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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다 : 부족민들이 선거로 임명한 대표, 임기가 정해져 있다
아빠뚤라 : 역시 부족민들이 선거로 지위를 부여한, 부족 최고 사령관

에티오피아의 절반 이상의 면적을 차지하는 오로미아 부족의 민주주의는 그리스의 역사를 적어도 수천 년은 뛰어넘었다. 또 있다. 그들은 전쟁을 치르지 않는다. 오로미아 부족에서 전쟁이란 있을 수 없다. 아빠가다의 입에서 전쟁이란 단어를 쓸 수조차 없다.

이민족들이 침입해와 이들의 생존을 위협할 때, 부족민들이 가장 신임하는 여성대표만이 전쟁 선포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 부족의 생존에 위협을 받아 달리 어찌할 방도가 없을 때, 여성대표가 전쟁을 선포하고 아빠뚤라에게 전쟁을 개시할 것을 허락한다. 그러나 전쟁 중에도 전사들간의 싸움 이외엔 그 누구도 헤쳐서는 안된다. 이민족의 가족은 물론이거니와 곡식이나 가축을 헤쳐서도 안되고 훔쳐서도 안된다. 오직 전사들간의 전투만 허락될 뿐이다.

이 위대한 영혼의 땅, 에티오피아 오로미아 주, 그리고 인류의 어머니 루시가 살던 리프트 계곡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한국정부가 영양실조 치료, 예방, 회복사업을 한다. 하브로와 멜카벨로 군이다.

아침에 출근하는 길입니다. 영양사업을 진행하며 머무르던 시골 중 한 곳(겔렘소 마을)입니다.
▲ 출근길 아침에 출근하는 길입니다. 영양사업을 진행하며 머무르던 시골 중 한 곳(겔렘소 마을)입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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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실조, 특히 생애초기라 할 수 있는 영아, 유아, 5세 미만 아동의 영양실조는 이들의 신체성장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체중과 키가 정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신체의 면역기능이 제대로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해 설사, 폐렴 등 각종 전염성 질환을 앓게 된다.

생애초기, 영양실조로 고생한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몇 갑절이나 더 사망률과 전염병 감염율이 높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연구에 의해서 명확히 입증되었다. 심지어 최근에는, 이들이 만성질환에 걸릴 확률까지 높다는 결과가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영양실조와 전염병의 악순환이라는 말이 있다. 영양실조가 전염병 감염위험을 높일 뿐만 아니라, 이렇게 전염병에 감염이 되면 이로 인해 영양상태가 더 나빠져서 더 심각한 영양실조에 빠지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시작된다.

영양실조는 단순히 '충분하지 못한 음식섭취'가 그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가족과 지역사회의 관심과 지원, 그리고 무엇보다 '가난'이라는 사회경제적인 요소를 빼놓고는 절대로 영양실조를 완벽히 설명할 수는 없다. 여기에 기후변화와 가뭄, 그로 인한 낮은 곡물생산량, 그리고 국제 곡물거래 '큰손'들의 식량 마케팅을 통한 가격 및 유통통제도 무관하지가 않다.

한 가지 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를 추가하자면, 브레튼우즈 기구들의 개도국 지원과 관련된 구조조정이다. 안타깝게도 개발도상국, 특히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에서 이러한 구조조정이 진행된 이후, 낮은 식량생산량과 영양실조 및 기아의 증가가 있었음을 여러 학자들이 보고하고 있다.

멜카벨로 마을의 일반 가옥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지역 현황을 이해하기 위해 이 집을 방문하고, 또 요리하는 모습도 한참 지켜보았습니다.
▲ 멜카벨로 마을의 일반 가옥 멜카벨로 마을의 일반 가옥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지역 현황을 이해하기 위해 이 집을 방문하고, 또 요리하는 모습도 한참 지켜보았습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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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렇게 장황하게 영양실조에 얽힌 이야기를 하는 건, 이번 KOICA 지원 영양실조사업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동안의 영양실조 사업은 치료 중심이었다. 우리 한국 국민들에게도 매우 낯설지 않은 장면, 갈비뼈가 앙상히 드러나고 배는 불룩해진 아이가, 메말라 틈이 짝짝 벌어진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 앉아서 울고 있고 그 아이의 눈과 입가에는 파리떼가 우글거린다. 그 뒤로 그와 같은 아이들 무리로 비스켓이나 죽을 배분하는 사람들의 모습. 3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이러한 장면이, 영양실조 그리고 영양실조에 대한 인도주의사업의 한 전형으로 일반 시민들에게 각인이 되었다.

이번 KOICA 사업은 이러한 치료를 병행하기는 하지만, 치료보다는 예방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 예방 역시도 외부의 원조 없이,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고 이미 가진 자원, 주민들이 쉽게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고 따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영양실조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KOICA 빈곤퇴치사업으로 월드비전과 (사)위드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에티오피아 통합적 보건/영양 치료/회복/예방사업은 급성영양실조 상태에 놓인 아이들에 대한 긴급한 치료적 조치와 아울러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가장 적절한 예방법을 찾아 향후, 이러한 영양실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 가장 큰 목적이 있다. 
  
본 사업이 시작된 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본 사업이 본격적인 효과를 관찰하는 것은 아직 이르지만, 몇 가지를 간략히 나누어보면 이렇다.

