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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인천 부평에 있는 콜트악기 공장에서 성탄 전날인 12월 24일 밤에 성탄미사가 있었습니다. 미사는 8시지만 그 전에 공연을 한 시간 가량 한다 해서 7시 쯤 그 곳에 갔습니다. 퇴근하면서 바로 갔는데 버스 안에서 조금 늦더라도 집에 들러서 옷도 단단하게 입고 갔으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했습니다.

작년에는 아내와 같이 갔는데 공장 안이지만 콘크리트 건물에 아무런 난방 장치가 없어서 무척 추워 고생을 했습니다. 그 기억 때문에 아내는 이번에는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 콜트콜텍은 기타를 만드는 회사인데, 여러 사정으로 인해서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그들은 몇 년 째 복직을 위해서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어떻게 그 맹추위를 견딜까 고심하며 들어갔는데 아, 이게 웬일입니까? 대형의 히터 두 개가 놓여있는 게 아닙니까. 그리고 사방에는 큰 비닐이 둘러싸여있었고, 위에는 각종 플래카드가 바람을 막고 있었습니다. 작년과는 전연 딴판이었습니다. 여하튼 그런 추위에서 벗어나게 되어 천만다행이라고 안심했습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작년에 하도 추워서 봉사자들이 동분서주해서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나는 다른 모임에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앞에 앉았습니다. 작년에 4~50명이 조촐하게 성탄미사를 드렸는데 그보다는 의자를 조금 더 갖다놓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공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나니 사람들이 많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내 자리가 가장 앞인데 그 앞 공간에 앉아서 볼 수 있게 자리를 길게 깔았습니다. 하지만 급히 마련된 자리도 금방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공연은 아무런 잘못 없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그동안 연습한 것을 악기 연주와 노래로 보여주었습니다. 비록 전문성은 많이 부족했지만 참가자들은 노래가 끝날 때마다 큰 박수로 격려해 주었습니다. 뒤에 가서는 그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한 단체가 나와서 노래를 들려주었고, 끝으로 먼저 공연한 노동자들과 함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불렀습니다.

따뜻한 감동을 준 공연이 끝나고 곧 미사가 시작됐는데 신부님이 자그마치 5명이나 왔습니다. 그 가운데 미사를 주재한 신부님은 감탄사로 성탄미사를 시작했습니다. 작년에는 50명 정도 왔는데 올해는 그보다 4배나 되는 200여 명이나 왔다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연대의 행렬이 더 넓어지고 커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말했습니다.

비록 근사한 성당에서 편안하게 드리는 미사는 아니었지만 우리 모두는 그 소박한 분위가가 좋았습니다. 예수 탄생한 구유도 지극히 단순하게 꾸며졌고 퍽 작았습니다. 큰 힘은 아니지만 어려움을 겪으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을 하는 기타 노동자들을 위한다는 마음은 같았기에 주위는 마냥 훈훈하기만 했습니다.

미사 중간쯤에 봉헌하는 시간이 있는데 올해 유독 눈에 띄는 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금통입니다. 각양각색의 저금통이 예수 아기 주위로 놓여있었는데 어린이들이 그동안 정성껏 준비한 것을 내놓은 것입니다. 10원, 100원, 500원짜리 동전이 투명한 저금통에 보였습니다. 많은 액수는 아니겠지만 고통을 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이 모았다고 생각하니 그 저금통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신부님은 강론 때에 울산 이야기를 잠깐 했습니다.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곳을 갔는데, 그 밑에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천막들이 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궁금해서 알아봤더니 동료의 농성을 지지하면서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이 거기에 묵으면서 생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신부님은 고공농성을 하는 노동자가 바로 이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결코 외롭지 않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신부님은 연대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아름다운 천막들을 바라보면서 더 큰 욕심을 냈다고 합니다. 지금보다 더 천막들이 더 많아지는 것을, 전국 각지에서 작년에 부산의 한진중공업의 김진숙 투쟁처럼 희망버스를 조직해서 연대의 힘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것을 꿈꿨다고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누구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일터에서 쫓겨나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힘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이웃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고통에 같이 아파하고 울어주는 것, 그러면서 비록 앞길은 컴컴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노래하며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임을 우리들은 모두 알고 있었기에 신부님 강론에 공감했던 것입니다.

신부님은 미사를 시작하며 앞부분에서 대선이 끝난 다음에 고통 중에 있는 노동자 2명이 삶의 끈을 놓았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그런 불행한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하루빨리 이 땅에 노동자들이 해고의 위협 없이 평범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기를 다 같이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미사 끝부분에 정말 따뜻한 장면이 참가자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동안 여기 있는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을 위해 여기저기에서 모금한 것을 전달하는 자리인데, 신부님이 직접 여러 봉투를 노동자 대표에게 전달하면서 간단히 설명을 했습니다. 어린이 공부방에서 모금한 것, 노동자 연대에서 정성을 모은 것,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그들을 생각하며 떼어놓은 것들이 그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봉투 하나씩 전달될 때마다 박수소리가 그 안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들은 절대로 외롭게 놔두지 않고 참가자들이 언제나 함께하겠다는 다짐이었기에 그 소리는 큰 울림이 되어 우리들 귀에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신부님은 마무리로 꿈을 단 한 마디로 말했습니다. 내년에는 이 자리에서 미사를 드리지 않는 게 꿈이라고 하면서, 우리 모두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하느님께 그런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 꿈은 연대를 발휘한 참가자들보다 그 곳에서 숙식하며 농성을 하는 현장 노동자들이 더 간절하게 바라는 것일 겁니다.

공연과 미사로 9시 반 넘어 끝났지만 참가자들은 거의 가지 않고 봉사자들이 열심히 준비한 떡국과 삼겹살, 귤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나도 다른 때보다 더 배부르게 잘 먹었습니다. 신나게 젓가락을 놀리면서 여기저기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얼굴 표정이 밝았습니다. 환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노동자들도 참가자들 사이에 서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신부님이 강론 때 말한 것 같이 예수가 지금 이 땅에 오신다면 바로 이와 같은 곳에 오시지 않을까 생각됐습니다. 그 광경을 보며 내년에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투쟁이 지속된다 하더라도 연대의 끈은 끊어지지 않고 더 길고 단단하게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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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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