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석양을 바라보는 세월을 살면서 '길 위의 기도들'에 더욱 집착하는 것 같다. 길 위에서는 실로 많은 이들이 기도를 바치며 산다. 인생 자체가 어떤 형태로든 길을 가는 것이니, 삶 속의 모든 기도가 다 '길 위의 기도'일 테지만, 노상(路上)에서 기도를 하는 경우는 좀 더 각별하다.

나는 거의 매일 노상에서 기도를 한다. 매일 오후 걷기 운동을 하면서 기도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딜 가든 몸을 움직일 때마다 기도를 한다. 차 운전을 할 때도 노상 한 손에는 묵주를 쥐고 기도를 한다. 버스를 탈 때도, 서울에 가서 지하철을 탈 때도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는다. 항시 묵주는 내 손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기도들은 대개 나 혼자 하는 기도다. 오랜 생활습관이기도 하다. 그런데 근래 들어 많은 이들과 함께 노상에서 지속적으로 기도를 하며, 그 '길 위의 기도들'에 몸과 마음이 절로 뜨거워지곤 한다. 가끔 교회의 크고 작은 행사에 참여하면서, 또는 성지순례 중에 노상에서 기도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일회적이고 형식적인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근래 들어 노상에서 지속적으로 하는 기도들은 내 삶의 이정표를 되새기는 일이기도 하고, 분명하고도 확실한 내 삶의 궤적이 되기도 한다.

2008년 10월 25일, 40여 일의 병상생활을 마치고 오체투지 순례기도에 참여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딸아이와 고3이던 아들 녀석도 기꺼이 동참했다.
▲ 오체투지 순례기도 2008년 10월 25일, 40여 일의 병상생활을 마치고 오체투지 순례기도에 참여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딸아이와 고3이던 아들 녀석도 기꺼이 동참했다.
ⓒ 지요하

관련사진보기


길 위의 내 뜨거운 기도는 2008년부터 시작되었다. 문규현·전종훈 신부님과 수경 스님이 2008년 9월 4일 지리산 노고단에서부터 2009년 6월 6일 임진각까지 124일 동안 펼친 오체투지 순례기도에 나는 10여 차례 이상 참여했다. 2008년에는 40여 일의 병상생활을 마친 후라 건강 문제가 염려되었지만, 태안에서부터 먼 길을 달려가서 참여하곤 했다.

또 2009년에는 용산참사 현상에서 매일 저녁 거행되는 '용산미사'에 무수히 참례했다. 내가 서울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충남 태안에서 서울을 왕래하는 일은 그야말로 돈 쓰고 시간 쓰고 고생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2010년 11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매주 월요일 오후에는 서울 여의도를 갔다. 여의도 국회의상 앞에서 거행되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월요시국기도회 - 여의도 거리미사'에 빠짐없이 참례했다.

2009년 7월 31일의 용산미사에도 당시 대학생이던 딸아이와 대학 새내기인 아들 녀석이 함께 참례했다.
▲ 용산미사 2009년 7월 31일의 용산미사에도 당시 대학생이던 딸아이와 대학 새내기인 아들 녀석이 함께 참례했다.
ⓒ 지요하

관련사진보기


여의도 거리미사 이후로 7개월을 쉬고, 올해 7월 2일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에는 다시 서울을 가곤 한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거행되는 '대한문 미사'에 참례한다. '민주주의 부활을 위하여, 용산참사·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4대강·제주 구럼비, 그리고 오늘을 생각하는 월요미사'에 빠짐없이 참례하면서 그 '길 위의 기도들'에 뜨겁게 동참하는 것이다.

환갑을 먹던 2008년 중병을 치르고 나서 '길 위의 기도'에 처음 동참한 이후 벌써 4년이 지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어느덧 60대 중반 세월을 살고 있다. 노상에서 뜨겁게 바치는 기도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청년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길 위의 뜨거운 기도들이 나를 나날이 힘차게 살아가게 함을 깊이 깨닫곤 한다.

지난 22일 저녁에는 서울광장 미사에 참례했다. '시월 유신 40주년에 대한민국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지향으로 거행된 시국미사였다. 이 미사에 참례하면서 나는 최근 출간 시집 <불씨> 1000권을 가지고 갔다. 미사에 참례하신 분들께 전량을 무료로 배포했다. 내 생애 초유의 뜻 깊은 대규모 선물이었다. 출판 비용을 대주신 어느 신부님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2011년 3월 15일의 '여의도 거리미사'에서는 자작시 낭송을 하기도 했다.
▲ 여의도 거리미사 2011년 3월 15일의 '여의도 거리미사'에서는 자작시 낭송을 하기도 했다.
ⓒ 지요하

관련사진보기


시집을 받아보신 공주의 원로시인 한 분은 내게 친필 엽서로 귀한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나는 그 분의 엽서를 컴퓨터 모니터 옆에 놓고 간간이 보곤 하는데, 내용은 이러하다.

