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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의 연애를 거쳐 오는 15일 결혼이란 관문을 앞두고 우리 두 사람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혼이란 무엇일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고, 새로운 사람을 탄생시키는 것? 인류를 존속하게 하는 방법이었으니 역사에서 결혼이라는 제도가 갖는 중요성은 매우 클 것이다.

중요한 결혼의 시작은 보통 '결혼식'이다. 결혼이 중요한 만큼 그 시작인 '결혼식'도 중요하다. 결혼식은 사람이 함께 살아가게 되는 것의 정신적 의미와 그에 따르는 사회적 책임의 의미를 성찰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결혼식은 어떠한가? 성찰의 '식'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왜 그럴까? 마을의 잔치였던 혼인식, 이웃 사람들이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서로의 필요를 채우며 말 그대로 상부상조했던 혼인식의 중심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웨딩업체가 대신한다. 사람의 잔치가 실상은 '자본의 잔치'가 되었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마을공동체의 해체로 웨딩산업은 자연스럽게 발생, 성장했겠으니 현재로서는 꼭 필요한 부분일 테지만, 문제는 현재의 웨딩산업이 제공하는 결혼식에는 '가치관'이 없다는 데 있다.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마치 필요한 듯이 꾸며내 가짜의 욕구를 만들어내고 그걸 '일생에 한 번'이라는 타이틀로 과시적인 소비를 부추기는 웨딩산업의 행태. '결혼은 돈으로 한다'는 생각을 많은 젊은이들에게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날 하루 한 시간을 위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는 돈을 쓰게 되는데 이 엄청난 사회적비용과 낭비되는 음식들은 자연에게 해가 되고, 돈 봉투를 들고 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부담이 된다.

오로지 '소비'를 위한 결혼식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가치를 발견, 그래서 성찰하게 해주는 성찰의 '식'은 없다. 그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혼식을 찍어내고만 있다.

결혼을 앞둔 사람으로서, 그래서 결혼식을 치러야만 하는 사람으로서 결혼의 참 의미를 성찰해 볼 수 있는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흔히들 '평생 단 한번 뿐인 결혼식'이라고 말들을 하니…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평범한 예비 신랑 신부는 나름대로 노력을 해가며 결혼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컨베이어벨트 타고 결혼하는 신부를 거부하며...

이미 웨딩산업이라는 거대한 자본이 만들어 놓은 결혼에 대한 틀이 공고했고, 그 틀을 극복하려면 우리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 첫 과정은 신랑과 신부 서로의 합의였다. 가치관이 비슷했기에 이 부분은 문제가 없었다. 우리의 결혼식은 물질주의를 경계하고 정신적 가치를 추구해서, 작더라도 사회에 선한 도움을 주자고 결정했고, 이를 통해 서로를 더 존경하고 격려하게 되었다.

다음은 대안을 찾는 것이었다. 근래에 대안결혼식들을 많이 하기에 여러 결혼식들을 알게 됐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과도한 소비를 지양하는 결혼식은 찾기 어려웠다. 에코결혼식, 친환경결혼식, 착한 결혼식 여러 타이틀을 걸고 진행되는 대안결혼식도 많은 비용이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올 초에 우연히 신문기사를 통해 한 커플의 결혼식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전혀 친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에 찾아가게 되었다('축의금대신 기부, 뷔페대신 다과').
이 분들의 결혼식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큰 틀을 잡게 되었다.

결혼식을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1부는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부모님 지인들을 모시고 '가족예식'으로 일반예식을 치르고, 2부는 신랑신부의 지인들을 모시고 '나눔예식'을 치르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부모님과의 마찰을 줄이고 더 쉽게 설득할 수 있었다. 부모님의 사회생활을 존중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결혼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축의금은 밥값? No! 축의금은 기부금

'나눔예식'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있어서 많은 고민을 하며 틀을 잡았다. 우리 둘을 위한 축의금은 받지 않고 그 축의금을 도움이 필요한 우리 친구인 성준(가명, 신랑과 2년 정도 알고 지낸 친구로 10대에 근육병이 발병하여 현재는 전혀 몸을 움직이지 못하지만 삶에 의지가 있는 박학다식한 친구랍니다^^)씨를 위한 모금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또 개인을 돕는 것과 더불어 장기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장애아동을 위한 재활병원건립'(푸르메재단에서 진행하는 '만원의 기적'프로그램)을 위해 쓰기로 결정했다.

우리 둘의 소득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축의금을 받지 않고 식사를 제공할 수는 없었다. 축의금이 곧 밥값이 되는 등식을 깨고 싶었기에 뷔페 대신 간단한 다과를 제공하기로 하고 청첩장에 '밥 한 끼 보다 더 따뜻한 마음을 얻어 가시라'고 썼다. 2부의 다과는 예비사회적기업인 마을공동체 품애에서 케이터링 서비스를 해주시기로 했다.

웨딩패키지를 거부한 나만의 실속패키지 만들기

결혼 준비의 80%가 여자의 몫이라고 했던가. 신부로서 준비해야할 것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물, 예단, 혼수 등등 우린 그 모든 것을 간소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우선 예물, 예단은 하지 않기로 부모님과 합의를 보았다. 그 외에 허례허식이라고 판단되는 모든 것들을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눔예식'을 준비하며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것은 일명 '스드메 패키지' 파괴하기였다. 스드메 패키지라 함은 스튜디오 웨딩촬영, 웨딩드레스, 메이크업을 패키지로 묶어서 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보통 250만 원~400만 원을 호가하는 금액이 든다. 얼마 전 한 통계조사에서 착한 결혼식을 하더라도 여자들이 포기하지 못하는 것 1위가 스드메패키지로 나왔다.

