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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즈그 아부지가 살아있으면 얼매나 좋겠노."

13일 오전 11시. 남구에서 북구 사이를 운행하는 256번 울산시내버스에 앉아 있던 60대 초반의 두 여성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버스 차창 너머에 정차해 있는 박근혜 후보 유세 차량을 보면서다.

이들처럼 울산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향수에 취한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박근혜 후보 지지층이 굳건하다.

하지만 대선을 일주일 앞둔 현재, 문재인 후보 혹은 야당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다소 복잡한 성향을 띠는 노동자의 도시 울산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울산 중구 구역전시장에 '유통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최근 이 지역 출신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주축이 돼 유통법 개정안 통과가 무산됐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새누리당 후보 지지경향이 강했다
 울산 중구 구역전시장에 '유통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최근 이 지역 출신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주축이 돼 유통법 개정안 통과가 무산됐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새누리당 후보 지지경향이 강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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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인구 10만여 명에 불과한 조용한 농어촌 도시였다. 하지만 1970년대 초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울산에 대규모 조선, 자동차 공업단지를 조성한 후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현재 115만여 명의 인구 중 울산 토박이 비율은 20%가 채 되지 않는다. 전국 각지에서 산업공단을 따라 울산에 정착했고, 30~40년이 흘렀다. 그 2세들은 거의 울산에서 태어났다.

이같은 특이한 도시 환경때문에 울산은 영남권 특유의 보수층 지지자들이 많다. 여기에 산업화를 가져다 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짙게 깔렸다. 그리고 일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발생지로서의 노동자 세력화와 진보정치 활성화가 조금 섞였다.

현재 울산은 6개 지역구 전 국회의원을 새누리당이, 25개 광역의원과 50개 기초의원을 새누리당과 진보진영이 7대 3의 비율로 양분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 의원은 한 명도 없다. 울산지역의 정치 성향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전혀 인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02년 16대 대선 때 울산지역 투표율은 70%였다. 이중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26만7737(52.87%),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17만8584표(35.27%),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5만7786표(11.41%)를 각각 얻었다. 35%를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얻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현재의 판세를 보자. 지난 8일 있었던 <오마이뉴스>-리서치뷰(대표 안일원)의 부·울·경 다자대결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후보 대 문재인 후보는 각각 59.1%, 38.5%, 9일에는 54.4%대 39.3%, 10일에는 50.4%, 44.4%로 그 간격이 점차 좁혀졌다.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ARS/RDD(Random Digit Dialing) 휴대전화를 통해 이뤄진 이 조사의 표본은 제19대 총선 투표자 수 비례를 적용해 무작위로 표본을 추출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5%p, 응답률은 10.5%다.

"박정희 부부 봐서라도 박근혜 찍을 것"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2일 오전 울산광역시 남구 산삼동 롯데백화점 앞에 모인 지지자들을 향해 유세연설을 마친 뒤 정몽준 중앙선대위 공동선대위원장 등과 손을 맞잡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2일 오전 울산광역시 남구 산삼동 롯데백화점 앞에서 유세를 벌이는 가운데 대형태극기가 펼쳐지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울산 중구 태화시장 안에 있는 한 신발가게. 이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부부는 지역에서는 마당발로 통했다. 때문에 선거철이면 도와 달라거나 여론을 묻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고향이 백령도라고 밝힌 아내(53)는 "무조건 박근혜다. 왜냐,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가 우리 뇌리에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때 백령도에 살았는데 육영수 여사가 학교도 지어주고, 마을에 아픈 사람이 생기자 헬기까지 보내주셨다"며 "그 부모에 그 딸이라고, 박근혜만이 서민들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학교는 국가가 지어주고, 환자가 생기면 구조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무슨 소리 하느냐, 그때 학교가 곳곳에 있었나? 헬기를 함부로 띄워주나"며 언성을 높였다.

