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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준비에 바쁜 가족들 모습 ..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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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를 뽑아 가지런히 놓고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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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말경이다. 딸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집에 깍두기와 알타리, 겉절이김치 갖다 놨으니 내일 냉장고에 넣어라. 너희집은 따뜻해서 며칠 동안 그대로 놔두면 빨리 익으니깐" "엄마 김치를 또 했어?" "그럼 어쩌니 있는 거 다 해야지. 아빠가 힘들게 농사 지은건데" "엄마 힘들겠다. 병 안났어?" "하루 이틀 푹 쉬면 괜찮아" "엄마 잘 먹을게" 딸아이 목소리가 기어들어갈 듯 미안해 하는 목소리다.

우리 집은 11월 중순경에 김장을 했다. 그 다음주부터 추위가 온다고 해서 주말농장에 있는 무, 배추 등이 얼까봐 서둘러 김장준비에 들어섰다. 딸과 사위, 아들은 물론이고 두 손자, 올케도 와서 필요한 만큼 무, 배추를 가지고 가라고 했다. 그야말로 식구들이 총출동한 것이다. 남편이 총 지휘를 맡았다.

농장에서의 작업은 착착 잘 되었다. 그중에 평소 집안일이라고는 관심이 없던 아들이 제일 힘든 일을 도맡아 하기도 했다. 그 무거운 무, 배추를 어깨에 메고 자동차에 나르는 일을 모두 했으니. 속으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 배추를 무사히 집안에 들이고 잠시 쉬었다가 배추절이기를 시작으로 2012년 겨울 김장이 시작되었다. 몇년 전부터 겨울김장을 하면서 그 다음해 김장 전까지 먹을 김치를 담그고 있다. 일년치를 담그고 있어 김장의 양이 많은 편이다.

그렇게 일년치 김치를 고집하는 이유는 8월~9월에 태풍이 와 채소값이 급상승하니, 1년치김치를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다. 하여 올 여름에도 김치 걱정을 하지 않았다.

제일 먼저 배추절이기가 시작되었다. 목욕탕에서 배추를 절이고 있는데 딸아이가 옆에서 "엄마 이 다음에 엄마가 기운이 없을 때 나도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한다. 난 '그렇지 이젠 제대로 가르쳐야지. 내가 언제까지나 김치를 담가줄 수도 없는 일 아닌가' 하여 딸아이에게,

"그럼 넌 여기에서 절여. 엄마는 베란다에서 절일 테니깐.  배추에 소금은 너무 많이 뿌리지 말고 배추잎을 두세 칸 들고 그 사이에 소금을 뿌리고 절여. 작년에 소금을 너무 많이 뿌려서 잠도 못 자고 일찍 씻은 거 기억나지?"
"응 알았어요. 이렇게!"
"그래, 그렇게 조금씩 뿌려라 여긴 실내라 그렇게해도 잘 절여져."

그동안 김장을 할 때마다 딸아이가 많이 일을 도와주긴 했지만 제 손으로 배추를 절이기는 처음인 듯하다. 그리곤 난 베란다로 나가 다른 배추를 절이기 시작했다.

배추를 절이면서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생각났다. 내가 결혼해서 김장 때가 되면 친정집 앞마당에서 우리 김치와 친정집 김치를 함께 담갔다. 배추를 절이면서 친정어머니가 이것저것 가르쳐 주신 것이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깨 너머로 배운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황석어젓갈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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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이번에는 황석어젓갈도 담가보았다. 지난 5월인가 시장에 갔더니 황석어가 나의 발걸음을 잡았다. 황석어를 보는 순간 친정어머니가 때마다 담가 김장 때 쓰시던 기억이 났던 것이다. 저만치 가다가 도로 그곳으로 갔다.

한 바구니에 5000원씩하기에 두 바구니를 사다 황석어젓을 담가보았다. 성공적으로 담가졌으면 내년에도 담글 생각에서다. 김장을 준비하면서 황석어젓을 정리했다. 잘 담가진 황석어젓에 물을 조금 붓고 황석어가 으깨질 때까지 끓여준다. 식힌 다음에 고운 채에 걸러서 김장 속을 버무릴 때에 넣어주면 된다.