똑같은 스튜디오에서 얼굴만 바뀌는 웨딩사진은 갖고 싶지 않았다. 만들어진 욕구로 인해 생겨난 지극히 상업적인 술수라는 생각에 우리는 우리만의 웨딩촬영을 하기로 했다. 웨딩촬영의 목적은 우리가 나중에 70살, 80살이 되어도 펼쳐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사진을 찍자는 것이었고 그것을 위해 지난 10년이라는 연애기간 동안 우리가 함께했던 추억의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찍는 것으로 컨셉트를 잡았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곳, 우리의 주된 데이트 장소였던 도서관, 서로의 힘든 시기에 버팀목이 되어주며 함께 걸었던 종로의 뒷골목, 어렵게 공부를 마치고 사회인이 되어 새로운 꿈을 꾼 장소, 무엇보다도 우리 둘의 삶의 방향성과 가치관을 잡아주고 제2의 삶을 열어준 나의 대학. 대부분 평상복을 입고 찍었고 웨딩드레스를 매우 저렴하게 대여하는 곳에서 예쁜 드레스를 빌려 웨딩의 느낌을 내는 사진도 찍었다.

우리 둘에게 의미 있었던 장소를 돌아다니며 친한 친구가 찍어준 우리만의 웨딩사진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사진작가의 멋진 작품은 아니지만 그 사진을 통해 인생을 돌아볼 수 있으니 이제 우리가 평생 살면서 들춰볼 아름다운 앨범이 탄생한 것이다. 그렇게 스튜디오 촬영을 대신한 우리의 지난 10년간의 삶이 담긴 웨딩촬영을 완성했고 그 웨딩촬영을 위한 총 비용은 20만 원도 들지 않았다.

함께 공부했던 종로도서관에 있는 사직공원내에서 우리만의 웨딩촬영
 함께 공부했던 종로도서관에 있는 사직공원내에서 우리만의 웨딩촬영
ⓒ 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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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드레스다. 각종 수입명품 웨딩드레스가 판을 친다. 고소영 드레스니, 누구 드레스니 연예인들이 입는 고가의 드레스를 '일생의 딱 한번'이라는 미끼를 던져 예비 신부들이 '덥석' 물게 한다. 친환경웨딩드레스라고 하는 것들도 사실 가격이 싸지는 않아서 부르주아를 위한 에코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터넷을 샅샅이 뒤지다가 저렴한 가격에 품질이 괜찮은 드레스를 대여하는 곳을 만났다. 피팅을 해보고 수수해 보이는 드레스를 대여했다. 물론 보통 드레스 대여 비용의 절반 수준 정도로 대여가 가능했다. 남은 것은 메이크업.

결혼식을 하는 곳은 강북의 끝자락인데 청담동까지 가서 메이크업을 받고 당일 날 오려면 새벽같이 일어나야 한다. 왜 그렇게 해야 할까? 가까운 곳에도 많을 텐데…. 청담동메이크업을 한다고 해서 내가 소녀시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알아보니 강북에도 웨딩메이크업 하는 곳들이 꽤 있었다. 다만 패키지 상품이 아닐 뿐. 패키지에만 묶여있지 않다면 오히려 결혼식 당일에 몸도 편하고 시간도 절약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식장에서 꽤 가까운 곳에서 메이크업과 헤어를 하기로 예약했고 비용도 보통 패키지 가격의 절반 수준으로 할 수 있었다. 결국 나만의 패키지를 통해 비용 절감을 '어마어마' 하게 한 것이다. 물론 과정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렇게 조금만 노력해서 비용을 크게 절감하고 그 절감한 돈을 더 좋은 곳에 쓸 수 있다면야 이러한 노고쯤은 가치 있는 거니까.

관습을 극복하는 일, 우리 모두의 행복이 더 커지는 길

대충 이러한 과정으로 나만의 패키지를 끝내고 이제 남은 것은 결혼식이다. 12월 15일 오후 3시에 새로운 결혼문화를 알릴 '나눔예식'이 펼쳐질 것이다. 기존의 착한 결혼식이 허례허식을 줄이고 실속있게 하는 결혼이라면 우리가 준비하는 '나눔예식'은 착한 결혼식의 진보된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단지 결혼식 비용을 줄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밥값으로 나가는 축의금 대신 우리 둘의 행복이 다른 이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쓰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생각하면 설레고 떨린다.

'나눔예식'을 준비하며 내가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 뿌듯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고정관념과 관습의 틀을 벗어나 주체적으로 삶을 꾸려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결혼이란 일생일대의 큰 관문을 지나가며 이 연습을 톡톡히 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잘 적용될 것이라 기대해본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하고 행할 수 있는 것들이 자본의 논리 속에 파묻혀 벗어날 수 없는 구조 속에 갇혀있는 것들이 참 많다. 이러한 것들 때문에 개인의 삶이 힘들어지고 그런 개인이 모인 사회는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본의 휘둘림에서 벗어나니 좋은 뜻에 함께하고자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있다. 이것이 진정한 상부상조이고 인간사회의 따뜻함이 회복되는 순간일 것이다. 2012년 12월 15일 오후 3시에 이 따뜻함이 더욱 커져서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기를…. 한 평범한 예신(예비신부의 준말)의 기도는 오늘도 계속된다.

덧붙이는 글 | - 결혼식이 끝난 후의 기사 2탄을 기대하세요!^^

- 나눔 혹은 기부예식에 관심있으신분은 '마을공동체 품애'에서 진행하는 '착한혼인잔치 좋은날'에 문의하세요! 대안웨딩을 위해 일하는 예비사회적기업입니다^^(http://cafe.daum.net/Poomm) 저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



태그:#착한 결혼식, #나눔, #축의금, #품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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