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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예비후보가 14일 오후 울산시 남구 신정1동 신정시장 팔복떡집사거리에서 투표참여 독려 번개 모임을 마치고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예비후보가 14일 오후 울산시 남구 신정1동 신정시장 팔복떡집사거리에서 투표참여 독려 번개 모임을 마치고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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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는 외나무다리가 아니라 KTX에서 만난다?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와 나경원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14일 오후 같은 열차를 타고 상경해 눈길을 끌었다. 안 전 후보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나 전 최고위원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돕기 위해 대구·경북 지역 지원유세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KTX 열차를 함께 탄 것이다. 두 사람은 특실에 함께 탔으며, 공교롭게도 나 전 최고위원 자리는 안 전 후보의 바로 뒷자리였다.

안 전 후보와 나 전 최고위원은 선거와 관련해 악연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던 나 전 최고위원은 안 전 후보의 지원을 받은 박원순 당시 야권 통합 후보에게 패하고 말았다. 1년여가 지난 지금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후보의 선거를 적극 지원하기 위해 같은 지역에 투입됐다가, 우연히 만난 것이다.

'우연히' 앞 뒷자리 앉은 안철수·나경원... "고생이 많다" 인사

안철수 전 후보 일행은 이날 대구에 이어 울산에서 유세를 마치고 오후 6시 22분 서울행 KTX 열차에 올랐다. 안 전 후보의 옆자리에는 송호창 전 선대본부장이 앉았고, 맞은편에는 조광희 전 비서실장과 장하성 전 국민정책본부장이 앉았다. <오마이뉴스> 기자가 안 전 후보에게 인사를 건네자 "아, 네"라고 답했다. "오늘 유세는 어떠셨느냐"는 질문에는 별다른 말 없이 웃어보였다.

나 전 최고위원은 보좌관과 함께 김천구미역에서 이 열차에 탑승했다. 나 전 최고위원 역시 이날 구미역 광장과 원평동 중앙시장 등지를 돌며 박 후보 지지 합동유세를 펼쳤다. 열차에 탑승한 나 전 최고위원은 자신의 자리를 찾다가 우연히 안 전 후보 일행과 마주쳤다. 게다가 나 전 최고위원의 자리는 안 전 후보의 바로 뒷자리였다.

안 전 후보와 나 전 최고위원은 서로 "반갑다", "고생이 많다"며 인사를 나눴다. 안 전 후보의 옆자리와 앞자리에 앉은 인사들은 모두 박원순 캠프 출신들이다. 송호창 전 본부장은 지난 서울시장 재보선 당시 박원순 캠프의 대변인이었고, 조광희 전 실장은 법률특보를 맡아 활동했다. 그러나 나 전 최고위원은 이들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자리에 앉은 나 전 최고위원은 잠시 후 안 전 후보 일행 8명에게 커피를 한 잔씩 사서 돌렸다. 그러면서 나 전 최고위원은 조 전 실장에게 "예전에는 친하게 잘 지냈는데, 왜 연락도 한 번 안 하느냐"고 친근감을 나타냈다. 이에 조 전 실장은 "커피 잘 마시겠다"고 짧게 답했다. 나 전 최고위원은 조국 서울대 교수, 한나라당 원희룡·조해진 의원과 함께 서울대 법대 82학번이고, 조 전 실장은 서울대 법대 84학번이다.

이후 서울로 오는 내내 안 전 후보와 나 전 최고위원은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안 전 후보는 책을 읽다가 피곤한 듯 잠이 들었고, 나 전 최고위원도 내내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양쪽 일행은 서울역에 도착한 뒤, 서로에게 "잘 가시라"고 인사를 건네면서 헤어졌다.

송호창 전 본부장은 15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서울로 오는 열차에 탑승해 우리들끼리 얘기를 나누는 중에 우연히 나 전 최고위원을 만났다"며 "서로 반갑게 인사만 건넸을 뿐 별다른 대화는 나누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로 껄끄럽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그럴 게 뭐가 있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지난해 10월 26일 있었던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하루 앞둔 25일 오전 서울 중구 삼성생명 본관 앞에서 나경원 서울시장 한나라당 후보가 지원유세에 나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있다.
 지난해 10월 26일 있었던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하루 앞둔 25일 오전 서울 중구 삼성생명 본관 앞에서 나경원 서울시장 한나라당 후보가 지원유세에 나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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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대항마는 나경원?... '안철수 편지'에 무너진 서울시장의 꿈

