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내 18개 시·군 중에서 유일하게 전면 무상급식을 거부했던 이광준 춘천시장이 4일 마침내 무상급식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무상급식 실시를 요구하는 주변 여론에 결국 백기를 든 모양새다.
이광준 춘천시장은 4일 시청 기자실 열린공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내년부터 유치원과 초·중교를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상급식 불가 방침을 굽히지 않았다. '무상급식 실시'는 뜻밖의 결정이다.
이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무상급식으로 실시하기로 결정한 배경에 대해 "애초 무상급식보다는 교육환경 개선이나 주말 교육프로그램 확대가 더 시급하다고 판단했지만, 학부모들이 무상급식을 원하고 있는 데다 도 내 다른 지자체들이 모두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무상급식 실시를 요구해온 시민단체들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강원도가 무상급식을 실시한 지 1년이 다 돼 가는 시점에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 시장의 진심에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춘천시가 그동안 무상급식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하려던 시민들을 '퇴거불응'으로 고소한 행위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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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28일 새학기가 시작되기에 앞서, 춘천시청 기자실에서 '춘천무상급식예산만들기 약정운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시민단체 회원들. 이날 시민단체들은 이광준 춘천시장이 "예산이 없어 무상급식을 실시할 수 없다"고 한 것에 대해 "시민들이 직접 그 예산을 만들어주는 운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 운동은 어떻게 해서든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는 시민단체들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
ⓒ 성낙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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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이 진심이라면, 무상급식 요구하던 시민 고발 철회해야강원도는 올해부터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전면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광준 춘천시장만이 유일하게 무상급식을 거부해 왔다. 그러면서 올해 내내 시민단체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하지만 이 시장은 최근까지도 '무상급식 실시 불가' 방침을 고수했다. 이유는 "무상급식 말고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안이 더 많다"는 것이었다. 이 시장이 이런 태도를 취하고 있는 데는 '무상급식'이 진보 성향인 민병희 강원교육감의 선거 공약이었던 점도 크게 작용했다.
이 시장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은 지난 11월 27일 춘천을 지역구로 한 새누리당 김진태 국회의원과 간담회를 갖고 난 뒤다. 이날 이 시장과 김 의원은 '무상급식 문제'를 의제로 정책협의 간담회를 가졌다. 11월 27일은 18대 대선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첫날이었다.
이 간담회 자리에서 김 의원은 이 시장에게 "춘천시가 무상급식을 실시하지 않으면서 30, 40대 주부들을 중심으로 분위기가 식어가는 등 대선에 상당한 수준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춘천시민들의 목소리를 수용해 전향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이 시장은 "지역 국회의원도 나서서 무상급식 시행을 요구한 만큼 1주일간 고민해서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고 답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올해는 물론이고 내년에도 절대 무상급식에 참여하지 않겠다던 이 시장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자 도 내 일각에선 새누리당이 춘천시 무상급식 문제를 대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한 나머지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민주통합당 강원도당은 간담회 다음 날 성명서를 내고 "김 의원과 이 시장이 아이들의 점심값을 가지고 정치놀음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편, 지난 1년 동안 수차례 기자회견까지 열어가며 무상급식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춘천시 내 시민단체들은 5일 이광준 시장의 무상급식 실시 결정 소식에 일단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 시장의 진심에 의문을 제기했다.
춘천무상급식네트워크 김정애 대표는 "굉장히 늦었지만 춘천시민들이 원하던 무상급식을 지원하기로 한 점에 대해서는 환영을 한다"고 하면서도, "이광준 춘천시장이 그동안 시민단체들의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다가 어느 날 중앙의 압력을 받고 입장을 바꾼 것은 씁쓸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 시장이 '무상급식 실시 반대는 자신의 정치적 소신이다. 아무리 시민들이 요구한다 해도 안 된다'라고 했는데, 대선에 임박해 새누리당 국회의원으로부터 대선 분위기가 안 좋다는 소리를 듣고 무릎을 꿇은 것"은 "결국 이 시장의 정치적 소신이란 게 개인적이며 감정적인 것이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대표는 "이 시장이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진실성을 보여주고, 지금까지 자신이 취한 행동들이 잘못됐다고 판단된다면, 춘천시가 그 사이 (무상급식 실시 등을 요구해온) 시민들을 고소한 행위를 철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