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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이끌고 길을 나섰습니다. 아버지가 당나귀에 올라타고 아들이 고삐를 잡았습니다. 길을 가다가 누군가를 만나게됐는데, 그 사람은 아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다리 아프지 않니? 네가 고생이 많구나" "아니예요,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얘기를 곁에서 듣고 있던 아버지는 갑자기 맘이 불편해졌습니다. '이거 내가 계속 당나귀를 타고 가다간 자식을 돌보지 않는 매정한 애비가 되겠구나' 그래서 아버지는 당나귀에서 내린 다음, 아들로 하여금 당나귀 잔등에 올라타게 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은 한참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도중에 또 누군가를 만나게됐는데, 그 사람은 부자를 흘끔 쳐다보더니 혀를 차는 것이었습니다.

"원 세상에... 아버지가 힘들게 걷고 있는데 자식이라는 놈이 제 혼자 편하자고... 부모가 자식 교육을 잘못시켰어..." 

그 말을 듣자 당나귀에 위에 앉아있던 아들은 얼굴이 시뻘겋게 되도록 부끄러웠습니다. 행인이 상황을 제대로 모르고 오해하는 것이지만 어찌됐건 계면쩍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아들도 당나귀에서 내려 아버지와 함께 걷기로 했습니다.

아들도 할 수 없이 당나귀에서 내려 아버지와 함께

길을 가다가 나무 밑에서 쉬고 또 걷다가 그늘 아래에서 쉬고, 이렇듯 부자는 힘든 행로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도, 아들도 당나귀 잔등에 올라타지 않고 걸어가자 당나귀는 기운이 살아나는지 발걸음 가볍게 부자를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걸어오면서 내내 당나귀를 행로에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찜찜하고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당나귀가 힘들어 하지않아서 다행이라고 위로하며 발걸음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가 또 누군가를 만나게됐는데 그 사람은 보자마자 다짜고짜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당나귀를 놔두고 왜 두 사람 다 힘들게 걷는겁니까? 참 답답합니다. 그 당나귀, 그토록 귀한 물건입니까?"

상호배려, 되레 어리석은 일로 오해받아

아예 대놓고 비아냥거리자 아버지와 아들은 몹시 심사가 뒤틀렸습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려고 하는 순간, 그 행인은 당나귀 너무 애지중지 하지말고 타고 가라고 한마디 던지고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졸지에 어리석은 사람으로 조롱받은 기분이 참담했지만 그 행인의 얘기가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은 두 사람 모두 당나귀 잔등에 올라타기로 결정했습니다.

주변의 충고를 받아들이니 편안해져... 그런데

두 사람이 함께 타니 다소 비좁은 감이 없지 않았으나 둘 중의 한 사람만 타야하는 난감함을 해소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부자가 다정하고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아버지는 뿌듯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비록 잠깐에 불과했지만 아버지와 아들 마음 속에 모처럼 행복이 자리를 잡는 듯 했습니다.

잠시 행복의 졸음 속에서 길을 가던 아버지와 아들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소음에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아이쿠, 그 사람들 참  지독하네, 허약한 당나귀에 두 사람이 올라타면 어쩌자는 거야?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해도 너무 하는구만." 
"그러게 말이야, 저 당나귀 다리 휘청거리는 거 봐. 저래가지고 오래 버티지도 못하겠어."
"두 사람이 번갈아 타면 될 것을 저리 무리하게 하다니... 참으로 어리석고도 욕심이 많은 사람들일세."

듣고있자니 다름 아닌 자신들을 향한 비난과 조롱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기가 막혔습니다. 아니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가. 이래도 흉, 저래도 흉,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쁜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닌데 왜 새로운 결정을 내릴 때마다 세간에 뒷 말이 생겨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달콤한 기분은 잠깐뿐, 어떤 결정을 내려도 비난

분노와 자괴감, 서러움, 누구로부터도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소외감으로 뒤범벅이 된 아버지는 당나귀를 강물에 던져버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문제의 근본 원인은 당나귀였습니다. 당나귀 한 마리 때문에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당하게 된  것이 너무 억울했습니다. 당나귀를 없애버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 이제 지긋지긋한 당나귀를 없애버리는 거야,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아버지는 오랜 피로 끝에 자탄의 한 마디를 내뱉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거야..."

