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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구이 전어직화구이,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 전어구이 전어직화구이,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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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 몇 해 전 그를 먹어보긴 했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명성이 자자한 전어, 그런데 내 입맛에는 맞질 않았다. 회보다는 구이가 맛났지만, 제주도에서 서울로 갓 올라온 내게는 전어구이나 회보다 자리회, 자리구이, 자리물회의 맛이 훨씬 맛났기에 전어는 그렇게 내게서 멀어져 갔다.

가을이 되니 식당 수족관에 전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유영을 보면서도 그닥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명성이 있는 전어를 한 번은 먹어야 가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었기에 퇴근길에 아이들에게 의사를 타진했다.

"얘들아, 전어구이 먹으러 갈래?"
"맛있어?"
"그럼,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잖아."
"엄마가 싫대."

결국, 아내의 입맛을 따라가야 하는 처지에서(나이가 들수록 아내의 입맛을 따르는 것이 훗날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 수족관의 전어는 나와의 거리감이 그렇게 멀어졌다.

그런데 아내의 고모부가 식도락가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 한국에 잠시 돌아왔는데 다른 것 다 말고 전어가 먹고 싶다고 하신다. 고향 광양에 들렀다가 오는 길 전어를 샀으니 얼른 모처로 모이자는 것이다. 지난 주말의 일이다.

"얼마나 사오신대?"
"30마리."
"엥? 그거 누구 코에 붙인다고? 삼겹살도 굽나?"

부지런히 장작불을 피우고 준비를 하는 동안 전어회와 무침이 나온다. 배가 고파서일까? 맛나다. 속으로는 서른 마리밖에 안 되는데 구워먹을 것이 있을까 걱정을 한다.

"고모부, 기왕에 사오시는 거 많이 좀 사오시지. 서른 마리가 뭐래요?"
"서른 마리? 에이, 나를 어떻게 보고, 삼십 인분!"
"헉!"

회로 먹고 무침으로 먹고 구워도 먹고……. 그렇게 먹고 또 먹어도 전어는 줄어들지 않는다. 손님들이 열댓 명이 왔음에도 결국 다 먹질 못하고, 헤어지는 길 집집이 조금씩 나눠갔다. 아이들은 전어를 나뭇가지에 꿰어 소금을 뿌려가며 굽는다. 그것이 제일 맛나다고 한다. 생선이라면 별로라던 아이들도 숯검정 입술을 마다하고 전어구이를 맛나게 먹어준다.

무언가를 맛나게 먹는다는 것, 그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전어들에게 감사를…….

전어구이 아이들은 나무꼬챙이에 전어를 끼워 구워먹는 것이 더 맛나고 재미있는가 보다.
▲ 전어구이 아이들은 나무꼬챙이에 전어를 끼워 구워먹는 것이 더 맛나고 재미있는가 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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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카가 내게 묻는다.

"왜 전어를 구우면 집 나간 며느리가 들어온대요? 그리고 왜 집을 나갔어요?"
"아, 그거. 그러니까……."

바다를 밭으로 여기며 바다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은 때론 풍랑에 목숨을 잃기도 한다. 아마도 바닷가 어촌으로 새색시가 시집을 왔는데 얼마 안 되어 남편이 바다에 나갔다가 그만 죽었겠지? 그래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둘이 사는데, 바닷가 생활이라는 것이 오죽 힘들까? 너무 힘들어 며느리는 시어머니 몰래 집을 나갔단다.

시어머니도 달빛에 며느리가 봇짐을 싸서 집을 나가는 것을 봤지만, 평생 바다에서 살아왔고, 자기도 남편을 바다에서 잃었기에 그 삶이 어떠한지 알았어. 그래서 어디든지 가서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잠든척하고 며느리를 보내며 눈물을 흘렸단다. 옛날엔 시집을 가면 친정집으로 돌아오기가 어려웠어. 더군다나 청상과부가 되어 돌아왔다고 하면 쑤군거리기 딱 좋지. 죽어도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말도 있었으니까.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사이가 안 좋아서 집을 나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런데 가을 전어 철이 되어 전어가 바다에 넘쳐났겠지. 시어머니는 전어를 잡아 노릇노릇하게 숯불에 구웠지. 그 냄새가 얼마나 구수하던지, 이럴 땐 같이 나눠 먹을 사람 있으면 좋겠는 거야. 아들 생각에 며느리 생각도 났고, 때마침 객지에 나갔던 며느리도 고생이 심해 바닷가에서 고기나 잡으며 시어미와 살 생각으로 동네 어귀로 들어왔겠지. 그때 고소한 전어 냄새가 풍기는 거야.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맛나게 구워진 전어를 먹으며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기로 했지, 그때부터 그런 말이 생겼단다. 믿거나 말거나.

"에이~"

이야기는 재미가 없었는지 아이들은 저마다 나무꼬챙이를 하나씩 들고는 전어를 끼워달란다. 전어구이 냄새가 백열등을 타고 하늘로 오른다. 다행히 집들이 드문드문 있는 곳이라 전어구이 냄새가 민폐를 끼칠 상황은 아니다.

버릴 것 하나도 없는 전어, 머리부터 꼬리까지 바삭거리는 맛이 일품이다. 후식으로 군고구마를 까먹는다. 아이들은 숯검정 얼굴이 우스운 듯 서로 바라보며 웃는다. 전어의 맛도 맛이지만, 온 가족이 함께 정을 나누는 맛이 일품이다. 남자들이 숯불 정리를 하고,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한다. 오랜만에 여성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일들을 남자들이 맡아 하고, 여성들은 오랜만에 남자들의 봉사를 받는다.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이것이 '살림'이다. 누군가는 이 위대한 살림은 '솥뚜껑 운전'이라 했단다. 이런 맛이나 알고 하는 이야긴지.

그런데 정말, 집 나간 며느리가 전어구이 냄새를 맡고 돌아온 것일까?


#전어구이#살림#솥뚜껑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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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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