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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품전이 열린다. 그 가운데 볼 만하고 갈 만한 전시회란 어떤 것일까? 그 기준은 시대성과 작가정신 아닐까? 류준화 작품전이 기다려지는 까닭은 그의 그림이 현실 속에 여성의 이야기를 독자적인 어법으로 풀어내는 흔치 않은 여성주의 작가이기 때문이다.

관훈갤러리 개인전 오픈에 앞서 '날개' 작품과 함께 선 류준화 작가
▲ 작가와 출품 작품 관훈갤러리 개인전 오픈에 앞서 '날개' 작품과 함께 선 류준화 작가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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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앞둔 13일. 관훈갤러리를 찾아 작가와 작품을 보았다. 전시장 입구에 걸린 '날개' 그림이 눈길을 끈다. 소녀의 등에 날개가 돋았다. 몸뚱이는 물에 담겼다. 날개는 자유, 물은 자연을 뜻하는 것일까? 세상살이 장단과 음영이 있다. 자본주의 편리함 이면에 자연은 부서지고 자본은 권력과 경쟁을 부추긴다.

이로 인해 여성의 인간성도 훼손 당하고 상처를 입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역설과 설화로 여성이 가진 원초적 힘을 건져 내어 날개를 달고, 꽃을 피우며, 처연하고 장엄한 여성성을 담아내고 있다. 인간성을 복원하는 길은 자연과 더불어 조화로운 삶에 있으며 그 길로 갈 것을 심연으로 그리고 있다.

올 봄. 봉화에 있는 작업실을 찾았을  때 류준화 작가는 그림만 그리는 게 아니었다. 농본기에는 남편과 농사를 일구어 먹을 것을 직접 자연에서 얻고 있었다. 조화로운 삶을 가꾸고 실천하는 작가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대로다. 그의 그림은 여성이 겪는 인습적이며 사회적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 지난히 이어 오는 여성문제의 행열에서 벗어나 땅과 더불어 땀을 흘리며 노동을 통해 건져 올린 심연을 인문학적 수사로 풀어 담고 있다.

지금까지 발표해 온 작업을 보면 가부장제, 집 사람, 약자로서 사라지는 여성들, 사회 제도로 억압받는 여성, 여성의 상품화 이미지, 가출소녀, 자본권력의 폭력성 따위를 연민과 분노의 시선으로 작품에 담아 왔다. 그리고 그림 전면에 소녀가 등장한다.

작가에게 물었다. 소녀란 무엇인가?

'처음엔 여성이 판촉 광고 이미지로 사용되는 현실을 풍자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현실 문제로 가출하는 어린 여학생들, 일제 시대 위안부 소녀, 더 거슬러 바리데기나 설화에 이르기 까지.. 시대 마다 여성이 겪고 감래한 이야기들을 잊을 수는 없다... 할머니, 어머니, 딸에 이르기 까지 같은 여성으로서 외면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경계에 선 소녀들이다...'

류준화가 구사하는 바탕 화면은 작가만의 독창성을 띄고 있다. 석회를 두텁게 바르고 아크릴과 콘테를 쓴다. 기름기가 없다. 전통 수묵화 같은 느낌이다. 그러면서 종이나 천이 가지는 가벼움 보다 중후한 벽화질감을 살려내고 있는 게 특징이다. 마치 흙벽에 그려낸 질감과 독특한 마감 처리는 소재가 주는 판타지와 잘 어울린다. 전통적 기법과 재료의 차별성은 류준화 스타일로 동서, 음양을 품고 있다. 또한 물감의 발묵과 흘림을 통해 작가 스스로의 존재감 드러내 보이면서 회화적 손 맛을 살리는 점도 매력이다.

그림 속 소녀들은 순진무구하여 초연하기도 힘겨워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남성과 여성이 되기 전 씨앗같이 중성적이다. 생식기능을 할 수 있는 전 단계로서 성적 구분이 애매한 경계에선 인간의 몸 덩어리. 여성과 남성이 함께 사랑을 나누고 쏟아 낸 사랑 덩어리, 생명 덩어리, 흙 덩어리에 가깝다. 음양이 각각 또는 합체하여 완전한 생명체- 자연임을 우주적 관점으로 세워 놓기도 한다.

