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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누나 따라하는 둘째
▲ 남매 뭐든지 누나 따라하는 둘째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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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의 임신을 알게 된 아내의 소원은 오직 단 하나, 부디 셋째가 아들이 아닌 딸로 태어나는 것이었다. 아들과 딸을 모두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그나마 딸이 키우기 수월하다나. 결혼 전 최소 아이 셋 이상을 바라던 아내가 아들을 키우면서 '셋째가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머뭇거릴 정도였으니 아내의 간절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사실, 내가 옆에서 보더라도 아들은 딸에 비해 키우기 훨씬 어려웠다. 무엇보다 남아는 여아보다 고집스럽고 드세다. 생떼를 부리더라도, 용을 쓰더라도 딸만 키워본 부모의 입장에서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까꿍이의 경우 아무리 떼를 쓴다고 하더라도 힘으로 제압하면 그만이었는데, 산들이는 이미 돌이 지나기 전부터 아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놀이터에서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며 아파트 현관 앞에 주저앉아 울고 불며 떼를 쓰는 막무가내 둘째의 모습이란.

'아들보다는 딸', 다 이유가 있지요

자는 모습도 비슷하다
 자는 모습도 비슷하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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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아들은 목소리 크기부터 딸과 달랐다. 첫째는 아무리 울어도 무시하고 운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때문에 산청 처가 가는 길에 녀석이 울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산들이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산들이가 10분만 울어도 내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또 있다. 잠들면 들리지 않았던 첫째의 울음소리와 달리 둘째의 울음소리는 듣자마자 눈이 떠질 정도였다. 그러니 아내는 둘째를 낳고 나서 더 잠을 잘 수 없었다. 녀석의 울음소리에 첫째와 내가 깰까 봐 전전긍긍했던 것이다.

이젠 무조건 셋인가?
 이젠 무조건 셋인가?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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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집안은 항상 시끌벅적했다. 제 맘에 들지 않는다 싶으면 소리부터 지르는 둘째와 그런 둘째의 생떼에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첫째. 특히 둘째는 뭐든 누나가 하는 걸 똑같이 따라 하고자 했는데, 장난감 같은 게 하나만 있으면 백발백중 싸움으로 이어졌다.

까꿍이는 "이거, 내 거야"를 끝없이 외치며 도망 다녔지만 결국 산들이의 울음소리에 진이 빠진 엄마는 딸에게 잠시 양보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되면 첫째는 서러운 울음보를 터트린다. 벌써부터 저렇게 억울해 하는데 셋째가 태어나면 우리 까꿍이는 또 닭똥 같은 눈물을 얼마나 흘려야 하는 것인지.

그러나 아내가 딸을 원했던 건 아들이 키우기 어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도 분명 하나의 큰 이유였겠지만, 아내는 무엇보다 첫째 까꿍이에게 동성의 동생을 선사해주고 싶어 했다. 형제보다는 자매가 더 의지가 된다는 것이었다. 크면서 오빠밖에 없었던 게 가장 아쉬웠다는 아내. 그것은 커서도 마찬가지, 아니 더 심해진다고 했다. 언니와 동생끼리 마음 터놓고 지내는 자매들을 보면 어찌나 부러웠다는지.

아이가 셋이면 어떻게 안아야지?
 아이가 셋이면 어떻게 안아야지?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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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하나 더?
 여기에 하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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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새삼스레 큰고모와 작은고모의 관계가, 어머니와 이모들의 관계가 떠올랐다. 아들 형제와 여자 자매는 분명 그 느낌이 달랐다. 그래, 모두들 자매끼리 끈끈한 정을 나누고 있구나. 결국 마지막으로 믿고 의지할 곳은 피붙이던가. 그럼 내 여동생에게 난 어떤 오빠일까. 그래도 나름 살가워지려고 노력했는데 그래도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건가.

아버지 입장으로서 난 아들이나 딸 모두 상관없었다. 아들이 없었더라면 부모님 눈치도 있고 해서 적극적으로 아들을 바랐겠지만, 어차피 아들딸 둘 다 있는 터라 아내의 바람이 이뤄지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딸이야 애교 떠는 모습에 아빠가 껌뻑 넘어갈 수밖에 없지만. 또 아들은 아들대로 내 분신 같은, 든든한 기분이 들지 않던가. 특히 요즘처럼 험한 세상, 아이들 키우기에는 딸보다 아들이 나을 수도.

