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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연애하던 때 제가 알던 자상하고 깔끔한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생활습관도 제게 맞추거나 양보하려 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내세웁니다.
 그는 연애하던 때 제가 알던 자상하고 깔끔한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생활습관도 제게 맞추거나 양보하려 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내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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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이도남님, 안녕하세요. 저는 한승연(가명·여)입니다. 연재기사를 읽기만 하다가 용기를 내어 사연을 보냅니다. 저는 올해 28살입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시점에, 차라리 과감하게 정리를 하는 게 나을까 싶어요. 무슨 말이냐고요?

J와 저는 스무살 무렵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입니다. 우리 둘은 오랜 기간 친구로 지내오다가 최근에야 연인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짧은 연애기간에 크고 작은 다툼이 있었지만, 몇 달 전 우리는 결혼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결혼식은 내년 봄으로 잡았습니다. 먼저 신혼 전셋집부터 알아보니 너무 비싸서 대출을 좀 받으려 했는데 신혼부부 우대 대출상품이 있더군요. 그래서 조금 일찍 혼인신고를 했습니다. 그렇게 집을 마련하고 함께 살게 됐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J는 연애하던 때 제가 알던 자상하고 깔끔한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생활습관도 제게 맞추거나 양보하려 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내세웁니다. 그 사람은 잠버릇도 나쁘더군요. 코도 심하게 골아서 도저히 옆에서 잘 수 없을 정도입니다. 연애 때 이미지는 온데간데없는 J의 모습에 실망하고 낙담하면서 하루하루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충격을 받았고 J와  계속 다투고 있습니다. 지금은 잠시 각방을 쓰고 있습니다.

갈수록 멀게만 느껴지는 이 남자, 같은 집에 살고 잠만 같이 잔다고 남편일까 싶더라고요. 서로 맞지 않는 사람들이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이 매일 싸우면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할까요. 결혼 결정이 너무 섣부른 것 같아서 후회하고 있습니다. 지금 같아선 아직 식도 안 올렸으니 차라리 혼자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물론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부모님들도 화들짝 놀라며 극구 만류하시겠죠. J도 결코 헤어지길 원하지는 않을 테고요. 그렇지만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 남자와 평생을 함께 사느니 늦기 전에 조용히 갈라서고 싶어요. 

1. 젊은 나이에 이혼이란 오점을 남기기 싫은데, 아직 정식 결혼식을 하지 않았으니 혼인신고를 무효로 돌릴 수는 없을까요.
2. 무효가 안된다면 이혼이라도 가능할지요. 이혼을 하려면 어떤 걸 준비해야 하는지요.

결혼은 장난이 아니다... 자기 선택에 책임을

결혼은 장난이 아닙니다. 20세 넘은 성인이라면 자기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선택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결혼은 장난이 아닙니다. 20세 넘은 성인이라면 자기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선택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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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남녀가 만나 결혼을 약속하고 혼인신고까지 했습니다. 곧 결혼식도 올릴 예정입니다. 그런데 한쪽이 결혼하기가 싫어졌습니다. 함께 사는 게 행복할 것 같지 않아서, 잠깐 살아보니 내가 꿈꾸던 그 사람이 아니어서 그렇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본격적인 얘기에 앞서 한승연씨에게 감히 한 말씀 드립니다. 결혼은 장난이 아닙니다. 20세 넘은 성인이라면 자기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선택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인생에 불쑥 끼어들었다가 빠질 권리는 없습니다. 결혼이 반드시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이혼이 반드시 결혼생활의 불만을 일거에 해소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이혼은 결혼보다 몇 배 이상 신중해야 합니다. 결혼생활을 강요할 뜻은 없습니다만 좀 더 어른답게 결정을 내리시길 바랄 뿐입니다.

복잡한 상황인만큼 하나하나 풀어보도록 하죠. 법률적인 문제부터 해결하고 또 다른 문제들을 살펴보는 게 좋겠습니다.

