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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광해)가 무서운 흥행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12일 오전 영화진흥위가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광해>가 누적 관객수 866만1364명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 중이라고 한다. <광해>는 조선 광해군 시대, 독살 위기에 놓인 광해군을 대신하여 보름간 왕 노릇을 하게 된 천민 광대 '하선'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곳곳에 들어간 코믹한 장면과 더불어 정치적인 의미와 교훈까지 담아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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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사극의 형태를 빌려 현실정치의 코드를 풀어내는 영화나 드라마 작품은 늘 시청자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은 12일 '사극에 담긴 정치코드'라는 주제로 하재근 문화평론가와 함께 대담을 진행했다. 하 평론가는 우선 <광해>에 대해 "영화의 기본적인 재미에 더해 영화 내용에 당대 대중의 욕망이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땅과 세금의 문제, 또 대외관계의 문제 등 국민들이 원하는 무엇인가가 코드로 담겨 있다"고 말했다.

<광해>에서는 천민 '하선'이 왕 노릇을 하게 되면서 그 당시 가장 예민한 주제였던 대동법에 대해 땅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세금을 많이 내게 하고, 땅을 적게 가진 사람들은 적게 내게 하는 게 뭐가 잘못이냐는 평을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하 평론가는 "노무현 정부 때 뜨겁게 이슈가 되었던 종부세 논란, 이명박 정부 초기에 상위 1%의 땅 부자 내각 구성 논란 등 땅과 세금 문제는 늘 국민들의 민감한 이슈였다"며 "(영화에서는) 한마디로 부자가 더 세금 많이 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대외관계의 문제에서의 코드도 있다. 당시 명-청 교체기로서 조선의 왕 입장에서는 신흥강국 청에게 밉보여 가면서 망해가는 명을 도울 수 없었지만 사대부 기득권 세력이 명이 임진왜란 때 파병해 나라를 구해준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며 명으로의 파병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영화 속 천민 광대 '하선'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 백성이 죽는 걸 원치 않으니 일단 명에 파병하는 척을 하고 청에게는 공격할 마음이 없으니 심하게 싸우지 않도록 미리 요청하라"는 식으로 일종의 '등거리 외교'를 보여준다.

이에 대해 하 평론가는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6·25 전쟁에서 미국이 파병을 안했다면 우리나라가 '빨갱이 나라' 되었을 것 아니냐고 하지 않느냐"며 "그런데 실은 따져보면 당시 명나라는 조선이라는 방패막이가 있어야 안전이 보장되니까 파병한 것 아니냐"는 의견을 밝혔다. 또 중국이 신흥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현재 동북아 정세를 고려할 때 영화 속 '하선'의 모습이 현재 대중들의 정치 심리를 자극하는, 정치적 함의를 담은 코드가 아니냐는 것.

이렇게 사극 작품 속에서는 현실 정치의 사례를 풍자하고 그것을 간접적인 코드로 녹여낸 사례가 많았다. 하 평론가는 "사극에는 시대별로 늘 큰 흐름이 있다"며 "1980년대까지는 권력을 잡기 위한 암투와 치정이 사극의 주된 내용이었다"고 밝혔다. 힘센 자가 권력을 잡고 그렇지 못하면 당연히 죽게 되는 구조를 그려 당시 군부 권력의 쿠데타 등을 정당화 하는 차원에서 사극에 그러한 의미가 담겼다는 것이 하 평론가의 분석이다.

또한 하 평론가는 "1990년대 말 유행했던 <용의 눈물>이라는 사극은 그 당시 난립하던 수많은 대권을 잡으려는 잠룡을 빗댄 작품이기도 했다"며 "이어진 2000년대에는 권위주의가 어느 정도 타파되면서 사극을 통해서 국민의 정치적 열망이 드러나는 게 당연한 수순이 되었다"고 말했다.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작품은 여소야대로 정책 추진을 제대로 이뤄내지 못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했고, 강력한 개혁 군주 정조의 이야기를 담은 <이산>이라는 작품이 노무현 정권 말기에서부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엄청난 인기를 얻기도 했다. 하 평론가는 "당시 국민이 보기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거대 야당 한나라당 때문에 뭘 못하고 있으니 약해보인 것 같다"는 평을 내렸다. 강력한 개혁 군주였던 정조의 모습이 당시 대중이 원하는 지도자 상과 닮아 있다는 것.

직선제 도입 이후 사상 최대 득표차로 당선된, 강력한 실용주의적 지도자 이미지의 이명박 대통령은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의 기대에 크게 부응하지 못했고 이는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하 평론가는 "'강력한 지도자'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 고통을 씻어주겠거니 했는데 이것이 잘 느껴지지 않으면서 이번엔 세종대왕이 강력하게 조명됐다"며 "백성의 삶을 억압하지 않고 잘 어루만져 주는 온건한 관리자의 상이 화제가 되었다"고 말했다. 실제 <대왕 세종>, <뿌리 깊은 나무> 등 세종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사극이 인기를 끌었다.

또한 하 평론가는 "이명박 정부 시기의 사극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코드는 바로 토론"이라며 "<선덕여왕>의 '미실'과 '덕만'도, <뿌리 깊은 나무>의 '밀본'의 수장과 세종도 꼭 토론을 하면서 소통의 코드가 등장 한다"고 밝혔다. 소통을 통해 국정을 해나가는 지도자 상이 인기를 끌었던 것이 당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통' 비판과 맞닿아있다는 것.

한편 하 평론가는 "요즘 사극은 지도자들이 자신을 세일즈 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며 "<신의>라는 작품을 보면 최영 장군과 신진 사대부들조차 공민왕에게 '내가 왜 당신 신하여야 하는지'를 묻고 그렇게 편이 하나둘씩 늘어가는 과정이 나온다"고 말했다. 국민들의 지도자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하는 방법으로서 작품 안에서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 정당성을 설명하는 과정이 동반되는 것이 요즘 사극에서 유행하는 양상이라는 게 하 평론가의 주장이다.

하 평론가는 "결국 대부분 사극은 영웅들 이야기이고 국가를 다스리는 이야기이니 리더십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사극을 통해서 국민들이 원하는 리더십의 방향, 지도자의 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털남#광해#사극#대선#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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