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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이 현장법사가 고창고성에서 설법한 대불사의 한 장소이다.
이곳이 현장법사가 고창고성에서 설법한 대불사의 한 장소이다. ⓒ 박찬운

이제 여행은 종착지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7월 21일 선선에서 아침을 먹고 우리는 투루판으로 향했다. 선선에서 투루판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우리는 투루판에 들어가면서 고창고성과 화염산 천불동(베제클리크 천불동)을 둘러봤고, 이어 오후에는 시내 이슬람 사원 소공탑에 들렀다. 그리고 22일 오전 투루판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교하고성을 둘러봤다.

언뜻 보면 진흙 덩어리만 남아 있는 것 같은 곳에 왕국이?

고창고성은 7세기 당나라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이 지역의 소왕국 국씨 고창왕국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거의 파괴돼 언뜻 보면 진흙 덩어리만 남아 있는 것 같아 과거 이곳에 어떤 왕국이 있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일부 복원한 곳을 보면 이곳이 한 왕국의 수도로서 한때 영화를 누렸던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

번성할 때는 3만 명이 넘는 주민이 살았고, 그 한가운데는 대불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현장법사가 서역을 가는 도중 이곳에 들러 설법을 했다는 장소는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베제클리크 석굴
베제클리크 석굴 ⓒ 박찬운

베제클리크 석굴(화염산 천불동)은 이번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석굴을 관람한 곳이다. 이곳의 역사적 평가는 후한 편이다. 왜냐하면 이 석굴이 이곳으로부터 동쪽 실크로드상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석굴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조성 연대도 막고굴보다 이른 기원후 3세기로 보고 있다. 가장 흥한 시절은 당나라 때인 국씨 고창왕국이 이 지역을 다스리던 때다. 그런데 이곳을 직접 보다 보면 실망이 앞선다. 석굴 전체가 파괴돼 있기 때문이다. 사실 겉모습과 주위의 경치는 어느 천불동보다 아름다운 곳이지만 그 속은 볼 것이 없다.

 책 <실크로드의 악마들>(피터 홉커크 지음, 김영종 옮김)
책 <실크로드의 악마들>(피터 홉커크 지음, 김영종 옮김) ⓒ 사계절
이곳은 7세기 이후 마니교를 신봉한 위구르인들이 지배하면서 원래의 불교 석굴벽화에 마니교 벽화를 덧칠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마니교 관련 벽화를 다수 만날 수 있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이런 유적은 지금 볼 수 없다. 모두 서구의 반달리즘에 의해 파괴되고 주요 볼거리는 유럽의 박물관 이곳저곳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반달리즘의 주역은 독일인 르콕이라는 사람이다. 실크로드 악마들(피터 홉커그의 저서 <실크로드의 악마들>이라는 책은 바로 르콕을 비롯한 막고굴의 보물 유출자 스타인 등을 그린 책)의 주역 중의 한 사람으로 그는 이곳 석굴의 벽화 중 알짜배기 대부분을 떼어 내서 독일로 가져가 베를린 박물관에 뒀다. 다른 것은 잘 보이지 않아도 벽화를 떼어간 부분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것은 르콕이 떼어간 상당수가 2차 대전 중에 폭격으로 불타버렸다는 점이다. 또한 이곳은 14세기 이슬람 세력이 지배하던 시절, 종교적 이유로 인해 많은 벽화가 망가졌다. 그나마 몇 개 굴에서 천불도 등을 볼 수 있는데 그것마저 대부분 눈 부분이 파여 있다. 이슬람 사람들은 부처의 눈을 빼면 그 영력을 뺏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30m 높이 깎아지른 절벽에 형성된 성채 도시

 교하교성 전경, 하늘에서 보면 마치 버들잎 같이 보인다고 한다.
교하교성 전경, 하늘에서 보면 마치 버들잎 같이 보인다고 한다. ⓒ 박찬운

교하고성은 기원전 2세기에 이곳을 지배하였던 거사전국(車師前國·이를 국내의 자료에는 모두 차사전국이라 발음한다. 그러나 현지 가이드인 강석철씨는 자신 있게 거사전국이라 한다. 중국 전문가들도 그렇게 발음한다고 한다)의 도읍지다. 이곳은 천산(톈산)산맥에서 오는 강이 두 갈래 나누어져 형성한 30m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에 형성된 성채 도시다. 남북으로 1700m, 동서로 300m 정도의 성으로 하늘에서 보면 마치 버들잎(혹자는 항공모함)과 같은 형상이다.