먼저, 결혼식을 하지 않았으니 두 사람의 혼인신고를 무효로 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설사 두 사람이 합의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는 결혼에 관해서 형식혼주의(또는 법률혼주의)를 택하고 있습니다. 말이 어렵다고요? 쉽게 설명하자면 부부가 결혼식을 올렸는지 이런 문제보다 '서류상으로 요건을 갖춰 관청에 신고를 했는지'를 더 중시한다는 말입니다. 혼인신고가 법률상 부부가 되는 중요한 요건이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결혼은 결혼식이 기준이 아니고 혼인신고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결혼식을 안 해도 혼인신고를 하고 같이 살았다면 법적으로 이미 부부입니다. 비슷한 사례를 한 번 볼까요.

전세대출 받기 위해 혼인신고 먼저... 혼인무효 소송 가능할까

[사례] 20대 후반인 A씨(여성)는 3살 연상 B씨와 1년 반 교제 끝에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 4개월 전 신혼집을 알아보다가 아파트를 전세로 계약했습니다. 잔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에 들른 이들은 신혼부부 전용 대출상품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서둘러 혼인신고를 하게 됐는데, 결혼식을 올리기 전 B씨는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A씨는 "대출 목적으로 혼인신고만 했을 뿐 결혼생활을 한 적이 없다"며 가정법원에 혼인무효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은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결혼을 무효로 돌릴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법원은 ▲ 두 사람이 결혼을 약속하고 일정까지 확정한 점  ▲ 전셋돈을 모두 지불하고 전세 아파트로 전입신고까지 함께 마친 점 ▲ 어느 한쪽만의 의사로 혼인신고를 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봤습니다. 단지 결혼생활이나 결혼식을 하지 않았다는 정도로는 결혼이 무효가 아니라는 겁니다.

결혼이 무효가 되려면 혼인신고 당시에 한쪽 또는 양쪽이 결혼의사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 밝혀져야 합니다(혼인 무효를 더 알고 싶으면 관련기사 '그녀 마음 돌리려고 몰래 혼인신고했다가'를 참고하세요).
   
간혹 과거 이혼 사실을 숨기기 위해 혼인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단순히 혼인했다가 이혼한 것처럼 호적상 기재돼 있어 불명예스럽다는 사유만으로는 (혼인 무효의)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한승연씨는 J씨와 결혼식만 올리지 않았을 뿐, 한 집에서 살고 있으니 더더욱 어렵습니다.  결혼을 무효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헤어지기를 원한다면 그건, 어쨌거나 이혼이 됩니다.

재판이혼, 상대에 이혼책임있거나 '참을 수 없는 고통' 있을 때만

결혼이 무효가 되려면 혼인신고 당시에 한쪽 또는 양쪽이 결혼의사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 밝혀져야 합니다.
 결혼이 무효가 되려면 혼인신고 당시에 한쪽 또는 양쪽이 결혼의사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 밝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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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혼을 할 수 있을까요. 이혼을 하는 방법은 협의 이혼과 재판 이혼 2가지가 있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 말씀드렸습니다. 협의 이혼은 이혼 의사가 합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J씨는 이혼을 원치 않는다고 하니 재판상 이혼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로서는 어떤 게 이혼 사유인지 잘 모르겠군요. 보내주신 사연을 아무리 살펴봐도 재판 이혼 사유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J씨가 외도를 하거나 무단 가출을 한 것도 아니고, 한승연씨가 시부모와 심각한 갈등을 빚은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친정 부모가 J씨에게 폭행·학대 등 부당한 대우를 한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재판으로 이혼을 하려면 J씨의 행동이 '이혼당해도 싸다'고 법정에서 밝혀져야겠지요. '성격이 잘 맞지 않다'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잠버릇이 고약하다'는 건 어떨까요. 법에서 말하는 이혼 사유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혼 소송이 가능하다면 아마도 저부터 수십 번 이혼당했을 겁니다.

