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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몰래산타에 참여하는 구로지역의 고교생, 직장인들 30여명은 지난 23일 구로푸른학교에 모여 산타출동에 앞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이들 가운데는 올해 처음 참여한 사람도 있고, 7년째 참가하는 베테랑도 있었다.
▲ 구로 사랑의 몰래산타 사랑의 몰래산타에 참여하는 구로지역의 고교생, 직장인들 30여명은 지난 23일 구로푸른학교에 모여 산타출동에 앞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이들 가운데는 올해 처음 참여한 사람도 있고, 7년째 참가하는 베테랑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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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 이거 봐봐! 소원이 이루어졌어!"

지난 23일 구로초등학교에 다니는 중현(가명·8세)이는 자신이 크리스마스 양말에 적어둔 소원이 이루어졌다며 뛸 듯이 기뻐했다. 산타복을 입고 등장한 형이 건네준 '닌자고' 선물이 맘에 들었나 보다. 방 한쪽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종이양말을 들고 왔다. 양말에는 '닌자고 장난감이 갖고 싶어요'라는 글씨가 또렷이 적혀 있었다.

사실 중현이가 바라던 '닌자고' 장난감은 중현이 어머니와 사랑의 몰래산타팀이 사전에 모의한 것이었다. 사랑의 몰래산타팀은 일주일 전에 중현이 어머니에게 연락해 올 한 해 동안 중현이가 했던 착한일, 고칠일 등을 들었다. 그리고 산타 행동개시일인 이날 산타의 입을 통해 대신 말해주기로 했다. 물론 착한일을 안 했어도 선물은 준다.

사랑의 몰래산타는 구로청년회 몰래산타본부, 구로푸른학교지역아동센터, 신도림커뮤니티 등의 지역단체가 주관한 것으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지역사회에서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 노래와 선물을 통해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는 행사다. 2004년부터 매년 이어져오고 있다.

이 행사는 전국적으로 열리고 있으며 서울에선 구별로 나뉘어 개최된다. 구로에 살고 있는 나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구로청년회가 주관하는 몰래산타에 참여했다. 고등학생부터 2030 직장인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모였다.

"애인없는 사람들만 모인 거 아냐?"라며 안타깝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제 막 풋풋한 연애를 시작한 내 친구도 동참했으니 그런 오해는 하지 않기를.

어려운 가정 찾아 소원을 들어주는 산타의 마음으로...

지난 23일 몰래산타 봉사를 위해 모인 직장인들이 아이들에게 전해줄 카드에 메시지를 적고 있다.
▲ 몰래산타 준비모습 지난 23일 몰래산타 봉사를 위해 모인 직장인들이 아이들에게 전해줄 카드에 메시지를 적고 있다.
ⓒ 홍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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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산타가 되려면 사전 오리엔테이션에도 나와야 하고, 조별회의도 철저히 참석해야 한다. 봉사지만 참가비도 있다. 일찌감치 신청한 사람들은 직접 홍보전도사가 되서 이른 아침 전단지 배포에도 나서야 한다. 그래도 매년 적지 않은 인원이 모인다. 총학생회도 아니고, 시민단체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직장인들과 학생들이 "의미 있는 크리스마스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뭉친다. 혼자서도 오고 친구들끼리도 온다. 끝나고 나면 결국은 다 같은 친구가 된다. 올해 구로에선 5명씩 총 6팀이 30집을 방문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선물을 나눠줄 산타, 진행자, 케이크담당, 풍선담당, 마술담당 등 역할을 나눠 각 집으로 출동했다. 우리 팀도 각자 맡은 바 막중한 책임감을 어깨에 지고 맹추위를 뚫고 나갔다. 산타를 알아 본 동네 아이들은 "메리크리스마스"를 외치며 길을 걸어가는 우리를 환영했다. 동네 어르신들도 재밌다는 듯이 한 번씩 쳐다보시며 지나갔다.

각 집은 대부분 골목골목의 다세대 주택으로 지도가 없으면 찾기가 어렵다. 최근에는 길을 찾아주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 있어서 다행이지만 몰래산타 초기만 해도 직접 지도를 찾거나, 미리 예방해서 길을 찾아놓는 등 등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스마트폰이 있어도 찾기 어려운 집도 많다. 그런 굽이굽이 골목길을 돌다보니,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통학길이 과연 어떨지 걱정도 됐다.

그렇게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집을 돌고 마지막 다섯 번째 다문화 가정을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다문화가정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왔다는데 중국어를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선물을 받을 아이 나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라 우리가 되레 머쓱하진 않을지 여러 가지 고민이 됐다.

