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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대구 K고교 1학년 이 아무개양이 투신 자살했다. 이로써 작년 11월 이후 대구의 중·고교생 자살이 11명으로 늘었다. 대구에 사는 교사로서 또 학부모로서 감당이 안 될 만큼 비통한 심정이다. 몇 년 전 필자가 사는 이웃에서 한 학생이 자살 전 깨알같은 글씨로 유서를 남겼다.

"글도 쓰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고 음악에 파묻혀 살고 싶은데 공부, 공부만 강요하는 이 세상이 싫다…. 유서를 쓰면서 하도 눈물을 많이 흘려 눈이 아프다. 친구들 이젠 진짜 안녕……."

그 학생이 눈물로 써내려간 유서를 읽은 후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한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해체하는 학생 자살, 살아 있는 우리에게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학생이 자살한 후 몇 년이 지났지만 중학생의 공부 부담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보충수업을 확대하는 추세에 있다. 대구 교육이 도리어 산업사회로 퇴행하고 있는 느낌이다.

"다른 지역보다 자살 많지 않다"는 대구시 교육감

유독 대구에 학생 자살이 많은 데 대해 대구시 우동기 교육감은 '다른 지역보다 학생 자살이 많지 않다'거나 전직 대통령까지 들먹이다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교육을 책임지는 수장이라면 '대구 교육에 문제가 없는가?'라는 문제제기에 대한 자성과 반성이 우선이어야 하지 않을까?  '학생들이 왜 죽음을 택할까?'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드러내고 사과와 더불어 사후 예방책으로 국민의 걱정을 덜어내야 할진대 남의 탓으로 일관하는 행태가 민망해보인다.

현재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학생 자살 소식을 접하면 '왜 유독 대구에서 학생 자살이 많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대구 고교 교육의 특징은 학력 위주의 교육력 제고다. 이를 위해 보충수업과 야간학습을 강제로 실시한다. 학생들은 이를 빗대 학교를 '감옥'이라 했을 정도다. 교육청에서는 절대로 강제로 하라고 한 적이 없다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이런 결정을 둘러싼 일선 교장단의 강력한 카르텔은 학교교육을 옥죈다.

 우동기 대구시 교육감의 3대 공약, 1호가 학력신장이다. 학력신장을 위해서 전 고교의 기숙사 건립이 목표이다. 우동기 교육감은 행정학과, 사회공학을 전공하였다.
우동기 대구시 교육감의 3대 공약, 1호가 학력신장이다. 학력신장을 위해서 전 고교의 기숙사 건립이 목표이다. 우동기 교육감은 행정학과, 사회공학을 전공하였다. ⓒ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창의성 신장은 양념 정도로 여길 정도다. 현 우동기 교육감의 교육 공약 1호는 '학력 신장'이고 구체적 실현 방안으로 '전 고교의 기숙사 건립'이다. 이로인해 다른 예산이 줄어들었다. 내년에는 임시직인 사서교사들의 예산까지 삭감하면서까지 우 교육감은 공약 챙기기에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학력 신장을 목표로 두었으니 '창의성 교육과 학교폭력과 왕따 없는 학교' 만들기는 구색에 불과했을 것이다.

강제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의 피해는 고스란히 교사와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민주당의 한 후보가 제시하였던 '저녁이 없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져녁 식탁에서 식구들과 마주보는 대화 시간이 허튼 시간인가? 삶의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한 원초적인 물음에 답해야 한다. 반 강제적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강제적인 야간 학습에 참여해야 하는 학생들의 삶은 무시돼도 되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묻고 싶다. 이런 학생들의 삶이 과연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점심, 저녁 식사를 학교에서 하다 보니 부모와 대화할 시간이 없다. '가정은 도덕상의 학교이다. 가정에서의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경구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가족관계, 사제관계, 교우관계에서의 대화와 상담 기회를 빼앗게 되고, 이런 악순환은 결과적으로 학생들이 공부하는 기계적 삶을 살게 한다. 이런 점에서 '교육의 목적은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 데에 있다'는 말이 절실한 시점이다.

'우동을 한그릇 드세요?'이것이 우동기 교육감의 선거 구호이다. 아이들은 우동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 나름대로의 자연스런 삶을 살고 싶어한다. 루소가 말했듯 '권위주의적이고 인위적인 교육환경에서 벗어나 자연상태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발적인 교육'으로의 발상전환을 해야 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생각나는 것을 쓰고 느끼고 그리고 싶어한다. 노래하고 싶어한다. 아름다운 정서적 삶을 누리고 싶어한다. 밥이 아니라 아름다운 영혼이기를 바란다.

제발 학생들에게도 '저녁이 있는 삶을'

그래서다. 대구시교육감에게 다시 당부하고 싶다. 대구의 전 고교 기숙사 건립 공약을 포기하라고... 그리고 강제적 보충수업과 야간학습을 전면 학생 자율로 해서 아이들에게도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해주라고 권고하고 싶다. 교육정책의 제일 목표는 죽고 변하는 산업시대적 지식의 기계적 암기가 아니라 미래의 창조적 지혜와 재능을 길러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기숙학교 건립이 아니라 도서관을 증축해야 하고 사서교사를 늘려주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창의적 학습과 자율적 학습을 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동서양의 고전을 통해 삶의 지혜와 인생의 지침을 습득하고 제 인생의 삶을 스스로 창조하고 능력을 계발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교육청이 앞장서서 강요하고 강제할 것이 아니라 지원자요 보조자여야 한다. 강제 교육은 결코 뿌리내릴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교육의 목적은 인격 형성에 있다. 교육의 목적은 기계적인 사람을 만드는 데 있지 않고 인간적인 사람을 만드는 데 있다. 또한 교육의 비결은 상호존중의 묘미를 알게 하는 데 있다. 일정한 틀에 짜인 교육은 유익하지 못하다. 창조적인 표현과 지식에 대한 기쁨을 깨우쳐주는 것이 교육자 최고의 기술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이 절실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기고된 것입니다. 늘리고 펼치고 해서 다시 쓴 글입니다.
- 황선주 기자는 대구 성산고 교사·교육비평가입니다.



#교육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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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간지 기고가이며 교육비평가입니다. 교육과 사회부문에서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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