이제 아버지와 아들은 당나귀 없이 단촐하게 길을 나서게 됐습니다. 마음 한 켠에 남아있는, 뭔가 빠진 듯한 아쉬움을 완전히 억누르기는 어려웠지만 어쨌건 마음은 가벼워졌습니다. 멀고도 긴 터널을 벗어나 살아있는 공기를 마시며 자유의 기운을 되살리듯 아버지와 아들은 모처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길을 걸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바로 이것이 인생의 행복이구나'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미련없이 내려놓을 때 진정한 마음의 평화가 도래하는구나'라는 생각에 만족감이 온 몸에 퍼짐을 느꼈습니다. 조금 전까지 그들을 사로잡았던 열등감과 분노, 자괴감 따위는 다 사라져버리고 가슴 벅찬 자부심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천신만고 끝에 좋은 결정을 내렸다는 자부심과 행복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하루 해가 지고 뜨고 또 지고, 주간이 뭉쳐 달을 만들고, 한 해의 빛바랜 도록으로 접혀가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그 부자는 심신이 피로했습니다.

당나귀의 부재가 커다란 아쉬움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당나귀가 있었다면 좀 편하게 앉아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당나귀가 있었다면 네가 좀 편했을 텐데.. 너를 고생시켜 미안하구나."
"아니예요 아버지, 당나귀가 있었다면 아버지를 좀 더 편히 모실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사실 아들은 성급한 결정으로 당나귀를 버린 아버지가 내심 못마땅했지만 섣불리 속마음을 내비칠 순 없었습니다.

외부조건을 정비했으나 행복은 온 데 간데...

어찌됐건 아버지와 아들은 가던 길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힘들다고 그대로 서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걷고 또 걷고... 간간이 휴식을 취하며 걸었지만 잠깐 쉰다고 뼛속까지 스며든 피로를 털어낼 순 없었습니다. 찌든 땀과 흙먼지로 꾀죄죄해진 아버지와 아들은 갈증과 부르튼 발, 온 몸에서 기가 조용히 새어나가는 느낌으로 더 이상 걸을 수 가 없어 길 가장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요? 당나귀를 타고 갔어야 했나요, 그냥 데리고 걸어갔어야 하나요? 아니 그 이전에 당나귀를 갖고 있는 게 맞나요, 버린 게 옳았나요?"

아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쇳소리 섞인 목소리로 아버지 얼굴을 바라봤습니다. 

"글쎄다. 나도 혼란스럽긴 하다."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문제는 당나귀가 아니라 우리에게 있었던 것 같구나." 

아들은 의아스러운 눈길로 물었습니다.

"아니 이 모든 게 당나귀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 아니었나요? 그런데 우리가 문제라니요?" 
"물론 겉으로 드러난 건 당나귀 사건이다. 하지만 너와 나는 다른 사람들 눈치만 봤을 뿐 우리가 무엇을 어찌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었다."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진단을 내놨습니다.

"아들아, 문제는 우리에게 있었던 것 같구나..."
"인생에서 옳은 선택이란 없어... 얼마나 절실한가의 문제일 뿐."
"아버지,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렸건간에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습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았습니까?"

생각이 혼란스러워진 아들은 가볍게 항변했습니다.

"그렇지, 어떤 결정이건간에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었고 비난받을 여지는 항상 있게 마련이지."

아버지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듯 눈을 지긋이 감고 말을 잇습니다.

"그러나 깊은 성찰 속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로 세상과 맞닥뜨렸다면 지금처럼 우리가 허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상처받은 영혼으로만 남았단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있던 아들의 마음도 이제 서서히 정리가 되는가 봅니다.

"아버지, 결국 인생은 좋은 결정과 나쁜 결정의 갈림길이 아니라, 책임의식을 등에 짊어지고 용감하게 선택하느냐 아니면 세상에 순응하거나 또는 비겁하고 나약하게 뒤로 물러서느냐의 문제이군요."
"그래, 바로 그 것이다. 네가 제대로 봤구나."

모처럼 아버지 얼굴에 만족스런 웃음이 번졌습니다. 아들도 아버지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으로 화답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이 두 사람은 갑자기 온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감과 동시에 잠이 급하게 몰려옴을 느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두 사람은 수면의 침대 위에서 편안히 잠들 수 있었습니다.


#당나귀우화#인생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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