J씨가 잘못했을지는 몰라도 이혼당할 만한 정도는 아닙니다. 부부는 행복한 결혼을 위해 서로 노력할 의무가 있습니다. 외도·가출·폭행과 같은 명백한 잘못이 아니라면 불화의 책임을 한쪽으로만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밖에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어야 합니다. 법원은 '부부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고, 혼인 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경우'라고 객관적으로 인정될 때 이혼 판결을 내립니다. 한승연씨 입장에서는 힘들겠지만 살펴보니 이혼 소송을 걸기에 그리 좋은 여건은 되지 않는군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혼, 첫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느껴진다면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친구·친지들의 축복을 받으며 식장으로 들어섭니다. 영화배우처럼 멋지고 준수한 외모를 지닌 신랑이 마중 나옵니다. 그의 팔장을 끼고 주례 앞에 서서 '어떤 경우라도 평생 사랑할 것을 약속한다'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결혼행진곡을 들으면서 축포 속에 행진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행진을 마치고 신혼여행까지 다녀온 뒤 부부에게 닥치는 현실은 우리가 꿈꾸는 것처럼 들뜨고 우아한 것만은 아닙니다. 서로 잠버릇도 봐야 하고, 가끔은 보기 싫은 꼴도 봐야 합니다. 배려심 없는 상대에게 상처를 입을 수도 있고, 배우자와 취향이 달라서 실망하기도 합니다.

한승연씨, J씨 때문에 실망한 만큼 상대도 나를 보고 실망했을 거라는 사실은 생각 안 해보셨나요. 사람이 이성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고 합니다. 더구나 연애도 아니고 치부까지 드러내야 하는 결혼생활이라면 그 기간은 더 짧겠지요. 새로운 남자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원치 않는 결혼을 계속 유지해야 할 필요는 없겠지요. J씨와 결혼생활을 계속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지 잘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진심으로 '그렇다'고 여겨진다면 결단을 내리십시오. 지금 첫 단추를 끼운 셈입니다. 그게 잘못 끼워졌다면 과감하게 단추를 풀어야 합니다. 그래야 더 많은 단추를 채운 다음에 다시 끼우는 고생을 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전에 J씨와 해결할 중요한 일이 남았습니다. 두 사람이 헤어지려면 이제 협의 이혼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원만하게 합의하지 않으면 이혼하기 곤란한 상황에 와 있습니다. 어찌보면 열쇠는 J씨가 갖고 있습니다. 정 헤어지고 싶다면 잘 설득하시거나 매달려 사정이라도 하기 바랍니다(협의이혼 방법은 다음 기사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10년 가까이 친구로, 연인으로 지내오다가 부부의 연까지 맺었습니다. 보통 인연은 결코 아닙니다. 저로선 극적인 화해를 거쳐 내년 봄 결혼식을 올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게 안된다면 더 이상 상처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갈라서기를 기원합니다. 한때나마 사랑했던 서로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 아름다운 이혼은 불가능한 걸까요. 이도남은 며칠 뒤 협의 이혼 이야기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알려드립니다
1. 기사에서 언급한 상담내용은 개인의 신상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명을 사용했으며, 실제 사연과 판결 등을 바탕으로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2. 여러분의 사연과 의견을 받습니다. 현재 이혼 문제로 고민 중이거나 부부생활과 관련된 궁금한 점, 그 밖에 부부문제·자녀양육의 법적 상담이 필요하시다면 연락주십시오. 연애 중이거나 결혼을 앞둔 남녀의 고민도 환영합니다. 단 소송 중이거나 개인 간의 첨예한 이해 관계가 걸린 사건은 사양합니다. 보내주신 상담내용은 개인의 신상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연재기사로 사용될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보내실 곳 : jundorapa@yahoo.co.kr

덧붙이는 글 |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생활법률 책 <생활법률상식사전>(2010)과 <생활법률해법사전>(2011)을 썼습니다.



태그:#이도남,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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