한 놈은 어디다 태워야 하지?
 한 놈은 어디다 태워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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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우리는 16주가 지나 산부인과로 향했다. 이맘때면 태아의 성별을 알 수 있으리란 생각에 말이다. 아내 뱃속의 복댕이가 부디 딸이기를 기대하면서 집을 나섰다. 자, 까꿍아, 산들아, 복댕이 만날 시간이다.

가랑이 사이로 보이는 '그것'

오랜만에 찾아간 산부인과. 아내는 첫째 때부터 기형아 검사 등은 필요 없다며 산부인과를 잘 찾지 않은 편이었는데, 이는 셋째 때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왔다며 너스레를 떠는 의사. 아내는 그에게 제발 아들이 아니길 바란다고 푸념 섞인 넋두리를 털어놨다.

엄마 괜찮은 거지?
▲ 산부인과에서 엄마 괜찮은 거지?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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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셋은 상상불가다
 아이 셋은 상상불가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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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내가 초음파 검사를 하기 위해 검사대 위에 누웠다. 아이들은 엄마가 이상한 옷을 갈아입고 배를 드러낸 뒤 검사대 위에 누운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였는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불안스레 엄마를 쳐다봤다. 하지만, 셋째 복댕이의 성별이 궁금한 아내와 나는 그런 녀석들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복댕아, 도대체 넌 아들이냐, 딸이냐?

서서히 아내의 배를 훑고 지나가는 초음파 기기. 의사는 태아의 심장·위 등을 가리키며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머리와 배 둘레는 주수에 맞게 크고 있으며 심장은 잘 뛰고 있고, 손가락 발가락 모두 괜찮다 등등.

이윽고 태아의 양 다리 사이. 비록 복댕이가 웅크리고 있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곳에는 분명 '뭔가'가 있었다.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분명 남아의 성기였다.

"어? 고추다. 선생님 아들이죠? 아들 맞죠?"
"예? 그런가? 아직 불분명한데... 확실한 건 좀 더 두고 봐야 알 것 같은데. 뭐, 그런 거 같죠?"

법적으로 성별을 가르쳐 줄 수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아내의 소원을 무참하게 깨고 싶지 않아서인지 의사는 말끝을 흐렸지만 그것은 분명 남아의 그것이었다. 세 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초음파를 지켜봐 온 부모의 입장으로서 복댕이가 남아의 성기를 지니고 있음은 분명했다.

딸-아들은 금메달... 딸-아들-아들은 무슨 메달?

괜히 보기가 안쓰러운 까꿍이
 괜히 보기가 안쓰러운 까꿍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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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절망했다. 어느 노랫말처럼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셋째를 가졌을 때 왠지 불안하다던 아내의 예감은 적중하고 말았다. 딸-아들은 금메달, 딸-딸은 은메달, 아들-아들은 '목매달'이라더니 우리 같은 경우는 동메달쯤 되는 것인가. 아내는 "어린 아이들의 추측은 대부분 맞는다고 하는데 왜 넌 공주님이라고 했냐"며 애꿎은 까꿍이만 나무랄 뿐이었다. 영문도 모르는 채 엄마에게 "왜?"를 무한 반복하는 까꿍이.

아니나 다를까. 셋째 임신 소식 때와 마찬가지로 복댕이가 아들이라는 사실에 유일하게 축하하는 이는 아버지였다. 장인어른과 장모님, 어머니는 '아들이 둘이라 힘들겠구나' 걱정부터 하셨지만, 아버지는 '그래도 아들이 둘 이상 되면 든든하니 집안이 잘 굴러간다'고 기뻐하셨다. 역시나 당신 세대에겐 아들이 최고인가.

셋째가 아들임을 알게 된 뒤 가장 안쓰러운 이는 사실 아내보다 까꿍이였다. 아들 둘을 키워야 하는 아내도 수고스러울 테지만, 드센 남동생을 둘씩이나 챙겨야 하는 까꿍이는 오죽할까. 물론 지금이야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당장 셋째를 낳고 나면 손이 부족해 첫째라고 방치될 가능성이 크고, 밑의 동생들이 말썽을 피우면 '첫째가 돼서 그거 하나 간수 못하느냐'고 꾸지람을 받을 것이 빤한 터. 까꿍이만 보면 괜히 한숨이 나오고 미안할 뿐이다. 그래도 넌 산들이 태어나기 전에 부모의 사랑을 혼자 독차지했으니 그것으로 위안삼으렴.

까꿍이는 이제 눈만 오면 복댕이가 태어난다며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부디 그 마음이 계속되기를.


태그:#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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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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