딸아이가 그것을 보더니 "엄마 이건 뭐야?" 하며 묻는다. "이거 옛날에 할머니가 담그시던 건데 엄마도 한번 해봤어. 김치가 맛있으면 내년에도 하려고" "어 엄마가 이런 것도 다 하고~~~"

두 군데에서 배추를 절이니 일이 생각보다 훨씬 일찍 끝났다. 그 다음엔 배추 속에 들어 갈 재료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생강과 마늘, 파, 갓 등을 준비했고 아들은 무를 씻어놓았다. 무채는 다음날 썰기로 했다. 미리 썰어놓으면 마를 우려도 있기때문이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배추를 뒤집으러 목욕탕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배추가 절여지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소금을 너무 덜 뿌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뒤집어 놓으면 괜찮겠지 하고 뒤집었다. 내가 절여 놓은 배추는 적당하게 잘 절여져 뒤집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잘 절여지지 않은 배추가 걱정이 되어 자주 들여다 보았지만 역시 줄지 않고 있었다.

 절여 씻어 놓은 배추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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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추속을 넣을 준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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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음날 아침이 되어 배추를 씻기 시작했다. 딸아이는 제가 절인 배추를 씻었다. 한동안 조용히 잘 씻더니 "엄마 절인 배추가 너무 싱싱해" 한다. 들여다 보았더니 배추가 덜 절여져도 너무 덜절여져 밭으로 도로 갈 지경이었다. "이걸 어쩐다. 그대로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그래 속을 조금 짭짤하게 해서 그냥 해보자." 해서 모두 씻어 건져놓았다.

딸과 사위,아들, 남편은 번갈아가면서 무채를 썰었다. 얼마 정도 써니 남편이 "이젠 그만 썰어도 될 것 같은데" 한다. "배추가 베란다에도 있는데 저기 있는 거 다 썰어야 해" 했지만 남편의 잔소리는 계속되었다. 잔소리가 듣기 싫어 "그럼 그렇게 할테니깐 모자라면 알아서해" 하곤 무채 썰기를 끝냈다. 무 속은 사위와 아들이 버무렸다.

그때에도 난 딸아이에게 "힘들어도 제일 먼저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려야 해. 그렇지 않으면 무채가 빨갛지가 않아" 하면서 무채를 버무리는 순서를 나름대로 가르쳐주었다. 무채도 다 버무렸으니 주변정리를 대충하고 배추에 속을 넣기 시작했다. 배추 속을 넣으면서  나의 걱정은 점점 현실로 나타났다. 아니나 다를까? 무채가 턱없이 모자라 김장은 중단해야만 했다.

중단한 상태에서 정리를 마쳤다. 그래도 김장 때에는 보쌈이기에, 보쌈에 막걸리를 한 잔씩 하면서 저녁을 먹은 후 담가놓은 김치를 가지고 딸아이 가족들은 제 집으로 돌아갔다.

덜 절여진 배추를 다음 날 보니, 도저히 그대로 김치를 담글 수가 없었다. 다시 절여 이틀에 걸쳐 배추김치를 또 담가야 했다. 난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5박6일 동안 혼자 나머지 김치를 해야만 했다. 어디 배추김치뿐이랴. 남은 무로 깍뚜기와 총각김치, 갓김치도 혼자 담갔다. 남편에게 간만 보라고 했다.

퇴근해서 돌아오는 아들은 며칠 동안 계속되는 김치담그기를 보더니 "헉, 엄마 오늘도 김치해?" 하며 놀란다. 그러면서 제 아버지에게 "그러게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해요" 한다. 남편도 그제야 미안했는지 "그러게 내가 잘못 말해서 네 엄마가 고생이 많구나" 한다.

딸아이는 딸아이대로 "엄마 미안해. 나 때문에 엄마가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네요" 한다. "아니야. 그러면서 배우는 거야. 걱정마 내년에는 더 잘 할 수 있을 거야. 엄마도 결혼해서 처음 김치 담글 때 그랬거든. 삼촌이 오랫동안 놀린 거 너도 잘 알잖아" 하며 딸아이를 달래주었다.

 무청 시래기, 김장끝~~~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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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정말 미안했는지 조용히 시래기를 엮으면서 "이렇게 지푸라기로 시래기를 엮을 줄 아는 사람은 아마 몇 명 없을 걸" 한다. "그러게 역시 시래기 엮는 것은 정말 잘해"하며 이번 김장은 막을 내렸다. 모르긴해도 이번 김장은 다른 해와 달리 정말 맛있을 것 같다.


태그:#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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