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인이기도 한 이 집 주인 손흥기(57)는 자리에 앉자마자 능이버섯 자랑부터 늘어놓는다.
▲ 능이수제비 시인이기도 한 이 집 주인 손흥기(57)는 자리에 앉자마자 능이버섯 자랑부터 늘어놓는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가을이 점점 깊어간다. 산하가 온통 울긋불긋한 단풍불을 날름거리고 있다. 일찍 떨어져 여기저기 뒹구는 갈빛 낙엽도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을 뒤척이며, 지나치는 사람들 마음에 '쓸쓸'이라는 낱말을 툭툭 내던지고 있다. 날씨가 쌀쌀해서 그런지 배도 빨리 고프다. 이런 때는 온몸을 데워주는 뜨끈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 그립다. 

그렇다고 도시에서 자주 먹는 콩나물 해장국이나 북어국, 설렁탕, 순대국, 선지국 등은 그리 생각나지 않는다. 가을도 품고, 그대 마음도 사로잡고, '가을 타는 남자' 길손(글쓴이) 입맛까지 사로잡는 음식, 그런 음식을 먹고 싶다. 바람 앞 낙엽처럼 어디로 굴러가야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다 잡을 수 있을까.

이런 가을 음식, 저런 가을 음식... 이런 가을 풍경, 저런 가을 풍경... 길손 마음을 그동안 사로잡았던 그 가을 음식과 그 가을 풍경을 떠올리며 프랑스 조각가이자 근대 조각의 시조라 불리는 오귀스트 로뎅(1840년 11월 12일~1917년 11월 17일)이 빚은 작품 '생각하는 사람'처럼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때 문득 떠오른 음식이 몇 해 앞 강원도 내설악이 품고 있는 계곡 허리춤께 붙은 한 식당에서 입맛 쩍쩍 다셔가며 먹었던 능이칼국수와 능이수제비다. 에라이~ 모르겠다. 전화를 건다. 강원도 인제에서 능이칼국수와 능이수제비 조리를 잘하는 그 집. 살면 얼마나 더 오래 살겠다고 먹고 싶은 음식마저 '다음에~ 다음에~' 뇌까리며 아까운 세월만 다 보낼 게 아니라는 그런 생각에.
     
인제군 북면 한계리에 있는 내설악예술인촌으로 옮긴 지금은 능이로 만든 칼국수와 수제비를 차림표 맨 앞쪽에 내세우고 있단다
▲ 내설악예술인촌 예뜰 인제군 북면 한계리에 있는 내설악예술인촌으로 옮긴 지금은 능이로 만든 칼국수와 수제비를 차림표 맨 앞쪽에 내세우고 있단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능이는 딸 때에는 먹음직스러운 황갈색을 띠지만 따서 두면 금세 검은색으로 바뀐다
▲ 음식점 입구에 놓인 능이버섯 능이는 딸 때에는 먹음직스러운 황갈색을 띠지만 따서 두면 금세 검은색으로 바뀐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음식점 밖에 있는 파라솔과 정자, 그곳에서 바라보는 가을 텃밭도 한 폭 풍경화 그대로다.
▲ 파라솔 음식점 밖에 있는 파라솔과 정자, 그곳에서 바라보는 가을 텃밭도 한 폭 풍경화 그대로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버섯 삼총사 능이버섯과 송이버섯, 표고버섯 등수를 매기다면?

"네? 내린천에 있는 그 음식점을 다른 분에게 넘기고 내설악예술인촌에 새로운 음식점을 열었다구요?"

그랬다. 그때 그 음식점은 아무리 바라보아도 또 바라보고 싶은 설악산과 연초록빛으로 계곡을 휘감는 내린천 품에 포옥 안겨 있었다. 그때는 능이로 만든 칼국수와 수제비가 곁다리로 끼어 있었다. 인제군 북면 한계리에 있는 내설악예술인촌으로 옮긴 지금은 능이로 만든 칼국수와 수제비를 차림표 맨 앞쪽에 내세우고 있단다.

