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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에서 잡아준 백불짜리 호텔에서의 불안한 삼일을 끝내고 싼 값의 게스트 하우스로 옮겼다. 볼레 거리 주변을 돌고 외국인들이 선호한다는 호텔 몇 개를 보고 돌아왔다. 다채로운 화초들로 가득한 정원이 특히 마음에 들었지만, 숙소 내부가 너무 어두워 좀 더 알아보기로 하고 돌아온 날, 왠지 아침마다 호텔 방에서 바라보던 맞은 편 '아디스 웤' 게스트 하우스에 용기를 내어 가보기로 했다.

오~ 이런! 백 불짜리 호텔에 전혀 모자라지 않은 깔끔한 내부와 환한 조명과 깨끗한 화장실, 거기다 아침까지 제공. 배낭여행자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은, 그러나 한편으로 너무 아까워서 망설여질 정도의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우연히 찾은 게스트하우스 앞에서는 결혼식이 진행중이었다.
▲ 게스트 하우스 앞에서의 결혼식 우연히 찾은 게스트하우스 앞에서는 결혼식이 진행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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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호텔을 벗어나 정말 운 좋게 비교적 저렴하고 쾌적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마침, 결혼식이 진행중이었다. 차량은 신랑신부가 태우고 가려고 대기 중임
▲ 게스트 하우스 비싼 호텔을 벗어나 정말 운 좋게 비교적 저렴하고 쾌적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마침, 결혼식이 진행중이었다. 차량은 신랑신부가 태우고 가려고 대기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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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정교(Coptic authodox)의 독특한 독경소리가 숙소의 벽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콥트 정교의 독경소리는 새벽까지 이어져, 동이 틀 무렵에서야 잦아들었다. 아프리카인들의 종교적 심성과 열심만큼은 어느 민족보다 집요할 정도로 도드라진다.

확성기를 통해 시내 곳곳으로 퍼지는 독경소리는 누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을까? 신영복 교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이른 아침 명상을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 냉수마찰을 하고 깊은 명상의 단계에 이를 때 즘, 그 적막을 단숨에 깨뜨려버리는, 어느 교회의 새벽 종소리의 천박함을 이야기한 바가 있다. 그가 에티오피아에 왔더라면, 콥트 정교회의 독경소리도 그렇게 천박하다고 이야기했을까?

하지만, 밤새도록 이어지는 '시끄러운 확성기'소리 속에 담겨진 '절대자의 이야기'를 아무런 원성 없이 들어주는 이 도시가 위대하게 보이는 건 왜일까? 가나나 에티오피아나 비슷한 것이 있다. 이들은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고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절대자에 대한 원시적인 교감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아디스아바바 볼레 거리에 있는 에티오피아 정교회(사진 앞은 KOICA 양은주 인턴: 영양전문 NGO WITH 소속)
▲ 에티오피아 정교회 아디스아바바 볼레 거리에 있는 에티오피아 정교회(사진 앞은 KOICA 양은주 인턴: 영양전문 NGO WITH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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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예배실 입구입니다.
▲ 에티오피아 정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예배실 입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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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미아 주에 있는 지역인 멜카벨로 군의 한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모습입니다.
▲ 에티오피아 정교회 오로미아 주에 있는 지역인 멜카벨로 군의 한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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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에서 예배가 파한 후에도 이렇게 문 앞에서 기도드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 에티오피아 정교회 정교회에서 예배가 파한 후에도 이렇게 문 앞에서 기도드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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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가 있는 날에는 이렇게 걸인들이 나와서 교회 앞에 앉아있습니다.
▲ 에티오피아 정교회 예배가 있는 날에는 이렇게 걸인들이 나와서 교회 앞에 앉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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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경소리가 끝나며 아침을 맞아, 사무실로 향했다. 후원담당자를 만나 간략히 내일 일정을 들었다. 며칠 전 가나 대사관에서 행정과장으로 지난 2년여 간의 근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던 김연수씨가 잠시 에티오피아에 들렀다. 김연수씨는 월드비전의 후원자로 그가 결연한 아동이 에티오피아 남무 아와싸 주의 훌라 지역에 살고 있다. 후원담당자는, 후원자 김연수씨를 비롯한 우리 일행이 내일 아와싸 주 훌라 사업장에 갈 수 있도록, 아침 일곱 시까지 숙소 앞으로 차량을 보내주기로 했다. 놀라운 일처리 속도다.

시세이씨는 월드비전 아프리카 대륙 보건 전문가다. 출장을 마치고 오늘 출근하는 날이라 긴 대화는 돌아오는 목요일에 논의하기로 하고 오늘은 사업에 대한 개괄적인 논의만 진행했다.

아프리카대륙 보건전문가 시사이 입니다.
▲ 아프리카대륙 보건전문가 아프리카대륙 보건전문가 시사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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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세 가지를 논의했다.

하나는, 우리가 제출한 리서치 안이 어느 정도 실현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다. 아직 시세이 씨가 리서치(최종)안을 검토하지 못하였다. 이틀의 시간 동안 검토를 하고 목요일 오전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두 개의 지역개발사업장 전체를 18개의 클러스터로 나누고, 사업을 수행하는 일이 어느 정도 실현이 가능하고 또 어떤 어려움이 있을 것인지 아직까지도 감이 잘 오지 않는다.

