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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문기술자' 이근안씨가 지난 13일 인천지법에서 열린 납북어부 간첩 재심 사건에 증인으로 출석해 "고문을 하지 않았다"고 증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6년 11월 7일 징역 7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는 이씨의 모습. 이후 목사로 변신한 이씨는 자신의 고문행위를 '애국'이었다고 정당화하는 등 물의를 일으키다 올해 1월 목사직을 박탈 당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씨가 지난 13일 인천지법에서 열린 납북어부 간첩 재심 사건에 증인으로 출석해 "고문을 하지 않았다"고 증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6년 11월 7일 징역 7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는 이씨의 모습. 이후 목사로 변신한 이씨는 자신의 고문행위를 '애국'이었다고 정당화하는 등 물의를 일으키다 올해 1월 목사직을 박탈 당했다. ⓒ 연합뉴스
공개적인 행적이 드러나지 않던 '고문기술자' 이근안(74)씨가 지난 13일 납북어부 간첩 재심 재판에 검찰 측 증인으로 나와 "고문을 하지 않았다"고 증언한 가운데, 다음달 5일 비슷한 납북어부 간첩 재심 재판에도 이씨가 증인 명단에 올라있어 출석 여부가 주목된다.

이씨는 지난 13일 인천지법에서 열린 납북어부 간첩 안희천(2006년 사망)씨 사건 재심 재판(제12형사부 재판장 박이규)에 검찰 측 증인으로 나와 "(당시 조사할 때) 고문이나 가혹 행위를 하지 않았다", "나는 목사라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고문 등 가혹행위 여부를 다투는 재심 재판에 이씨가 증인으로 신청된 경우는 많았지만 거의 출석하지 않았다. 이씨가 이례적으로 증인으로 나섬에 따라, 역시 본인이 검찰 측 증인으로 신청되어 있는 납북어부 간첩 정규용씨 사건 재판에도 나타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씨 사건 재판은 다음달 5일 오후 2시 인천지법(제13형사부 재판장 송경근)에서 열린다.

정규용씨 사건과 안희천씨 사건은 모두 납북됐다가 풀려났던 어부가 그로부터 몇 년 후 간첩 혐의로 기소돼 각각 1977년과 1978년에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던 사건이다. 모두 불법감금과 고문 등 가혹행위가 있었다며 본인 또는 유족이 2011년 재심을 신청했고, 불법감금 사실이 받아들여져 현재 각각 재심이 진행중이다. 두 사건 모두 고문을 한 장본인으로 이근안씨가 지목되고 있다.

두 사건을 조사했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전 조사관은 "서로 다른 사건이지만 모두 이근안씨가 주도적으로 고문을 한 사건"이라며 "이씨가 재심에 직접 나와 증언을 한 만큼, 비슷한 사건인 정씨 사건에도 증언대에 설 것으로 보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안씨 사건은 당사자가 이미 고인이 된 반면, 정씨 사건은 당사자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직접 나설지 여부는 그날 가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1970년대 초부터 1988년까지 경기도경 대공 분야 수사관으로 활동했던 이씨는 수많은 사람들을 잔혹하게 고문해 '고문기술자'로 악명이 높았다. 2006년 출감 후 목사 안수를 받고 종교인으로 변신했지만, 목사 활동 중 자신의 행위가 애국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빚다가 올해 1월 14일 목사직을 박탈당했다. 김근태 전 장관의 고문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 <남영동1985>에서 배우 이경영씨가 연기한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다.

13일 오후 2시 인천지법 410호 법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지난 13일 오후 2시 인천지법 410호 안희천씨 사건 재심 법정. 증인선서가 시작되자 갑자기 술렁였다. 이근안씨가 다른 증인 3명과 함께 나란히 서서 선서를 했기 때문이다. 안씨 측은 이씨가 증인으로 신청된 것은 알았지만, 전례로 볼 때 실제 출석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약 20여명이 방청할 수 있는 법정은 평소와 달리 머리가 희끗한 방청객들로 꽉 차 있었다.

증언 순서가 맨 마지막이었던 이씨는 잠시 퇴장했다가 한참 후에 증인석에 섰다. 앞선 증인심문에서 77년 당시 이씨와 같이 안씨를 조사했던 나아무개 수사관은 185일의 장기간 불법구금 사실을 사실상 인정한 후였다.

재판 참석자에 따르면, 증언석에 선 이씨는 "고문이나 가혹행위를 하지 않고 잘 대해줬다"며 "대접을 잘해줬기 때문에 순순히 자백했다"고 말했다. 그는 "납북어부 간첩 사건은 무전기나 난수표 등 증거가 없다, 그래서 자백에 의해 사건을 처리했다"고 말했다. 또한 "내가 목사인 것 아시죠?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고도 말했다. 변호인 측이 연행 일자 등 구체적인 사실을 묻는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약 20분간 증언을 마친 안씨는 방청석에 앉아있던 사람들에 둘러싸여 법정을 빠져나갔다. 재판 참석자는 "같이 온 사람들은 전직 대공 수사관들로 보였다"면서 "호위를 받듯이 법정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했다"고 말했다.