"살아 있는 '양심'의 힘찬 혼이 징소리처럼 울리는 시집이다. 자꾸만 왜소해져 가는 우리의 '잠'을 일깨우며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세찬 울림이다. 문인 지요하는 만년 청년이다. 만년 청년 지요하 만세! 태안반도 백화산의 웅혼한 깃발이 그에게서 힘차게 펄럭이는 것을 두 눈으로 보며, 불변의 시정신(詩精神)을 찬양한다."

22일 저녁 서울광장 미사 후 딸아이가 생활하고 있는 신림동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안산에서 사는 누이동생을 집 앞에 내려주고, 태안의 우리 집에는 01시 30분쯤 도착했다. 몸이 몹시 피곤하여 금세 곯아떨어졌다.

다음날(23일)에는 아침 일찍 충주를 가야 했다. 충주지씨 서산·태안종친회의 회장 노릇을 하고 있어서 여러 족장들과 함께 충주 관향(貫鄕)에서 거행되는, 시조부터 15세까지의 조상들께 올리는 중앙대제에 참석해야만 했다.

충주에서 돌아온 저녁 피곤한 몸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이메일 확인을 했다. 여러 개의 메일 중에 특이한 내용이 하나 있었다. '길 위의 기도'에 열중하며 사는 내 삶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내용이었다. 왜 그렇게 사느냐는 뜻의 의문부호가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어떤 말도 그에게는 소용이 없을 거라는 절망적인 생각도 들었다. 아득한 거리감과 이질감 같은 것도 내 가슴을 뻑뻑하게 했다. 나는 답장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답장을 쓴다면 무슨 말을 할지, 난감의 수렁 속에서 쓸데없는 궁리만 하다가 얼마 전에 지은 미발표 시 한 편을 그에게 보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달랑 시 한 편만 보냈다.

그가 내 시를 읽었는지, 읽었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 달리 할 말이 없어서 보낸 시일뿐이다. 수신을 한 그가 그 후로 아무런 말도 보내지 않고 있으니 그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내 삶에 대해 부정적인 눈으로 의문을 표하는 사람에게 달리 할 말이 없어서 답장 대신 보낸 시 한 편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한다.            

2012년 8월 27일의 '대한문미사'에서는 자작시 <불씨>를 낭송했다.
▲ 대한문미사 2012년 8월 27일의 '대한문미사'에서는 자작시 <불씨>를 낭송했다.
ⓒ 지요하

관련사진보기


<무심하지 않기 위해 그 길을 걷는다>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슬프다 괴롭다 암울하다
그리고 미안하다
그 길을 우회하고 싶지만
포기할 수 없는 길이다

궤짝 같은 철망 집 안에 갇혀 사는
개 세 마리
처음에는 나를 볼 적마다 미친 듯이
슬프게 짖어대었지만
자주 보다보니 낯이 익어선지
다만 물끄러미 내다보기만 한다
슬픈 눈이다 애절한 눈빛이다

마당가에 그런 개집들을 놓고
거적을 씌워놓고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서 사는
팔자 좋은 사람들을 본다

왜 개들을 그렇게 가둬놓고 기르는 걸까
개들이 애처롭지도 않나
미안하지도 않나
그것도 하늘에 죄 짓는 일임을
추호도 생각지 않는 걸까

개들을 그렇게 학대하면서도
저리 태연하고 무심한 사람들이기에
혹 사람들에게도 몰인정하지는 않을까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헤아릴 수 있는
눈은 가지고 있을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빼앗기고 억압당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연민의 눈으로 돌아볼 줄 아는
그런 가슴이 한 조각만이라도 있을까

그런 묘하고도 얄궂은 의문 때문에
나는 오늘도 그 집 앞을 걷는다
오십 보 가량 걷는 동안
무거운 의문을 반복적으로 길어 올린다
간절한 희원도 가슴 깊이 안으며
하늘을 쳐다보곤 한다
그것을 위해 나는 오늘도
그 집 앞을 걷는다
그저 다만 걸을 뿐일지라도...


태그:#대한문미사, #오체투지순례기도, #용산미사, #여의도 거리미사,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