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창규 유선순씨 부부는 '화천 산천어 막걸리'로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창규 유선순씨 부부는 '화천 산천어 막걸리'로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것 보니까 떨어졌나 보다..."
"별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미련이 남아 있나 봐요?"

이창규(49), 유선순(44)씨 부부는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 직접 만든 생막걸리를 출품했다. 운이 좋았던지 지난 8월 강원도 예선대회에서 중앙출전권을 획득했다. 중앙 최종 심사일인 지난 27일 아침부터 전화기 앞에서 결과를 기다렸지만, 오후 2시가 다되도록 아무 소식이 없다. 틀린 모양이다. 그렇게 포기하려는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우리술 품평회 추진위원회인데요. 출품하셨던 전통주 3박스를 지금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궁금한 결과는 알려주지 않고 느닷없이 술 세 박스를 보내 달란다. '혹시 입선 정도라도 한 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술을 보내달라고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부부는 서둘러 생막걸리를 싣고 서울을 향해 달렸다. 춘천쯤 갔을까. 추진위원회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실은 이번에 출품하신 '화천 산천어 막걸리'가 대상을 차지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부부는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전국에 전통주를 제조하는 업체만 600여 개소에 달하고 이 가운데 지역 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진출한 전통주도 수십 종에 이른다. '술 제조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7개월 된 사람이 무모한 짓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입선 정도라도 한다면 대단한 성공일 거라 생각했는데 '대상'이란다.

지난 10월 25일부터 28일까지 나흘간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우리 술의 세계화와 명품화를 위한 '2012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각 지자체에서 예심을 통과한 125개의 각종 주류들이 출시됐다. 평가항목은 맛, 향, 색상, 후미(마셨을 때 느껴지는 알코올 성분의 세기와 쾌감도) 등. 배점은 맛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산골 마을인 화천에 "술집을 차린 것은 순전히 물맛 때문"이었다. 그래서 평가 항목 중 맛 부문에서는 자신 있었지만, 대상을 차지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당신이 고생한 덕분이지, 고생 많으셨수."
"내가 할 소릴 먼저 해 버리면 난 할 말이 없잖아요. 축하해요."

서울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이창규씨가 건넨 축하에 부인 유선순씨는 그 공을 남편에게 돌렸다.

산천어 막걸리에는 산천어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화천 산천어 막걸리
 화천 산천어 막걸리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아버님께서 옛날에 양조장을 하셨었어요. 결국 당시 정부에서 세금을 많이 거두기 위한 조세정책 때문에 폐업했지만, 어렸을 때 아버님께서 만드시는 전통주를 보고 자란 것이 대학 때 식품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결국 술집 주인이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30일 저녁, 취재를 위해 이창규씨 부부가 운영하는 공장을 찾았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전통주 개발에 나선 것은 지난해 7월이었다. 부부는 산골 마을을 돌며 전통주 공장 적지를 찾아 다녔다. 가장 중요한 건 전통주 생산에 필요한 물이다. 마을별 간이 상수도가 설치된 마을의 물맛을 보다 머문 곳은 화천군 하남면 원천리. 한자로 근원 원(原)자에 내천(川)자를 쓰는 마을이다. 최초의 물이 발원한다는 의미의 마을이다.

그곳에 정착기로 결정하고 기계설비도 들여놓았다. 전통주 명칭은 '화천 산천어 막걸리'로 정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산천어축제의 성공으로 화천군이 전국 최고의 청정지역으로 꼽혔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금년 3월22일 첫 제품출시와 함께 마을 어르신들을 초청했다. 일종의 품평회인 셈이다.

"마을 어르신들의 평가는 정확했어요. '단맛이 강하다. 이런 술은 당장 마시기는 좋아도 유통기간이 짧다'는 거예요."

문제는 온도인 것 같았다. 온도 조절을 수십 번 반복하며 술맛을 관찰했다.

"집사람은 미각이 뛰어난 편인데, 나는 술맛에는 좀 둔감합니다. 이러다 하나밖에 없는 부인을 술 중독자로 만드는 것 아닌지 사실 걱정도 되었습니다."

