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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지음 /(주) 자음과 모음 / 2012년 12월 3일(초판 4쇄)
▲ 여물물 소리 황석영 지음 /(주) 자음과 모음 / 2012년 12월 3일(초판 4쇄)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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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물 소리는 속삭이고 이야기하며 울고 흐느끼다 또는 외치고 깔깔대고 자지러졌다가 다시 어디선가는 나직하게 노래하면서 흐르고 또 흘러갔다."([여물물 소리] 488쪽)

이 대목을 읽고 나서야 [여물물 소리]라는 제목과 이야기꾼 이신통과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었다. 19세기, 반동의 시대 당시 이야기꾼은 '전기수'가 있었고, '강담사'가 있었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전기수가 책을 읽어주는 이였다면, 강담사는 재담꾼이다. 전기수나 강담사는 모두 독서 계층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어주는 일은 물론이려니와 재담꾼이 독서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을 터이니까.

이야기는 '나'라는 화자(話者)로 시작된다. 이 책의 주인공 이신통(이신)의 아내이다. 그 아내의 이름은 '연옥'이다. 시골 양반과 기생 첩 사이에서 태어난 서녀이다. 이 소설에서는 동학을 '천지도'로 표현하고 있으며, 몇몇 인물들의 이름도 그대로 사용하지 않으면서 소설의 픽션화를 추구하면서도, 사실적인 내용들을 토대로 긴 이야기를 이어간다.

'복도 없는 가련한 내 팔자'라 하소연하던 연옥, 그가 남편 이신통을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확대되고 성장하는 인식의 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피 엔딩이라고는 할 수 없는 여운들은 이 민족의 역사 혹은 민중의 역사를 닮았으며, 민중의 인식을 닮아있다.

무지렁뱅이 삶을 강요받을뿐 아니라 그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삶에 안주하지 않으며, 결코 개인주의로 귀착되지 않는, 그러면서도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삶의 안정감을 바라는 마음은 화자인 연옥의 마음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만일, 그렇게 삶이 연옥의 바람대로, 이신통과 함께 살며 아이들을 낳고 알콩달콩 살았다면 해피엔딩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저 그런 삶의 한 토막, 그리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권력자들에게 유린당하면서도 변혁의 의지를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그것을 운명이라 여기고 살아가는 평범한 민중의 삶이었을 것이다.

그 삶이 의미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드라마틱한 삶은 아닐 터이다. 반드시 드라마틱한 혹은 소설적인 삶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지만, 그런 삶이야 말로 살아 숨쉬는 삶이 아닐까?

연옥이와 엄마 월선이.

월선이는 박씨 댁에 첩으로 들어갔지만, 아들을 담지 못하자 쫓겨난 심정을 '뒤란의 개나 돼지보다 못하게 보던 것들이여'라고 한다. 그랬다. 우리네 역사에서 민중은 언제나 '뒤란의 개나 돼지보다 못한 신세'였다. 뒤란의 개나 돼지도 어느 정도는 귀하게 여김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자신들의 식탐을 위해서 사용하려는 것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들보다도 더 천대를 받는 '민중', 그 사슬은 이 소설의 시대적인 배경이 되는 19세기 갑오 농민전쟁이 있던 시기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그 표현이 조금 세련되었을 뿐, 여전히 이 땅의 민중들은 21세기를 살아가지만 '뒤란의 개나 돼지보다 못한' 삶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삶을 살이가면서도 오로지 절망 속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물물 소리처럼 속삭이고 이야기하며 울고 흐느끼다 또는 외치고 깔깔대고 자리러졌다가 다시 나직하게 노래를 부르며 쉼없이 흘러가는 것이 민중의 삶이 아닌가? 그렇게 이어져 온 민중의 역사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절망스러우면서도 멈출 수 없는 민중의 역사와 삶. 이 삶의 굴레를 벗어버리고자 싸우고 또 싸우지만 완벽한 승리를 거두지 못할뿐 아니라 늘 권력 혹은 폭압적인 힘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진다. 마치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그렇게 무력하게 무너진다. 이 정도면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이 아닐까 하는 순간에 또다시 희망의 끈이 잉태된다.

이신통의 아이를 낳다가 난산 끝에 잃은 연옥, 그러나 소설 말미에 연옥은 이신통의 대를 이어갈 아들을 낳는다. 애비도 없는 아들. 또다시 고통의 역사가 반복되지만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될 수도 있음을 복선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소설의 흐름도 그러하다.

이야기꾼 이신통과 천지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 같지만, 결국 주인공은 연옥이다. 연옥이의 삶은 그의 엄마 월선이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 저 밑바닥의 삶을 극복한 성공신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그것이 민중의 현실이다. 이것이 황석영의 소설 근간에 흐르는 여물물이라고 한다면 오독을 한 것일까?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근대적 상처'의 잔재가 지금도 우리 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고통과 상처투성이의 근대가 마감되고, 통일개벽시대를 열망하는 작가의 꿈도 말한다. 근대화운동의 절정이었던 동학혁명 이후 내후년이 120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그즈음에는 통일개벽시대가 열렸으면 한다는 바램.

그 바람이 이뤄지려면 올해 대선은 참으로 중요하다. 어떤 인물이 대통령이 되어야 통일개벽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대선을 앞둔 시점에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오고, 읽힌다는 것은 통일개벽시대의 문을 열 것인지 또는 30년 이상 다시 닫아둘 것인지를 묻고자 하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싶은 황석영의 마음일 수도 있겠다고 여겨진다.

대선정국의 회오리 속에 파묻히지 말고, 우리의 역사 면면을 돌이켜보며 차분한 선택을 하는 것으로도 수많은 질곡의 사슬들을 끊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신식무기로 무장한 관군과 제국주의 세력과 맞서는 이들의 손에 쥐어진 것은 창칼이나 총포 같은 무기가 아니라 민가 근처에서 아무렇게나 집어온 몽둥이나 낫 같은 것들뿐이었다.

그럼에도 그 아무렇게나 집어온 것들, 아무렇게나 뒤란의 개나 돼지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이들이 이 역살을 이끌어온 주체였던 것이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고, 읽은 후에도 그 무거움은 덜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재담꾼의 이야기는 그 무거움만큼 희망의 무게도 만만치 않게 느끼게 해준다.

대선을 앞두고 어떤 인물을 선택할까 고민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창비(2014)


태그:#황석영, #여울물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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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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