거하는 절대 반지였을 뿐이다. 애초에 '국시'로 삼을 만큼 위대한 뜻이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남북 뿐 아니라 동서마저 분열시켰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갈라 서로를 혐오하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생긴 망국적 지역감정은 한국 정치의 발전을 두고두고 가로막는 장애물이 됐다.

박근혜가 슬로건으로 내건 '100% 대한민국'은 이 같은 박정희식 분열주의를 극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런 의미에서 문재인 전 후보를 지지한 보수 성향 정치권 인사들을 '창녀'로, 안철수 전 후보에 대해선 '더러운 장사치'로 표현하며 진영 간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데 앞장선 윤창중을 발탁한 것이나, 측근인 김경재가 MBN에 출연해 "대표적인 야권지지방송인 것을 알고 있다. 잘 모시겠다."며 언론 규제 뉘앙스를 풍긴 건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통합과 상생의 정치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셈이다

말로만 통합을 외친다고 통합이 되는 것이 아니다. 분열주의를 획책하는 측근들부터 단호히 배제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이승만-박정희 시대부터 만들어 진 질곡의 과거사와 분단현실 등 역사적 정치적 지역적 배경이 복합적으로 얽혀 만들어 진 것이다. 확고한 의지와 실질적 처방이 반드시 수반 되어야 하며, 박근혜 스스로 48%의 반대 진영을 '안고' 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남북, 동서, 계층, 세대로 갈라진 지금의 분열 양상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권력을 잡은 쪽이 내 편, 네 편을 나누어 차별을 두는 건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악이다. 박근혜가 아버지의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박근혜, '정치인 박정희'를 버려라!

지금 박근혜는 '정치인 박정희'가 남긴 수많은 유산들을 넘어서야 하는 시대에 대통령이 됐다. 권위주의, 성장제일주의, 분열주의로 대표되는 박정희 패러다임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남아 정치, 경제, 사회, 지역을 불문하고 악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그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이자 거부할 수 없는 임무다.

박정희는 죽었지만 그의 영향은 시퍼렇게 살아있는 지금, 박정희의 공과와 그가 남긴 그림자를 박근혜는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정리할 수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박정희를 버리지 않고서는 박근혜가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없다는 것, 박정희를 극복하고 넘어서는 것으로부터 역사의 진일보가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이제 모든 공은 박근혜에게 넘어갔다.


태그:#박근혜, #박정희,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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