▲ 낮과 밤 류준화 2012년 작. 머리는 산맥이요 몸은 소녀요 땅이다. 여성은 자연이요 우주다. 생명은 피고 지고 순환하고 새는 날아 든다.
▲ 낮과 밤 ▲ 낮과 밤 류준화 2012년 작. 머리는 산맥이요 몸은 소녀요 땅이다. 여성은 자연이요 우주다. 생명은 피고 지고 순환하고 새는 날아 든다.
ⓒ 류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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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여성을 꽃으로 비유한다. 여성과 꽃은 닮은 면도 있다. 꽃은 피고 진다. 씨를 맺는다. 꽃은 벌나비를 유혹한다. 화려하나 수분을 하고 생명의 목적을 달성하면 처연하고 장엄하게 자연처럼 스며든다. 그러나 여성이 성적 욕망의 대상, 상품으로 내몰리고 폭행으로 희생되는 현실은 암울하다. 이러한 시대에 꽃은 한 송이 칼이 되고 피가 된다. 류준화 그림 속 꽃은 사회적 여성으로서의 꽃이요, 화려함과 동시에 처연한 느낌을 담고 있다.

물은 꽃을 피우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물은 한없이 낮은 곳으로 흐른다. 상처와 영혼을 씻는다. 낮에 태양은 물을 하늘로 끌어 올린다. 무리가 무게를 이루면 비로써 내를 이루고 강물로 흐른다. 생명이요 순환이다. 꽃은 물 없이 피지 못한다. 꽃은 흙 없이 뿌리 내릴 수 없다. 류준화 그림에 드리워진 물은 생명이요 순환이요 자연이다.

여성의 몸은 대지와 같다. 자연이요 어머니다. 모든 생명은 자연으로 부터 어미로부터 비롯된다. 여성의 몸에 날개가 돋고, 꽃이 만개한 까닭은 모성의 자유로움, 숭고함, 아름다움, 당당함을 다의적으로 새겨 놓고 싶은 의도로 여겨진다. 그것은 속박, 억압, 불평등, 착취 따위로부터 원초적 해방과 복원을 촉구하는 듯이 보인다. 

한 마디로 류준화 그림의 특색은 불온한 시대(시간)에 소녀(존재)가 갈망하는 이상세계(공간)를 담고 있다. 꽃과 물과 땅과 산맥들. 새와 오리와 물고기들. 사회와 인습의 온갖 질시와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경이로움과 당당함에 대하여, 오래된 미래처럼 복원해 내고 있다. 그래서 소녀의 시선들은 불온한 시대를 등지고 있거나, 시선을 달리 하여 자연과의 교감을 추구하고 있다. 가끔 정면을 보더라도 왜소한 현실 그 너머를 주시하고 있다.

mixed media on canvas 181x227cm 2012
▲ 대지의 꽃 mixed media on canvas 181x227cm 2012
ⓒ 류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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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1986 경북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졸업
1990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2011 '봄' 갤러리 be one, 서울. 2009 따뜻한 강, 가나아트센터 미루, 서울. 2007 소녀야화, 학고재 아트센터, 서울. 외

주요 단체전
언니가 돌아왔다, 경기도미술관, 안산 . 2006 .사라지는 여자들, 여성사 전시관, 유쾌한 파종, 비나리미술관, 봉화 .
아방궁종묘점거프로젝트, 종묘 시민공원, 서울. 집사람의 집, 보다갤러리, 서울 .1999 여성미술제-팥쥐들의 행진, 예술의 전당 외

출간
한국현대미술선 012 류준화 . 출판회사 헥사곤 출간 2012

관훈갤러리 :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195 (전화 02-733-6469)



태그:#류준화,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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