흥성할 때는 이곳에서 6천여 명의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아마도 거사전국이 한무제에 의해 망하고 이 지역의 중심이 고창왕국으로 옮겨간 것은 이 성의 규모가 많은 수의 주민을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이곳은 고창왕국에 비하여 훨씬 잘 보존돼 있다. 지세 자체가 30m 절벽의 난공불락이라 후세에 의한 파괴도 고창고성에 비하면 제한적이었던 모양이다. 대부분의 주거지는 절벽 위에서 땅을 파서 만든 것이고 동네 곳곳에 우물을 판 흔적이 보인다. 아직도 동문 근처의 우물에는 물이 솟아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투루판의 이슬람 사원, 소공탑
투루판의 이슬람 사원, 소공탑 ⓒ 박찬운

소공탑은 투루판에서 볼 수 있는 이슬람 사원이다. 신강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미나렛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1779년 이곳을 지배한 위구르 왕국의 왕이 그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지은 것이다. 사원 전체가 진흙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44m의 미나렛을 자세히 쳐다보면 벽돌 하나하나에 사람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사원 옆에는 예쁜 진흙 무덤이 기하학적 형태를 보이고 가지런히 모셔져 있다.

불모의 땅에서 자라나는 포도...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제 투루판에서의 마지막 볼거리인 포도와 카레즈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투루판의 기후를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투루판은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열사의 땅 중 하나다. 여름철에는 온도가 무려 50℃도에 가깝고 지표면은 80℃에 이른다고 한다. 1년 강우량은 16mm에 불과하고 증발량은 연간 무려 3000mm다. 또한 해발고도는 -150m. 아마 사해를 빼놓고는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해발고도일 것이다.

한 마디로 이곳은 사람이 살 곳이 안 된다. 그러니 예로부터 화주(火州)라 불리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이곳은 중국에서 포도 생산으로 가장 유명한 곳이다.

 카레즈, 지하 터널을 파나갈 때 방법을 보여주는 전시물
카레즈, 지하 터널을 파나갈 때 방법을 보여주는 전시물 ⓒ 박찬운

어떻게 해서 이런 불모의 땅에서 이것이 가능했을까. 그 비밀은 카레즈라는 관개수로 기술에 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부터 투루판 사람들은 천산산맥에서 내려오는 눈 녹은 물이 만들어 준 지하수를 이용하는 법을 개발했다. 그것이 바로 카레즈. 이것은 이란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사막 관개수로와 대단히 흡사하다.

내가 몇 년 전 이란을 가서 고대 페르시아 문명 기행을 할 때 본 카나트라는 수로가 바로 그것이다(이에 대해서는 세계문명기행 페르시아 ⑦편 참고). 이것을 소개하고 있는 시내 카레즈 박물관에 가면 투루판 사람들이 카레즈를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물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우선 천산산맥에 내려오는 길목에 우물을 팠다. 그리고 그 우물 아래에서 터널을 뚫어 각각의 우물을 연결해 그 터널이 투루판 시내 가까이 오도록 했다. 이 물은 시내 가까이에서 저수지에 담기고 시내에는 이 물이 흘러갈 수 있는 수로가 가설됐다. 이렇게 해서 음용수와 농업용수가 확보된 것이다. 지하 터널이 무려 5000km라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중국인들은 이 카레즈를 만리장성과 경항대운하(항주와 북경을 잇는 운하)에 이은 중국 3대 역사(役事)라고 한다.

 투루판의 포도 농장, 사막 한가운데 이런 포도원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투루판의 포도 농장, 사막 한가운데 이런 포도원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 박찬운

이런 환경 속에서 생산되는 포도이기에 다른 곳 포도와는 당도가 확실히 다를 수밖에 없다. 포도는 건조하면서도 뜨거운 날씨에서 당도를 높일 수 있다.

원래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곳이지만 투루판 사람들은 2000년 이상 관개수로를 개발해 투루판을 천혜의 포도산지로 만들어 냈다. 투루판의 포도는 참으로 달았다. 거기에서 사온 건포도를 먹다 보면 투루판의 당도 높은 포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의 지혜가 만들어낸 기적을 우리는 먹는 셈이다.


#세계문명기행#실크로드 문명#투루판#카레즈#교하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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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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