남구에서 만난 이해숙씨(50·화장품 영업)도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고 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평소 정치에 별 관심이 없지만 박근혜 후보가 나온다기에 꼭 투표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여성도 대통령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며 "박근혜 후보는 카리스마가 있어 여성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동구에 사는 주부 김두아씨(56)는 남편이 현대중공업 정규직이라고 밝힌 후 "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느냐"며 "안보가 불안해 시민들이 늘 불안해 할 것"이라며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지난 11일 탑승한 택시의 60대 초반 기사는 "박근혜 후보가 아니면 이 나라를 불안해 맡길 수 없다"며 "우리 아들이 안철수를 지지하더니 사퇴하고 난 후 갈피를 못잡더라. 내가 정신 차리라고 충고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박근혜 뽑으면 미래가 없다"

울산 중구 병영에서 광명당안경점을 운영하는 김민호씨가 안경을 가리키며 "대형마트 때문에 매출이 줄었다"고 호소하고 있다.
 울산 중구 병영에서 광명당안경점을 운영하는 김민호씨가 안경을 가리키며 "대형마트 때문에 매출이 줄었다"고 호소하고 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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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회 법사위에서 새누리당의 반대로 유통법 개정안이 무산됐다. 이 유통법 개정안 통과를 가장 바랐던 곳이 중구지역 상인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업도시 울산 5개 구군 중 유일하게 공단이 없는 곳이 중구로, 이곳의 주 산업은 유통이다.

중구지역구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유통법 개정안 반대에 앞장섰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지만 중구지역 상인들은 이와 무관해 보였다. 여전히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이 높았다.

이런 현상에 대해 중구 병영시장에서 광명당안경점을 운영하는 김민호씨(50)는 "주민들을 보면 갑갑하다"고 했다. 그는 "울산에는 240개의 안경점이 있는데 대형마트가 곳곳에 들어선 후 매출이 팍 떨어졌다"며 "안경점 뿐이겠나? 이를 만회할 수 있는 유통법 개정안을 새누리당이 막았는데도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상인들이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밝힌 후 "박근혜 후보를 보면 미래보다는 지나온 과거가 회상된다"며 "우리 자식들을 보다 나은 미래에 살게 하기 위해서는 미래지향적인 문재인 후보가 낫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유통법 개정안을 위해 그동안 주민들과 상가에서 서명을 받았는데, 서명한 사람들이 오히려 법안을 막은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아마 박근혜 후보가 아닌 다른 새누리당 후보가 출마했다면 주민들이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지난 11월 30일 오전 울산 태화장터에서 유세를 마친뒤 상인들과 인사하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지난 11월 30일 오전 울산 태화장터에서 유세를 마친뒤 상인들과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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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남구의 한 횟집에서 송년회를 하던 남구 ㅎ약국의 ㅎ씨(61)는 "박근혜 후보만은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그렇게 반대했는데도 새누리당이 한미FTA(비준안)을 통과시키더라"며 "아마 국민들의 약값이 몇 배가 오르는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난 5년간 새누리당이 한 일을 보면서 어떻게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겠나, 문재인 후보가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매번 선거에서 진보진영 후보를 지지했다는 현대중공업 한 하청노동자(38·동구)는 "이정희 후보가 나오면 찍을 계획이지만 막판에 문재인과 단일화 하지 않겠나"며 "문재인을 찍되, 민주당이 앞으로 하청노동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12일 탑승한 택시의 기사는 자신이 동구지역 토박이라고 했다. 그는 "동구는 대왕암 등 절묘한 풍경이 많았는데 현대중공업이 들어서면서 많이 매몰됐다"며 "만일 현대중공업이 들어서지 않았다면 이곳 주민들은 엄청난 관광자원 혜택을 누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지금 동구는 현대중공업 직영노동자만 잘 살게 됐는데, 지역 주민들과 하청은 그들과 차이가 많이 난다"며 "이런 양극화가 정착되는 것을 막으려면 야당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11~12일 울산지역 민심을 훑으면서 도달한 결론 하나.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거의 맹목적이며,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 지지자 중 상당수는 "그는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민주당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박석철 기자는 2012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대선특별취재팀입니다.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울산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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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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