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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경수씨의 얼굴에 웃음이 많아졌다. 전엔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지난 8년의 아픔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요즘 한경수씨의 얼굴에 웃음이 많아졌다. 전엔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지난 8년의 아픔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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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세유~? 쌀 배달 왔시유~."

시골 동네에서 그의 이런 목소리만 들으면 '무슨 택배기사인가' 할 수 있다. 아니면 쌀집 아저씨가 쌀 배달 왔나 할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톤 탑 트럭에 유니폼까지. 하지만, 그의 유니폼엔 '○○택배'가 아닌 '희망나르미'라고 적혀 있다. 사연의 주인공은 한경수씨(48세, 안성맞춤지역자활센터)다. 그가 나르는 게 단순히 쌀이 아니라 희망인 것은 그가 살아온 사연 때문이리라.

"한때 지도 잘나갔쥬, 근디 그만..."

경수씨는 30대까지는 잘나가는 사장이었다. 정밀 가공 선반을 두고 사업을 했다. 웬만하면 혼자 일을 하고, 바쁠 때는 직원을 썼다. 초등학생 자녀 둘에 아내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신명나게 살았다. 그땐 돈 버는 재미로 살았단다.

"그땐 밤낮이 구별이 안 갈 정도로 열심히 일했시유. 통장에 돈이 차곡차곡 쌓이는 재미가 쏠쏠했어유. 근디 그만…."

마흔이 되던 해에 그의 얼굴에 마비가 왔다.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병원에 가봐도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다. 병원 진단상엔 아무런 병명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일을 세게 하면 근육이 굳고 통증이 왔다. 병명도 밝혀지지 않은 채로 그의 정신과 육체는 점점 무기력해져갔다.

이젠 일도 할 수 없었다. 일을 하려고 하면 원인도 밝힐 수 없는 근육 마비와 통증이 왔다. 이런 게 반복되다보니 점점 자신감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았다. 결국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이러다 말겠지' 한 세월이 8년이나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주위에선 "쯧쯧 젊은 사람이 가정도 있으면서 열심히 일 안 하고 저게 뭐하는 짓이여"라고 곱게 보지 않았다. 하기야 겉으로 보기엔, 병원 진단상으론, 멀쩡해보였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건 아내조차 암에 걸리고 말았다는 것. 자녀들은 한창 돈 들어가야 할 나이가 되었다. 그의 40대는 온통 아픔뿐이었다.

살아야 한다는 절박감... 세상으로 나오다

'이대로 앉아서 죽을 순 없다. 뭐라도 해야 한다. 살아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이런 절박감이 그를 집 밖으로 내몰았다. 절체절명의 위기가 그를 움직이게 했다. 8년 동안 집에 처박아둔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 특성상 할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결국 그가 찾아간 곳은 동사무소. 안성동부무한돌봄네트워크팀을 통해 소개 받은 곳이 지역자활센터다.

그에게 떨어진 특명은 '쌀 배달'이었다. 안성 지역의 차상위 가정, 기초수급자 가정, 노인복지관 등으로 쌀을 배달하는 일이었다. 한 달에 400여 가구로 쌀을 배달한단다.

요즘 경수씨는 아침에 눈 뜨는 게 행복하다. 자신의 쌀 배달을 기다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이들의 눈망울이 떠올라서다. 더운 여름에 쌀을 배달할 땐, 어르신이 주신 시원한 음료수 한 잔에 모든 시름이 날아간다고. 안성 시내뿐만 아니라 면단위 마을 곳곳에도 배달을 한다.
그가 요즘 날마다 몰고 다니는 트럭이다. 여기에 쌀을 싣고 안성 곳곳을 다니며 쌀을 배달한다. 그래서 그는 요즘 쌀 때문에 살맛 난다. 아니 이웃 때문에 살맛 난다.
 그가 요즘 날마다 몰고 다니는 트럭이다. 여기에 쌀을 싣고 안성 곳곳을 다니며 쌀을 배달한다. 그래서 그는 요즘 쌀 때문에 살맛 난다. 아니 이웃 때문에 살맛 난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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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분들이 이렇게 많은지, 예전엔 몰랐어요"

그는 말한다. 자신의 주위에 이렇게 어려운 분이 많은 줄 예전엔 몰랐다고. 그는 한창 잘 나갈 땐 자신과 자신의 가정만 생각하고 살았었다. 그 열심 때문에 자신이 망가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지난 8년 세월을 "처참한 고통의 세월이기도 했지만, 숙성의 세월이기도 하다"고 평가 한다. 소외된 분들을 보며 '동병상련'의 정을 느낀다고 그는 말한다. 힘들고 어려울 때 간절했던 이웃의 따뜻한 미소와 손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안다. 이제 그는 그 이웃의 미소와 손이 되고자 한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심정을 안다 했던가. 그는 지난 8년 동안 비싼 수업료를 내고 인생 공부를 한 셈이다. 잘나가기만 했다면 깨달을 수 없었던 인생의 맛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간다는 경수씨다. 그러고 보니 얼굴에 마비가 왔던 그 시점이 경수씨의 인생 전환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경수씨에겐 책임져야 할 자녀가 있다. 아내는 지금 그와 헤어져 암 투병 중이다. 그가 뚫고 나가야할 문제는 여전히 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그가 달라졌다. 예금통장에 돈이 적립되듯, 이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하나둘 쌓이고 있다. 자신보다 더 아픈 이웃이 눈에 보인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느낌이 온다. 그의 소원은 "이젠 대차게 살고 싶다. 나의 장점을 이웃과 나누며 살고 싶다"로 바뀌었다.

아하! 이제야 알았다. 그가 왜 '희망나르미'인지. 그가 나르는 건 단순히 쌀이 아니라 그의 삶이었다. 그의 눈물이고 아픔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안성 곳곳에 희망트럭은 간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9월 30일, 안성맞춤지역자활센터에서 이루어졌다.



태그:#한경수, #쌀,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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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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