긴장반, 걱정반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 장훈(가명·12)이네 집. 솔직히 놀라서 표정관리가 안 됐다. 2평 남짓한 방에 장훈이를 포함해 5명의 가족이 앉아 있었다. 몰래산타팀까지 추가로 5명이 더 들어가면서 정말 집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우리 때문에 2명은 밖에 나가 있어야 할 정도였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개그콘서트 코너'풀 하우스'를 연상케 했다. 속으로 '정말 이런 집이 있구나' 안타까우면서도 너무나 밝은 가족들 표정에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장훈이는 지난해 4월에 한국에 왔다. 앞서 6년 전에 한국에 일을 하러 온 어머니를 따라 왔는데, 아직도 어머니와 서먹서먹한 사이라고 했다. 장훈이는 우리의 방문이 낯설었는지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산타를 처음 봐서 신기해하는 눈치였다는 것. 쑥스러워하면서도 트리도 적극적으로 만들고, 직접 풍선아트를 만들어 보여주기도 했는데 수준급이었다. 장훈이는 다문화가정 아이 돌봄 교실에 다니는 데 그곳의 선생님들이 참 잘 가르쳐주신다며 "정말 좋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장훈이네는 마지막 집이라서 사실 케이크도 많이 망가지고 우리도 기운이 조금은 빠져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계속 감사하다는 말을 하시며 떡국에 중국식 장조림에 호떡에 귤 등등 먹을거리를 한상 차려주셔서 미안함이 두 배였다. 이미 4곳을 돌며 얻은 후한 인심덕에 배가 빵빵하게 부른 상태였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떡국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맛도 있었지만 그 마음이 참 감사했다.

그렇게 작은 방에서 웃음이 넘쳤다. 우리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장훈이 어머니와 할아버지는 밖에 계셨다. 앉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둘러 방을 나왔다. 어머니는 계속 고개를 떨어뜨리시며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셨다.

"엄마가 뭐 있나. 자식이 좋으면 제일 좋은 거지. 우리 애가 산타 이런 거를 처음 봐요. 생전 이런 경험이 없었어. 정말 고마워요. 사실 내가 일하러 먼저 와서 뒤늦게 자식 얼굴 보는데 서먹서먹해서 맘이 안 좋았어. 근데 이렇게 애가 웃는 거 보니 너무 좋네!"

다른 집에서 나올 때와 달리 마음 한켠이 싸했다. 나는 한 번 방문하는 집이지만, 그곳에서 생활을 하고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가슴이 먹먹했다. 이런 생각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다른조 참가자는 "집주소가 어려워서 어딘가 했는데 찾고 보니 모텔방이었다"며 "아이와 아빠가 월세를 낼 돈이 없어 모텔생활을 하고 있었다. 모텔 주인이 아이 칭찬을 참 많이 했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소감을 밝혔다. 나와 함께 참가한 친구도 "겉으로 보기에는 다 똑같은 주택인 줄만 알았는데 막상 집집마다 방문해보니 어려운 집이 참 많다는 걸 느꼈다"며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구로구청 사거리에 '국민 행복시대를 열겠습니다'라는 박근혜 당선자의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국민 행복시대.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그리 큰 것이 아닌 것 같다. 사랑하는 아이가 따뜻한 곳에서 먹고 자고 웃을 수 있는 집. 떨어져 살지 않고 함께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는 공간, 밤낮 일거리에 아이 얼굴 볼 시간도 없는 그런 빡빡한 삶이 아니면 될텐데.

7년째 몰래산타에 참여하고 있다는 다른 팀의 최재희 씨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참여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마냥 뿌듯하지만은 않아요. 정말 안타까운 건 7년 전 몰래산타를 처음 했을 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방문했던 집집마다의 형편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좀 나아졌으면 좋겠는데…."

낙담한 절반의 국민 마음 돌봐주는 대통령이 돼 주길

국민 행복시대를 열기 전에 박 당선자가 몰래산타든 아니든 국민의 삶을 밀착하는 데 힘을 쏟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번 기회에 일 년에 한 번 몰래산타에 직접 참가해 보는 것은 어떨지? 몰래산타의 제1원칙은 어려운 이웃의 집을 직접 방문한다는 것.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것만으로 아이들에겐 평생의 추억이 되고, 참가자는 곱절의 행복을 얻어오니, 이것도 '국민 행복시대'의 한 지름길이 아닐까? 박 당선자도 앉은 자리에서보다는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직접 밑바닥 서민 삶의 변화가 얼마나 더딘지, 이 겨울 추위는 얼마나 더 가혹하게 다가오는지 체험해 봤으면 좋겠다. 어찌됐든 몰래산타 대작전은 2013년도에도 계속된다. 포에버~


태그:#몰래산타, #구로청년회, #산타봉사, #구로푸른학교,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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