둘은, 인력채용에 관한 부분이다. 이 사업을 위해 필요한 인력은 다음과 같다. 월드비전 에티오피아 인력관리팀에서 현지 인력채용 과정을 이미 시작하였다.

셋은, 현지 에티오피아 정부 방문 일정이다. 지금 본 보건사업에 대한 승인과정이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에티오피아 영양보건부서에서 본 사업에 대한 승인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검토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모든 원조사업은 내용과 예산 하나하나 모두 관계 공무원들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 직원들의 월급이 적절한지, 물품구매 가격이 적정한지까지 살핀다고 하는데,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 무척 괴로운 일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기존 원조사업이 일반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들이 많이 보고되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질 좋은 외제 모기장이 원조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와 현지 낡은 모기장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드는 것인데, 결국 건강한 '시장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를 가나에 있는 동안 나 역시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 명품 외제 의류가 싼 값으로 시장에 넘쳐났는데, 그 때문에 가나 내에 있던 의류공장 1000개 중 970개가 문을 닫았다는 보고가 있었다. 1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자비로운' 마음이 결국 현지 국가의 건강한 경제발전에 오히려 해를 끼치고 있다니, 원조사업이 결코 단순하고 쉬운 일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에티오피아 정부에서 이러한 철학기조를 가지고 원조사업을 하나하나 검토하는 것이라면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고 보고, 불편함이 있더라도 당연히 감수해야 할 것이다.

에티오피아 정부에서는, 사업이 두 개 군에서 진행되는데 왜 차량구매계획이 1대뿐인지를 놓고 문제를 삼고 있다. 중고차를 사면 안 되는가 물었더니, 중고차 구매는 정부의 규정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새 차를 사고, 사업 이후에는 정부에게 귀속될 것이다.

시세이와의 면담을 마치고 안전 담당 사무실로 갔다. 장기 체류자들의 겨우 반드시 이 안전강좌를 거쳐야 한다고 한다. 참, 그 전에 아동보호 서약서에 서명을 했다. 각종 절차가 까다롭지 않고 간단하게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이를 안내하는 직원분들의 얼굴에 성가시다거나 귀찮다는 표정이 없다. 정말 반가운 얼굴로 맞이해주는데, 이런 사소한 것들이 현지 문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데 아닌게 아니라 큰 도움이 된다.

"월드비전 에티오피아 차량외부에 왜 월드비전 로고가 부착되지 않은지 짐작이 되는데요?"
"창문에 쇠창살이 없는 게 신기해요. 가나는 온통 창문마다 쇠창살 투성이인데요!"
"차량 운행 중에 뒤의 차가 와서 범퍼로 우리 차량을 부딪혀도, 모른척하고 그냥 가야되겠네요?"
"소말리 주의 소말리인들과 소말리아 국가의 소말리인들은 같은 부족인가요?"
"오로미아 주 직원들은 무슬림 분들인가요?"
"사진 찍는 거, 조심해야 하나요?"

안전강좌는 무려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는데, 생각과 달리 정말 흥미진진했다. 강의를 진행하시는 담당자 역시, 연발 수시로 질문을 해대는 우리를 보고 고무되신 듯했다. 영사화면에 나오는 문장 하나하나를 거의 빠짐없이 차근차근 설명해주신다. 참가자는 나와 KOICA 인턴으로 와 있는 양은주 선생, 주가나 한국대사관 전 행정과장 김연수 후원자 이렇게 셋!

에티오피아 화폐가 비르(Birr, Br)인지도 모르고 파견을 나온 정말 무식하고 준비성 없는 나를 한탄하고 있던 와중에, 이 안전강좌는 짧은 시간 안에 내 갈증을 적지 않게 축여주었다. 주로 에티오피아 국경 지역에서는 테러 범주에 속하는 사건사고들이 많이 발생한다. 그리고 수도권 주변에는 테러의 가능성은 낮으나 대신에 좀도둑을 조심하라고 한다. 사실, 아프리카에서 가장 평화로운 나라라고 자칭 이야기하는 가나에서도 드물지 않게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나와 김연수 후원자는 비슷한 사건사고로 이미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다. 안전수칙을 잘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곳의 사정을 좀 더 속속들이 파악해야겠다. 1주일에 하루 정도는 현지 신문을 정독하기로 하자.

사업을 위해 구비한 차량. 운행 도중 진창에 빠졌습니다. (에리트리아 국경 부근 등 에티오피아 국가 외곽 부근은 치안이 좋지 않아 조심해야 합니다.)
▲ 차량 사업을 위해 구비한 차량. 운행 도중 진창에 빠졌습니다. (에리트리아 국경 부근 등 에티오피아 국가 외곽 부근은 치안이 좋지 않아 조심해야 합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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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2년 1~8월간 KOICA 빈곤퇴치사업을 진행하면서 겪은 이야기입니다. 사업초기인 2월 초 주에 있었던 일입니다. 분나는 에티오피아 최대 부족인 오로미아 어로 커피라는 뜻입니다.



태그:#에티오피아, #정교회, #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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