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다 허물어진 통통배. 바닷가 사는 이들 고단한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 허물어진 통통배. 바닷가 사는 이들 고단한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고향을 갈 때마다 엄마 품 같습니다. 그러니 천릿길을 멀다하지 않고, 달려갑니다. 하지만 고향 산천은 그 옛날 팬티만 입고 풍덩풍덩 멱감고, 뛰어놀던 곳이 아닙니다. 통통배는 볼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허물어져가 얼마 있지 않아 불에 자신을 태울 날이 다다랐습니다. 보여주고 있습니다.

허물어지는 통통배, 고향을 보는듯...

또 썰물때만 건너갔던 섬은 콘크리트 방파제가 생겨 언제나 건너갈 수 있어 이제는 섬이 아닙니다. 30년~40년 전 동무들은 팬티만 입고 바닷물에 풍덩 뛰어들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꿈'에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질매섬입니다. 멀리서며 보면 꼭 장구같이 생겨, 장구섬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질매섬입니다. 멀리서며 보면 꼭 장구같이 생겨, 장구섬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섬으로 오르는 아이들
 섬으로 오르는 아이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우리 동네 이름이 '질매섬'입니다. 섬 이름이 질매섬입니다. 멀리서 보면 장구같이 생겨 장구섬이라고도 합니다. 어릴 적 얼마나 뛰어놀았는 모릅니다. 아이들과 함께 올랐습니다. 어릴 적 추억들이 새록새록 납니다. 지금은 다들 어디가 있을까요? 함께 뒹굴고, 놀았던 동무 하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30년 시간, 40년 시간이 고향 동네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생명까지 거둬갔습니다.

흰조개껍데기는 어디가고...

섬에 올라 저 멀리 삼천포가 보입니다. 옛날에는 어머니께서 배를 타고 삼천포 장에 갔습니다. 그 때마다 선창가에 나와 배가 올 때까지 하염없이 놀았습니다. 그 때는 흰조개껍데기가 바닷가에 널려있었습니다. 눈이 부셔 뜰 수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흰조개껍데기는 없습니다. 방파제로 섬과 뭍을 막아버리자 뻘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천만입니다. 왼쪽 푹꺼진 곳이 삼천포입니다. 저 멀리 삼천포와 사천시 서포면을 잇는 다리가 보입니다.
 사천만입니다. 왼쪽 푹꺼진 곳이 삼천포입니다. 저 멀리 삼천포와 사천시 서포면을 잇는 다리가 보입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S자 물길입니다. 옛날에는 더 크고 깊었는데 이제는 매립이 되는 바람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S자 물길입니다. 옛날에는 더 크고 깊었는데 이제는 매립이 되는 바람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방파제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옛날에는 태풍이 불면 배가 부서지고, 침몰했습니다. 고기잡이 어부들에게는 큰 타격이었습니다. 하지만 방파제를 만든 후부터는 피해입는 배는 없습니다. 하지만 바다는 흰조개껍데기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뻘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생명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100년 밖에 살지 못하면서...

죽어가는 바다를 보면서 마음이 아픕니다.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를 보면서 오래 살면 90~100년 밖에 살지 못하면서 왜 그렇게 욕심을 부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래 세월 동안 파도와 바람때문에 바위고 구멍이 송송 뚫렸습니다.
 오래 세월 동안 파도와 바람때문에 바위고 구멍이 송송 뚫렸습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오래 세월 동안 파도와 바람때문에 바위고 구멍이 송송 뚫렸습니다.
 오래 세월 동안 파도와 바람때문에 바위고 구멍이 송송 뚫렸습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사람의 시간 개념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오랜 세월 동안 파도에 부딪히고, 바람과 비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이 바위들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파도에 맡겼고, 바람에 맡겼습니다. 비에도 맡겼습니다. 자기 몸이 조금씩 떨어져나갔지만 파도와 바람과 비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가 되었기에 지금 우리 눈 앞에 구멍숭숭 뚫린 바위가 되었습니다.

오래 세월 동안 파도와 바람때문에 바위고 구멍이 송송 뚫렸습니다.
 오래 세월 동안 파도와 바람때문에 바위고 구멍이 송송 뚫렸습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석화(돌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위에 붙은 굴이 꽃처럼 보인다고 붙인 이름입니다. 옛날에는 석화를 돌 위에 올려 놓고 구워 먹었습니다.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양식굴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추운 겨울에 구워 먹었던 그 맛, 요즘 아이들은 피자와 햄버거와 치킨으로 입맛을 돋구지만 우리들은 돌판 위에 석화로 입맛을 돋구었습니다. 과연 누가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들일까요.

그 때 겨울은 돌판 위에 굴을 구워 먹었네...

석화(돌꽃)으로 불리는 굴입니다. 바위에 붙은 굴을 이렇게 부릅니다.
 석화(돌꽃)으로 불리는 굴입니다. 바위에 붙은 굴을 이렇게 부릅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석화밭입니다. 실제 모습은 더 화려합니다.
 석화밭입니다. 실제 모습은 더 화려합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갑자기 자랑하고 싶습니다. 우리 동네를 소개할 때마다 자랑합니다. 우리 동네 앞바다는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맨처음 투입한 '사천해전'을 펼친 곳입니다. 동네 건너편에 선진리성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1592년 5월 29일 함선 23척을 이끌고 여수본영을 떠나 선진(船津) 앞 바다에 이르러 거북선을 앞세워 왜적과 치열한 싸움 끝에 왜선 13척을 쳐부수었습니다. 그 때는 물이 많이 깊었지만 지금은 진양호 물이 많이 내려와 얕습니다. 역시 사람 손길이 닿으면 자연은 조금씩 파괴됩니다.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으로 왜군을 물리친 앞바다. 붉은선 안이 유명한 선진리성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으로 왜군을 물리친 앞바다. 붉은선 안이 유명한 선진리성입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역사가 숨쉬는 우리 동네입니다. 내가 뛰놀던 질매섬 앞에서 아이들이 찰칵했습니다. 조카와 우리 아이들은 아빠와 큰 아빠가 놀았던 생명 가득한 질매섬은 몸으로 느낄 수 없지만 그래도 도시 아이들보다는 훨씬 더 생명을 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갯벌이 아직은 살아있고, 갈매기도 볼 수 있으며, 게도 있습니다.

엄마품 고향,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기를...

더 이상 고향이 무너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엄마 품같은 고향이 무너지면 갈 곳이 없습니다. 고향은 엄마이고, 생명입니다. 작은 탐욕이 자라고 자라 큰 탐욕이 되면 고향은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향은 엄마품으로 남겨두어야 합니다.

우리집 아이들과 조카들 질매섬 앞에서 찰칵합니다
 우리집 아이들과 조카들 질매섬 앞에서 찰칵합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태그:#고향, #질매섬, #엄마품, #사천앞바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