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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 공동선언.'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단일화' 논의를 시작하고 처음 내놓은 합의의 결과물이다. 지난 7일 새정치 공동선언 실무팀이 가동돼 13일 가합의에 도달했지만 단일화 협상이 돌연 중단됨에 따라 18일에야 발표하게 됐다.

양측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바는 '새로운 정치'다. 합의문에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 낡은 정권을 교체하고, 과감한 정치혁신으로 새로운 정치를 창조하겠다"며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 앞에 책임을 지는 정치를 해내겠다"는 다짐이 담겼다.

그러나 이 같은 안이 현 정치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유권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아서 발생한 정치 불신의 문제와 동떨어진 채 '특권과 기득권 내려놓기'를 대안으로 내놨다는 비판이다.

"기득권, 특권 내려놓기? 20년 전부터 해오던 얘기"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새정치 공동선언' 실무팀이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인문카페 창비에서 첫 회동을 갖는 가운데 양측 실무팀이 취재진을 위해 손을 맞잡고 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새정치 공동선언' 실무팀이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인문카페 창비에서 첫 회동을 갖는 가운데 양측 실무팀이 취재진을 위해 손을 맞잡고 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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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19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쇄신안은 '특권과 기득권' 내려놓기로 접근했는데, 지금 유권자들이 정치 불신을 가진 것은 유권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고 유권자가 필요로 하는 결과물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이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 대안을 내놔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기득권과 특권 내려놓기는 20년 전부터 해오던 얘기 아니냐"고 꼬집었다. 그는 "국회의원 연금을 폐지하는 게 상징적인 의미는 부여할 수 있지만 유권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 것과 얼마나 직접적인 관계가 있냐"고 덧붙였다.

실제 문 후보와 안 후보가 합의한 공동선언문에는 기득권 내려놓기가 핵심 의제로 자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치와 정당을 현신해야 한다는 게 양측의 입장이다.

정치혁신을 위해서는 일단,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게 첫째다.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인사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보장하고 대통령의 사면권을 남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여기에 속한다. 더불어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내려놓기 위해 국회의원의 영리 목적 겸직을 금지하고 국회의원 연금제도는 폐지하는 방안이 담겼다. 또, 국회의원 정수 축소는 '비례대표 의석을 확대하고 지역구를 줄이는 과정에서 의원정수를 조정하겠다'는 문안으로 정리됐다.

정당혁신은 중앙당의 권한과 기구를 축소하고 강제적 당론을 지양하며 정당 국고보조금 축소를 통해 이루겠다는 방침이다. 더불어 기초의원 정당 공천제 폐지도 함께 내놨다.

[새정치공동선언 전문] "비례대표 확대하고 지역구 줄여 의원 정수 축소"

이 같은 결과물을 두고 서 연구위원은 "두 후보의 정치 쇄신이라는 것이 현실에 근거하지 못하고 주변적인 문제에 포커스를 맞춘 경향이 있다, 때문에 이 같은 안이 더 나은 정치를 만들지 여부는 알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정치쇄신안이 나온 과정에 '시민'이 사라진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공적 토론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양 캠프의 정해진 몇 사람들이 결정하고 이메일로 뿌리는 방식은, 본인들의 칙서를 국민에게 배포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언어 자체도 군주정의 언어다, 좋은 통치자가 '내 권력을 줄이고, 주변 신하들의 권력도 줄이고, 국민과 소통 잘하겠다'고 말하는 걸 직접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는 없다"며 "군주정에 가까운 민주주의 속에 우리가 할 일은 좋은 후보자를 뽑는 일뿐이다, 후보자의 선의에 의존하는 정치가 됐다"고 지적했다. 국민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만의 합의'를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발표한 데 그쳤다는 문제의식이다.

과정의 문제뿐 아니라 세부적인 안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박 대표는 "지역구를 줄이는 문제는 의원 한 사람이 대표하는 지역구민이 현 20만 명에서 40만 명으로 늘어나는 것인데, 그 수가 너무 많다"며 "당 보조금을 줄이는 문제도, 작은 정당에게 더 가중치를 두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당 권한 축소에 대해서도 박 대표는 "그냥 줄이는 게 답이 아니고 중앙당이 어떻게 시민에게 공익적 역할을 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진보정의당 "정치개혁 핵심 담지 않은 제한적인 개선책"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18일 저녁 서울 중구 정동 달개비에서 긴급회동을 갖고 야권 후보단일화 협의 재개에 합의한 뒤 악수하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18일 저녁 서울 중구 정동 달개비에서 긴급회동을 갖고 야권 후보단일화 협의 재개에 합의한 뒤 악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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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군소정당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매우 컸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대선후보는 이날 오전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정치개혁의 핵심은 담지 않은 제한적인 개선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정치공동선언은 정치의 위기를 부른 두 거대정당의 기득권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며 "2개의 거대정당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최선의 방안인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결선투표제가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박은지 진보신당 연대회의 대변인의 평가는 더 날이 서있다. 그는 이날 논평에서 "정당 보조금은 소수 정당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며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은 지역주의와 이권에 머물러 있기에 정당 보조금 축소가 '정당 혁신'으로 보일지 모르나, 소수 정당에게는 결정적 타격이 될 수 있고 양당제 고착으로 귀결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경제민주화, 일자리 혁신 등에 대한 여야정 국정 협의회 상설화 또한 소수 정당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새정치 선언이 아니라 문-안 단일화 계약서에 불과하다"고 평가 절하했다.

이같은 새정치 공동선언은 '국회의원 정수 조정'을 두고 양측이 맹렬한 신경전을 벌임에 따라 더 빛이 바랬다.
이날 오전 안철수 캠프 유민영 대변인은 의원 정수 조정을 두고 "우리가 합의한 것은 전체 의원 정원수를 조정하는 것"이라며 "늘리지는 않을 것이니 방향은 (축소로) 정해져 있다"고 밝혔다. 그러자 문재인 캠프 진성준 대변인은 "국회의원 정수는 총선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증감이 있다, 그런 차원의 조정"이라며 "축소의 방향이라고 해석하는 건 일방적"이라고 반박했다.

그동안 안 후보 측은 의원수 축소를 주장해왔으나 문 후보 측은 현상 유지를 주장해왔다. 결국 양측은 막판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해 '정수 조정'이라는 절충안으로 합의문을 작성했다. 합의문을 발표해 후에도 이를 둘러싼 해석이 엇갈린 것이다.

진 대변인의 브리핑 후, 안 캠프 박선숙 공동선대본부장은 "민주당에서 '축소'가 아니라고 한다면 합의문 작성했던 분들 간에 다시 만나 문구가 어떻게 담겼는지 복기해야 한다"며 "우리는 의원수 축소까지 포함한 조정으로 안다"며 다시 맞불을 놨다. 그러자 문 캠프 진 대변인은 또 브리핑을 통해 "안 후보 캠프에서 조정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아전인수로 축소라 해석하는 건 합의에 어긋난다"며 "유감의 뜻을 안 후보 측에 전달했다"며 한 발 더 나아갔다.

이처럼 양 측의 신경전은 점입가경의 형태를 띠었다. 하루 전인 18일 "새정치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이것이 개혁의 시작이다. 정권교체와 대선 승리를 위해 힘을 합치겠다"며 호기롭게 마주 잡은 문 후보와 안 후보의 두 손이 무색할 정도다.


태그:#새정치공동선언, #문재인, #안철수, #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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