안철수 전 후보와 나경원 전 최고위원의 KTX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두 사람이 같은 지역을 방문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박근혜 후보 선대위는 이날 안 전 후보의 대구·경북 지역 지원유세에 맞불을 놓기 위해 나 전 최고위원을 투입, 박근혜 후보 지원사격을 맡겼다. 박 후보 선대위는 안 전 후보의 '문재인 전폭 지원' 효과에 대해 상당한 경계심을 갖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낙선한 뒤 별다른 정치활동을 하지 않은 채 정치적 휴지기를 가졌던 나 전 최고위원이 지난 8일부터 박 후보의 유세 현장에 뛰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박 후보 선대위는 '문재인-안철수 연대'가 대선 막판 변수로 떠오르자 득표력이 있는 나 전 최고위원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나 전 최고위원을 내세워 '안철수 지원 효과'를 막겠다는 것이다.

나 전 최고위원도 지난 8일 "대선 승리를 위해 필요한 곳이라면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는 생각"이라며 의지를 피력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선거에서 특별한 직함 없이 '백의종군' 형식으로 박 후보를 돕고 있다. 안 전 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하면서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문재인 후보 선대위에서 어떤 직함도 받지 않은 모습과 닮았다.

'안철수 효과'가 박빙으로 치닫고 있는 대선 판세의 최대 변수라는 점에서 이번 대선을 지난 서울시장 재보선에 비유하는 시각도 있다.

당시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지지선언으로 나경원 후보를 여유 있게 앞서 나갔던 박원순 후보가 10월 중순경 위기를 맞았다. 새누리당으로부터 '협찬 인생'이라는 공격과 함께 아들 병역문제 등이 불거져 고전을 면치 못한 것이다. 새누리당과 나경원 후보 측의 파상공세로 박 후보와 나 후보의 지지율은 초접전 양상을 보였다. <오마이뉴스>가 선거를 7일 남겨두고 리서치뷰에 의뢰해 실시한 마지막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에서 '나경원 47.6%, 박원순 46.0%'로 나 후보가 오차범위 내인 1.6%p 앞섰다.

그러나 '박근혜 의원이 나 후보를 지원하고, 안철수 교수가 박 후보를 지원할 경우'에는 '나경원 47.1%, 박원순 51.3%'로 박 후보가 4.2%p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당시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는 안 교수가 박 후보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도울 것이냐였다. 박 후보가 계속 고전하자 안 교수는 선거일을 불과 이틀 앞둔 10월 24일 박 후보를 응원하는 내용의 편지를 들고 박 후보의 선거캠프를 직접 방문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가 13일 오후 대전 으능정이 문화거리에서 '아름다운 동행' 합동유세를 펼치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가 13일 오후 대전 으능정이 문화거리에서 '아름다운 동행' 합동유세를 펼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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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나경원 후보는 안 교수의 박 후보 지원에 대해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교수의 효과는 반영됐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전 YTN라디오 인터뷰에서 "박원순 후보의 협조 요청에 억지로 안철수 교수가 지원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나 후보는 또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말은 제가 잘 안 하는데 남자가 쩨쩨하게 치졸한 선거캠페인을 하지 말라"며 "선거 막판에 안 교수가 등장한 것은 선거 판세가 박 후보에게 어려워진 것을 스스로 자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중에 나 후보 쪽은 '쩨쩨하다'는 표현과 관련해 "이는 안철수 교수를 겨냥한 표현이 아니라 박 후보에게 얘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1년 여 뒤, 나경원 전 최고위원은 박근혜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선 첫날인 8일 '쩨쩨하다'는 표현을 다시 사용했다. 그는 충남 아산과 천안 일대 유세에서 "우리 쪽 남자들은 안 그러는데 저쪽 남자들은 쩨쩨하다"며 "혼자 못하고 둘이서 같이 이쪽 여성 후보를 하나 놓고 만났다 헤어졌다 하고 있다"고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를 싸잡아 비판했다.

나 전 최고위원은 또 지난 11일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에 출연, 안 전 후보가 문 후보 지원에 나선데 대한 물음에 "이미 여론조사 결과에 반영돼 있다고 생각한다"며 "투표율에 조금 영향을 줄 수 있겠지만 파괴력이 있긴 어렵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서울시장 재보선에서는 '안철수의 편지'가 박원순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결국 박 후보가 7%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다. "안철수의 바람은 없다"던 나 전 최고위원의 말이 틀린 셈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나 전 최고위원의 예견이 적중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안철수#나경원#문재인#박근혜#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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