10월 18일(목) 저녁 6시. 1박 2일 가을나들이로 박재웅 시인, 정동용 시인과 함께 강원도 인제군을 거쳐 원통으로 간다. 우리가 가는 그 음식점은 인제정류소보다 원통정류소에서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말이 떠돌 정도로 인제와 원통은 예로부터 사람들 발길이 드문 곳이었다. 같이 버스를 타고 가던 연인이 고속버스가 인제에 닿자 "인제, 인제 왔네"라는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지금은 교통이 아주 편리하다.

"어서 오세요. 오랜만입니다."
"히야~ 여기가 지상낙원일세."
"그래요. 여기 꾹 눌러 사는 저희 부부도 가을 산색이 하루 하루 다르게 절경으로 바뀌는 내설악에 자신도 모르게 포옥 빠져들곤 하지요."
 
시인이기도 한 이 집 주인 손흥기(57)는 자리에 앉자마자 능이버섯 자랑부터 늘어놓는다. 손 시인은 "능이버섯은 깊은 산 계곡에서 자라 탁월한 약효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짐승들이 입은 상처까지 낫게 하는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며 "산에 사는 구렁이가 상처를 입으면 능이버섯 그늘을 찾아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에 능이버섯이 많이 돋아난 곳에서는 특히 뱀을 조심해야 한다"고 귀띔한다.

그는 "능이는 딸 때에는 먹음직스러운 황갈색을 띠지만 따서 두면 금세 검은색으로 바뀐다"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해서 독특한 감칠맛과 향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능이버섯은 건조, 염장, 냉동 등 어떻게 보관해도 되며 사시사철 조리를 할 수 있다는 투다. 음식점 들머리에서 가을볕에 시커먼 빛을 띠며 마르고 있는 그 능이버섯도 마찬가지라는 것. 

예로부터 제철음식이 가장 좋다고 했다. 능이버섯은 가을철에만 잠시 딸 수 있다. 그러하니 능이버섯은 언제든지 조리할 수 있지만 가을철에 먹는 능이버섯이 으뜸 아니겠는가. 그래. 능이는 버섯 가운데 으뜸 버섯이라고 할 만큼 맛과 향도 뛰어나다. 오죽했으면 버섯 삼총사 가운데 1능이, 2표고, 3송이'라는 등수까지 매겼겠는가. 물론 지금은 일본 수출로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송이버섯에게 그 자리를 빼앗기고 있긴 하지만. 

음식점 곳곳에 예쁘게 꽂혀있는 책들과 인형들은 마치 북카페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 음식점 안에 있는 책 음식점 곳곳에 예쁘게 꽂혀있는 책들과 인형들은 마치 북카페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식탁에는 훈민정음 글씨가 새겨진 깔개가 깔려 있다
▲ 식탁 식탁에는 훈민정음 글씨가 새겨진 깔개가 깔려 있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음식깔개에는 손흥기 시인 시가 실려 있다. 나도 그 곁에 한 편 썼다
▲ 음식 깔개 음식깔개에는 손흥기 시인 시가 실려 있다. 나도 그 곁에 한 편 썼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송이버섯은 사내, 능이버섯은 여성을 닮았다

"능이버섯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고 암세포 증식을 억제시키는 성분 등은 일반 버섯류의 효능과 같지만 특히 체내에서 지방이 형성되는 것을 막고 열에 강하지요. 그 때문에 몸속에 있는 독기운과 노폐물, 콜레스테롤을 체외로 배출시켜 피를 깨끗하게 해준다고 알려져 있어요. 비만과 암,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등에도 효과가 뛰어나답니다."