둥그런 가옥 안에 한 쪽은 잠을 자는 곳이고 또 한 쪽은 이렇게 요리를 하는 곳입니다. 에티오피아의 주식인 인제라를 만들고 있습니다. 방문한 우리를 정말 친절하게 맞이해주며 인제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 요리하는 모습 둥그런 가옥 안에 한 쪽은 잠을 자는 곳이고 또 한 쪽은 이렇게 요리를 하는 곳입니다. 에티오피아의 주식인 인제라를 만들고 있습니다. 방문한 우리를 정말 친절하게 맞이해주며 인제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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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역을 기반으로 한 대단위 긴급급성영양실조 치료 (CMAM)

영양실조는 크게 급성영양실조와 만성영양실조로 나눌 수 있는데, 만성영양실조는 나이 대비 키로 가름하는 반면 급성영양실조는 키 대비 체중 혹은 상완위근육 두께를 측정하여 판단한다. 급성영양실조의 경우 긴급히 응대하지 않으면 사망에도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즉각적인 발견과 조치가 가장 중요하다.

하브로와 멜카벨로 군에는 각각 매 월 약 200명에서 300명에 가까운 아동이 새로이 급성영양실조상황에 놓이고 있다. 심각한 급성영양실조아동들의 경우는 폐렴이나 각종 합병증으로 즉각적인 조치를 하지 않으면 목숨까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런 아동들을 대상으로는 보건소나 병원으로 후송하여 긴급한 조치를 취하고, 그와 함께 영양치료식을 병행하여 아동이 영양실조상태에서 벗어나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한다.

이번에 KOICA 사업으로 3개월 치의 치료식과 아울러 구충제, 설사치료제, 엽산 등 영양제 등을 보급하였고, 사업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치료식을 보급할 예정이다. 아울러 아동만이 아니라, 임산부와 수유부에게도 충분한 영양섭취를 위해 임산부, 수유부가 있는 1500여 가구를 대상으로 식물성고단백식품 및 기름을 지원하고 있다.

2. 임산부, 수유부, 2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필수 보건영양지식 전파(ENA)

임산부, 수유부 그리고 2세 미만의 아동은 영양이나 감염성 질환의 위험에 있어서 철저한 지원과 보호가 필요한 대상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영양실조상태에 있는 아동들만을 대상으로 한 치료적 접근은 그 한계가 분명하다. 생애주기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적절한 모유수유법에 대해 관련 공무원을 중심으로 필수 보건영양지식을 전파하고 있다.

최종목표는 담당공무원 및 지역사회 관계자들이 2세 미만아동의 수유부를 대상으로 1대 1 면담을 실시하고, 이로 인해 2세 미만 아동의 영양상태가 증진되는 것이다. 현재 관계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까지 마친 상태인데, 본 KOICA 사업을 통하여 이들의 필수보건영양 지식이 상당히 증가하였음이 통계적으로 검증되었다. 아울러 지식전파와 함께, 이들이 쉽게 확보할 수 없는 요오드 소금과 철분공급도 병행하고 있다.

3. 자립적 보건영양 개선 실천(PD Hearth)

본 KOICA 영양사업에서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업의 지속성 면에서 볼 때, 외부 도움의 손길에 의지하지 않고 지역 주민 스스로, 지역 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자원을 대상으로 영양실조를 예방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본 사업의 핵심은, 같은 마을에서 아동의 영양상태가 아주 바람직한 아이의 엄마를 찾아내고 그 엄마가 아이에게 무엇을 먹이고, 어떻게 보호하는지를 면밀히 관찰하여 이를 지역사회 내에 전파하는 것이다. 즉, 비슷한 사회경제수준과 식수원이나 음식 등에 있어서 거의 비슷한 접근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 중에서 어떻게 아이를 좋은 영양상태에 이르게 했는지 그 식이요소나 위생, 양육방법 등 행태적인 요소를 찾아내고 이를 그렇지 못한 아동의 엄마에게 체계적으로 전파하는 것이다.

새벽부터 시작된 비가 멎고 눅눅해진 땅이 다시 건조해지기 시작한 오전 10시. 오다 나무 아래 백명도 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주민회의가 열리고 있다. 베레다 마을은 멜카벨로 군의 여느 마을과 다를 게 없듯, 식수부족이 마을의 아주 오래된 문제 중 하나다. 이 마을의 유일한 식수원, 민둥산에서 내려오는 가녀린 물줄기 하나에 사람들과, 소 그리고 망아지들이 서로 먼저 물을 마시기 위해 뒤엉켜있는데, 이건 거의 전쟁통을 불사한다.

설사를 비롯하여 이곳의 외래환자의 주요 순위는 사실 물 부족과 따로 떼어 설명할 수가 없다. 물 부족은 결국 낮은 농업생산량과 비위생적인 환경으로 이어지고, 이는 영양실조와 감염성 질환이라는 악순환의 화로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같다. 본 사업의 일환인 '영양실조치료시설 지원 사업'으로 모든 보건소에 수원지로부터 수도관을 연결할 계획이다. 마시는 물이 더 깨끗해지면, 손을 씻을 물이 더 많아지면 이는 설사와 각종 전염병 발생율이 낮아지게 될 것이고, 결국 아이들이 영양상태 증진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전쟁을 싫어하는 '아빠가다'의 영혼을 가진 오로미아 사람들. 원래부터 자연이 준 풍요로움을 맛보며, 아이들과 엄마들이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데, 이번 사업이 큰 기여를 하기를 기대해본다.

잠을 자는 곳과 부엌 사이에는 이렇게 낮은 흙벽이 있습니다. 옥수수를 말리고 있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습니다.
▲ 부엌 잠을 자는 곳과 부엌 사이에는 이렇게 낮은 흙벽이 있습니다. 옥수수를 말리고 있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습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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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에티오피아, #원조사업, #영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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