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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부평신문>과 <오마이뉴스>에 보도된 이응하 할아버지와 이성종 손자.
 2007년 3월 <부평신문>과 <오마이뉴스>에 보도된 이응하 할아버지와 이성종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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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보도 후... 지상파방송 출연

2007년 3월, 127시간이던 봉사시간이 지금은 5000시간을 훌쩍 넘었다. 2011년에는 인천시로부터 '봉사왕' 상을 받았다. 손자는 당시 110시간이던 봉사시간이 3200시간을 넘었다. 오는 12월에 '은상'을 받을 예정이다.

지난 11일 만난 이응하(78)씨와 친손자 이성종(16·갈산중)군은 여전히 인천 부평구 갈산2동 주공2단지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봉사활동도 여전했다. 바뀐 것이 있다면 가족이 한 명 더 늘어났다는 것 그리고 봉사활동 공간을 동네 골목길에서 아파트단지 안 갈산종합복지관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2007년 3월 <부평신문>과 <오마이뉴스>에 '청소 봉사활동으로 이웃사랑 실천하는 조손가정'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됐던 이 보도가 계기가 돼, 같은해 5월 <한국방송(KBS)> 프로그램인 좋은나라운동본부의 '높은음자리'에 출연해 전국의 많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특히 정부로부터 한 달 35만 원의 보조금을 지원받는 것에 대한 보답으로 손자와 함께 동네를 청소하러 다니는 할아버지의 모습과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사회정의를 지키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는 성종군의 모습은 많은 사람의 귀감이 됐다.

외손자까지 가족으로 받아들여 세 식구

보도가 나가고 2년 뒤 이씨네 집에는 식구가 한 명 늘었다. 이씨 딸이 자신의 아들을 부탁한 것이다. 그녀는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남편이 집을 나가는 바람에 힘겹게 살았다고 했다. 그렇게 이씨 외손자인 김지수(17·영선고)군도 가족이 됐다. 이씨는 "어렵지만, 딸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고 있고, 손자를 키우는 게 내 팔자려니 하고 받아들였어요"라고 말했다.

이씨와 두 손자의 살림살이는 여전히 어렵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나오는 보조금과 노인수당, 장애인수당, '사랑의 열매'에서 주는 생활후원금 등을 합쳐도 한 달 60만 원이 안 된다. 아파트 관리비를 내고 나면 생활비로 쓰기에도 빠듯하다. 때문에 이씨네는 겨울이 되도 난방을 절대하지 않는다. 씻는 데 따뜻한 물도 사용하지 않는다.

<한국방송> 보도 후, 간간이 후원금이 들어 오던 것이 일년 후에는 모두 끊겼다. 2010년 2월 <문화방송(MBC)> 프로그램인 '해바라기'에서 이씨와 두 손자의 사연이 보도된 후에도 후원이 들어왔으나, 지금은 후원자 2명이 손자들에게 용돈 5만 원정도를 꾸준히 보내주는 게 전부다.

"몇 년 전 한 쪽 귀의 청각을 잃어 장애인수당을 받게 됐어요. 이게 조금 보탬이 됐죠. <문화방송>에 나간 후 손자들 용돈을 지금까지 후원해주는 분들이 있어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거의 매일 봉사활동

날마다 봉사활동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이응하 할아버지가 김지수(왼쪽), 이성종 손자와 함께 주먹을 불끈 쥐고 봉사활동을 더욱 열심히 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날마다 봉사활동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이응하 할아버지가 김지수(왼쪽), 이성종 손자와 함께 주먹을 불끈 쥐고 봉사활동을 더욱 열심히 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 장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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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와 두 손자는 지금도 거의 매일 봉사활동을 한다. <한국방송>에 출연한 후 골목길 청소 봉사를 접고, 갈산복지관에서 장애인가정 등에 도시락 배달 봉사를 하고 있다. 또한 어렵게 마련한 돈을 매달 정기적으로 복지관에 후원하고 있다. 벌써 5년째다.

이씨는 손자들을 학교에 보내고 난 후 오후 3시까지 복지관에 모인 재활용품을 수거해 고물상에 판다. 그러면 하루에 1000원에서 2000원 정도 수입이 생긴다. 이 돈을 꾸준히 모아 한 달에 한 번 복지관에 기증한다. 2~3만 원 정도지만, 이씨에겐 돈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오후 4시부터 8시까지는 도시락을 배달한다. 장애인이나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을 전하고 말벗을 하거나 청소, 심부름 등 봉사를 한다.

성종군과 지수군도 학교가 끝나고 학원에 가기 전 짬을 내 한두 시간 이씨와 같은 봉사활동을 한다. 때문에 지수군의 봉사시간도 2700시간이 넘었다. 그리고 복지관이나 아파트 주변의 빈병을 모아다가 마트에 팔아 돈을 모은다. 이렇게 모은 돈은 복지관에 한 달에 한 번씩 5000원에서 1만 원 정도를 후원한다. 이렇게 해서 복지관에서 받은 기부금 영수증만 해도 몇 박스는 될 것이라고 이씨는 말했다.

이씨와 두 손자의 삶의 단어 '감사'와 '행복'

성종군은 정의로운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아직도 꾸고 있다. 지수군은 사회복지사가 돼 앞으로도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성종군은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고 나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요, 옛날에 비해 꿈을 이루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하고 있다는 것 정도에요"라고 말했다. 이씨는 지금의 삶에 감사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손자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건 사회봉사와 이웃사랑이라고 했다.

"어렵지만 복지관에 후원하는 것은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유산으로 돈이나 재산을 물려주지만, 내가 손자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것은 사회봉사와 이웃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없더라도 손자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할 때 기부하고 봉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봉사활동을 계속할 수 있게 해 준 갈산복지관 관장님과 사회복지사분들 모두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국가에서 생활비를 입금해주지만, 갈산복지관이 제 직장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아름다운 복지관 직원들과 함께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이씨의 맑은 눈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이응하, #이성종, #김지수, #봉사활동, #부평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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