'납북어부 간첩' 안희천-정규용씨 사건은 무엇인가

[안희천 사건] 인구 100여명 미법도의 비극 = 안희천씨 사건의 시작은 1965년 10월 2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기도 옹진군 삼산면의 작은 섬 미법도와 주변 섬 주인 108명은 어선 7척에 나눠 타고 서해 북방한계선 근처에 대합조개를 캐러 갔다가 북한군에 의해 피납됐다. 23일 후인 11월 20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고,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은 후 모두 방면됐다. 사건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11년 후부터 비극이 시작됐다. 인구 100여명의 작은 섬에서 76년부터 83년까지 다섯 차례나 간첩사건이 발생한다. 76년 오형근 사건, 77년 안장영 사건, 역시 77년 안희천 사건, 82년 황용윤 사건, 83년 정영 사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당시 '미법도의 비극'에 대해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정영과 황용윤은 1965년 같이 납북돼 이북에서 같은 여관, 같은 호실에 머문 사이였다. 황용윤을 제보한 안희천, 안희천을 제보한 안장영 역시 모두 같이 납북됐던 '납북 동기'였다. 곶감 꼬치에서 곶감을 하나씩 빼먹듯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납북 어부들이 차례차례 간첩으로 만들어졌다. 미법도의 마지막 간첩 정영은 악명 높은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납북 어선의 선장 안장영을 처음 간첩으로 만들러 미법도에 들어왔을 때, 이근안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또 안장영의 재판에 나가 증언까지 한 예비군 소대장이었다. 그런 그가 몇 년 뒤 간첩이 된 것이다."

이 연속 간첩단 사건의 정 가운데 있었던 안희천씨는 77년 2월 27일 이근안 등 경기도경 대공담당 경찰관들에 끌려간 후 8월 30일 구속영장이 발부되기까지 무려 185일 동안 불법 감금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다. 이때 안씨는 고문 등 가혹행위로 인해 다리를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3일 재판에서도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나아무개씨와 이근안씨는 안씨가 수사를 받던 도중 다리를 다친 사실은 인정했다. 이씨는 조사를 받던 안씨가 다리에 난 종기를 긁어 악화됐다고 증언했다.

미법도 사건 중 맨 마지막인 정영씨 사건은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와 진실화해위 조사를 거쳐 고문 등 가혹행위로 인한 조작사건으로 이미 결정났다. 안희천씨 사건은 진실화해위에서 임기 막바지에 직권조사를 시작했지만 위원회가 종료되면서 최종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정규용씨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정규용 사건] "이근안의 고문으로 온 몸이 시커멓게 변해버렸다" = 정규용씨가 소연평도 근해에서 조기를 잡다가 북한 경비정에 피납된 날은 1968년 6월 17일이었다. 이후 같은 해 11월 1일 인천항으로 귀환했고, 약 15일간 수사기관으로부터 심사를 받은 후 석방됐다. 하지만 8년 후인 1976년 7월 13일 정씨는 이근안 등 경기도경 대공담당 경찰관들에게 연행된다. 정씨가 불법 감금 상태에서 조사를 받은 기간은 약 33일이었다.

정씨가 진실화해위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진술했다.

"이근안이 지하조사실에서 '누가 왔다 갔느냐', '몇 명이 왔다 갔느냐', '돈은 얼마나 받았느냐'라고 물어 제가 그러한 사실이 없다고 했더니 길이가 1m 정도 되는 둥근 몽둥이를 가져와서 머리고 몸이고 가리지 않고 구타했습니다."

"내 오금지에 몽둥이를 끼우더니 꿇어앉으라고 했습니다. 그 자체로도 너무나 아팠는데 80kg이나 되는 이근안이 허벅지를 밟았습니다. 당시 나의 몸무게는 55kg 정도였고 키는 159cm였는데 이근안이 밟았으니 어떠했겠습니까. 이후 나는 걷지도 못하고 기어서 화장실에 다녔습니다. 나중에 내 몸을 보니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 몸이 검은 옷을 입은 사람처럼 시커멓게 변해버렸습니다. 정말 죽을 것 같았습니다. 결국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이근안이 적어준 대로 제가 옮겨 적었는데 그것이 자술서이며, 그것을 가지고 가서 이근안이 문답을 만들어와 지장을 찍게 하였는데 그것이 피의자신문조서입니다."

안씨와 정씨 두사람은 모두 재판 과정에서 고문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법원에서 징역 15년형이 확정됐다. 두 사건은 진실화해위 활동 종료로 조사가 진척되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던 몇몇 조사관들이 개인적으로 증거 및 증언들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각각 2011년 11월 2일과 2012년 6월 8일에야 재심이 개시됐다.


#이근안#납북어부 간첩#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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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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