능이버섯은 민간에서 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 체증을 내리는 데도 쓰인 귀한 음식이다. 송이가 사내답게 생겼다면 능이가 지닌 거무튀튀하고 펑퍼짐한 갓은 여성을 닮았다. 옛날 사찰에서는 송이가 흉하게 생겼다 하여 능이를 더 높게 쳤다. 사찰음식에서도 능이를 두고 '하늘이 내린 맛'이라 할 정도였으니 더 이상 무슨 사족을 붙이겠는가.

"하긴,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더 낫다는 옛말이 있듯이 능이버섯으로 만든 칼국수와 수제비를 일단 먹어보자구."
"나는 수제비를 좋아하니 능이수제비를 먹을 거야. 박 시인과 정 시인은?"
"나는 칼국수! 그래 능이수제비와 능이칼국수가 맞장을 뜨면 누가 이기는지 막걸리 내기를 하자구."

길손이 주문한 능이수제비를 한 술 뜨자 이내 내설악이 내뿜는 울긋불긋한 단풍불이 몸과 마음으로 옮겨 붙는가 싶더니 온몸으로 옮겨 붙는 듯 쌀쌀했던 몸이 포근하게 데워지기 시작한다. 능이칼국수를 허겁지겁 먹고 있는 박 시인과 정 시인 이마와 목덜미에서도 구슬처럼 동그란 땀방울이 송송 솟으며, 내설악 단풍빛을 굴린다.

이곳 강원도에서 이름 높은 황태, 그 대가리와 다시마, 멸치, 무, 대파 등으로 국물을 오래 우려낸 탓일까. 국물을 입에 머금자마자 절로 넘어갈 정도로 그 맛이 구수하고 깊다. 수제비와 함께 건져먹는 능이버섯도 쫄깃쫄깃하면서도 그 향이 입 안 가득 은근히 번진다. 수제비가 능이버섯인지 능이버섯이 수제비인지 자꾸 헛갈린다.

밑반찬으로 나온 풋고추와 붉은 고추, 김치, 도라지나물, 가지나물 등도 그 맛이 도시에서 먹는 밑반찬은 뺨 맞을 정도로 혀에 착착 감긴다. 이 밑반찬 재료들은 모두 이 집 주인 손흥기 시인이 음식점 곁에 있는 텃밭에서 직접 가꾼 채소들이다. 잡곡밥 한 공기를 덤으로 내놓는 것도 이 집 주인 마음 씀씀이가 손님을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 엿 볼 수 있는 순간이다.

능이로 만든 수제비와 칼국수를 먹을 때 손흥기 시인이 권하는 인제막걸리 한 잔도 능이버섯을 닮아 술술 잘도 넘어간다
▲ 손흥기 시인 능이로 만든 수제비와 칼국수를 먹을 때 손흥기 시인이 권하는 인제막걸리 한 잔도 능이버섯을 닮아 술술 잘도 넘어간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능이로 만든 수제비와 칼국수를 먹을 때 손흥기 시인이 권하는 인제막걸리 한 잔도 능이버섯을 닮아 술술 잘도 넘어간다. 음식점 곳곳에 예쁘게 꽂혀있는 책들과 인형들은 마치 북카페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나무판에 새겨져 있는 신경림 시인 시 '목계장터'와 이 지역 시인들이 쓴 시들은 눈요깃거리다. 음식점 밖에 있는 파라솔과 정자, 그곳에서 바라보는 가을 텃밭도 한 폭 풍경화 그대로다.

"그래. 어때? 능이칼국수 맛은 어땠어?"
"능이칼국수나 능이수제비나 모양만 다를 뿐이지 같은 재료로 만든 음식인데 어찌 다른 맛이 나겠어. 차이라면 보는 맛과 씹는 맛만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게 아니겠어."
"아, 이런 공기 맑고 경치 좋은 곳에서 이렇게 좋은 음식을 먹으며 살다보면 절로 신선이 될 것만 같아."
"얼씨구!"
"절씨구!"

덧붙이는 글 | [문학in]에도 보냅니다



태그:#능이칼국수, 수제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