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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산소
 부모님 산소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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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이번 추석에는 새 돈 바꿀 필요가 없네. 해마다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기 위해 추석이 시작되기 며칠 전이면 빳빳한 새 돈을 바꾸러 은행에 갔었는데…" 

추석 하루 전인 토요일(9월 29일), 아침밥을 먹던 아내가 밥을 먹다 말고 꺼낸 말이다. 잠시 숨을 죽이던 아내의 눈에서 이내 눈물이 흐른다. 옆에서 밥을 먹던 딸이 "아빠, 엄마 안아주세요"하고 채근한다.

그렇다. 평생 농사일만 하다 1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에 이어 노인병원에 계시던 어머니가 3년 전 돌아가셨다. 작년에는 암으로 고생하시던 장모님이 돌아가셨다. 불행은 연이어 온다던가. 학창시절 농구선수를 해서 허리가 꼿꼿했던 장인도 올 8월 말에 세상을 뜨셨다.

구례 '하늘공원' 앞을 흐르는 섬진강 모습
 구례 '하늘공원' 앞을 흐르는 섬진강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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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자네와 자네 처는 양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니 고아(?)가 됐네" 하며 장례식장에 조문을 와 실없는 소리를 하던 지인의 말이 맞다.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소리이기도 하고 이제부터는 누구누구의 아들딸이 아닌 가족의 중심에 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팔천번의 생을 윤회하며 맺어지는 귀한 인연이라고 한다. 부모님께는 받기만 하고 내 자식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우리의 인생사다. 내 자식이 감기만 걸려도 가슴 아파하면서도 부모님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할 때가 허다하다.

병상에 누워 거동도 못하는 어머니를 뵈러 갔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차 조심해라"고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내 나이가 몇인데…. 허리가 아파 힘들어 하면서도 명절이면 자식들이 맛있어 하는 음식을 해놓고 "몇 시에 오니? 운전 조심해라" 하고 몇 번이나 음식을 데우고 기다리던 장모님. 우리만 먹기가 뭐해서 "좀 드셔보세요" 하면 "손주들이 밥먹는 모습만 봐도 배불러" 하며 손사래 치시던 장모님.

하늘공원 화단에 장모님이 좋아하는 코스모스가 피었다
 하늘공원 화단에 장모님이 좋아하는 코스모스가 피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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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종산에 나란히 누워 계신 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하고 묘 주위를 돌아보니 내가 군대 가기 전 아버지와 함께 심어놓은 밤나무와 단감나무에 씨알이 가득 찼다.

산에서 캔 송이버섯에 맛있는 김치를 먹으며 삶은 밤을 먹을 때다. 한쪽 날개가 찟어진 잠자리 한 마리가 날아와 쫒아도 도통 날아가려 하지 않는다. 잠자리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 주위에 앉지도 않는 속성이 있다. 하는 수 없어 날개를 잡아 풀밭에 놓아줘도 또 다시 식탁으로 날아온다. 혹시 돌아가신 어머니 영혼이 아닐까?

성묘하러 온 자식들이 둘러앉아 맛있게 점심을 먹는 모습을 보러온 건 아닐까? 살아 계실 때 잔디밭 식탁에서 식사를 같이 하며 좋아하셨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날개를 잡아 나무 위에 올려다 놓았다.

장인 장모님 유골함 앞에선 아내와 딸
 장인 장모님 유골함 앞에선 아내와 딸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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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장인 장모님을 모신 납골당 '하늘공원'을 찾았다. 구례 섬진강가에 있는 하늘공원은 아름다운 강변을 중심으로 꽃길이 조성되어 있어 장모님이 좋아하던 곳이다.

납골당 유리 속에 나란히 있는 두 분이 인자한 모습으로 우리를 쳐다본다. 평생을 고생하며 자신에 대해서는 한없이 엄격하고 남한테는 베풀기만 하던 장모님이 "오서방 왔는가?"하며 반갑게 맞이해준다. 장모님이 평소 좋아하던 꽃을 사들고 유골함 밑에 내려놓은 아내가 기도를 하며 또 다시 눈물을 보인다.  

납골당을 내려오는 길. 섬진강 건너편에 열차가 긴꼬리를 물고 달려가고 강변도로에는 코스모스가 하늘거린다. 맑은 가을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싸하다. 언젠가 이별하는 게 인생이지만 내 맘도 싸하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추석성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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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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