며칠간의 테스트 끝에 결국 마을 어르신들의 긍정적인 평가도 이끌어 냈다. 그러나 이 술을 어떻게 알리느냐가 문제였다. 무조건 차에 싣고 산속 마을과 읍내에 위치한 식당과 슈퍼, 구멍가게 가리지 않고 찾아 나섰다.

"이번에 새로 출시한 화천 산천어 막걸리입니다. 한번 받아 보시죠..."
"우리 냉장고 보세요. 그거 받아서 넣을 구석이 있나... 또 새로 나온 막걸리를 누가 찾는다고, 우린 안 받아요."

각오했던 일이다. K사와 S사 등 대기업에서 생산한 막걸리가 잠식을 한 곳을 뚫는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일 것이라 예상은 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상가들의 박대는 심했다. 사정사정해서 어느 집에는 막걸리 한 통, 또 어떤 집에는 두 통을 냉장고에 넣도록 허락받았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넣어둔 술이 일 주일이 지나도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심한 좌절감도 느꼈다.

"아마 아내의 용기와 아이들의 위로가 없었다면 스스로 무너졌을지도 모릅니다."

지역에서 개최하는 행사는 가리지 않고 무조건 찾아다녔다. 무료 시음회를 통해 맛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맛 괜찮네. 근데 이거 산천어 고기로 담근 술이에요?"
"순수한 우리 쌀로 만든 것이구요. 산천어 브랜드는 청정하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그렇게 한 겁니다."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도 "산천어로 담근 술이냐?"라는 농담을 했다. 결국 엉뚱한 관심이 이 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3개월 동안 5개 읍면 전체를 10번 정도 돌았더니,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내가 보는 앞에서 가져가라고 던지던 사람이 잘 안 팔리는 술은 냉장고 구석으로 치우고 '산천어 막걸리'를 앞에 채우는 것을 보고 가슴이 찡했었습니다."

"전통주 제조와 관리는 아기를 다루듯 해야"
[미니 인터뷰] '화천 산천어 막걸리' 만든 이창규씨


이창규 유선순씨 부부
 이창규 유선순씨 부부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  동종 대기업 생산 제품과의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의지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다소 모험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대기업 생산제품이라고 무조건 신뢰하는 풍토 때문에 어려웠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대기업에서 매일 시골 마을의 작은 매장을 점검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매일 매장을 돌면서 (유효기간이 남아 있더라도) 시간이 좀 지난 제품은 교체해 주고, 수시로 고객의 평가를 접수하고, 잘못된 부분은 바로 개선하는 대면소통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 공장을 보니까 미리 만들어 놓은 제품이 거의 없네요. 그만큼 잘된다는 건가요?
"그렇다면 좋게요. 전통주, 특히 생막걸리는 생산 이후 여름에는 3일째, 겨울에는 5일째부터 20일까지 최고의 맛을 냅니다. 그런데 그것도 보관상태에 따라 다르다는 거죠. 그래서 매장을 돌다가 냉장고 부족으로 밖에 쌓아두는 집을 보면 공급물량을 조절합니다. 밖에 오래 있다 보면 아무래도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 우리 술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면 안 되거든요."

- 전통주 제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먼저 정성이겠죠. 다음은 물, 공기, 환경, 적정한 온도구요. 제조기술은 맨 나중인 것 같습니다. 술은 아이와 같아요. 그래서 관심과 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 특별히 막걸리를 고집한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나라는 쌀 문화권이기 때문에 쌀로 만든 술이 한국 사람들의 체질에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술이든 술은 다 마약과 같습니다. 많이 마시게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따라서 술을 음미하고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마지막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부인과의 갈등 같은 것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우리 부부의 기상 시간은 새벽 5시입니다. 그 시간부터 당일 물량의 제조 작업을 시작해 오전 9시면 끝납니다. 이렇게 해야 낮에 고객들과 같이 오랜 시간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용한 새벽 공장 안의 기계 소리는 상대적으로 크게 들립니다. 기계를 다루는 일이라 집사람이 다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처음엔 사소한 실수에도 큰 소리로 나무라곤 했습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 미안하단 말을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이 기회를 통해 '정말 고맙고, 미안하다' 는 말을 해 주고 싶습니다."



태그:#이창규, #유선순, #산천어막걸리, #화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밝고 정직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오마이뉴스...10만인 클럽으로 오십시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