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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목사내아'를 경이롭게 둘러 본 우리들은 인근의 나주목 동헌의 정문인 '정수루(正綏樓)'를 보기 위해 잠깐 움직였다. 정완루라고도 부르는 나주목관아의 정문인 정수루는 전남문화재자료 제86호로 지정되어있는 폼나는 건물이다.

조선 선조 36년 나주 목사로 부임한 우복룡이 시작(詩作)과 풍류를 즐기고자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아침이면 이곳 문 앞에서 의관을 다시 정비했다고 한다.

현재 나주에는 동헌이었던 '제금헌(制錦軒)'이 일제강점기 어디론가 팔려가 흔적도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정문인 정수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멋지게 남아있다.
나주 동헌의 정문이다
▲ 나주 정수루 나주 동헌의 정문이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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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루는 1층의 양 측면만 벽체로 구성되어 있고 나머지는 모두 열린 구조로 개방되어 있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주춧돌은 낮은 원형이다.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고 2층 바닥에 장마루를 깔았다. 2층의 기둥 위에 주두를 놓아 창방을 걸었다.

천장은 종량 위로는 우물천장을 가설하고 그 외에는 연등천장으로 만들었다. 양 옆의 중심 기둥으로부터 대량 위로 걸은 충량의 머리는 화려한 용머리 장식으로 치장했다. 왼쪽의 용은 여의주가 없고 오른쪽용은 여의주를 물고 있다. 2층 누각에는 큰 북과 가로 158㎝, 세로 55㎝ 크기의 편액이 걸려 있다.

큰 북은 1583년~86년까지 재임한 학봉 김성일 목사가 민정이 막히는 것을 막고자 신문고와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처음 걸어 둔 것이다. 학봉 선생은 나주 목사로 재임할 당시 명판관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원통한 일을 하소연 할 자는 누구든 북을 쳐라" 라고 할 정도로 민의를 잘 수렴한 원님으로 알려져 있다.

북은 오랫동안 시간을 알리기도 했으나 한국전쟁 때 분실되었다. 지금의 북은 1986년 나주시에서 다시 설치한 것이다. 일제가 길을 내면서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정수루 누문이 통로로 사용되어 왔고, 명절 때는 행사의 무대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현재는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 우회도로를 만들었다.

정수루 바로 옆에는 예전에 금남동사무소 건물로 쓰이기도 했던 '나주목문화관(羅州牧文化館)'이 있다. 고려 조선시대 나주목의 천 년 역사를 알리기 위해 세운 문화관이다.

나주는 멀리 고려 성종(983)때부터 1895년 나주 관찰부가 설치될 때까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주목이 유지된 곳이다. 나주목문화관은 지난 2006년 개관했다.

지방행정단위였던 '목(牧)'에 대해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각종 조형물과 사진,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어향나주 목이 되다' '나주목사 부임행차' '나주읍성 둘러보기' '관아 둘러보기' '다시 태어나는 나주' 등 8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20명에 이르는 목사들의 명패와 목사의 하루 일정 등도 한 눈에 볼 수 있다.

한양의 모습과 흡사하다
▲ 나주읍성 한양의 모습과 흡사하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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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양의 모습과 흡사한 나주읍성의 모형은 감탄을 자아낸다. 동서남북에 산이 있고 4개의 대문과 서울의 청계천을 연상하게 하는 나주천이 중앙을 가르는 모습은 나주를 '소경(小京)'이라고 불렀던 연유를 알게 하는 모형이다.

나주목문화관을 본 다음, 일행은 '나주객사'라고도 불리는 '금성관(錦城館)'으로 갔다. 금성관은 한 달에 두 번 한양에 있던 임금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던 제를 올리던 곳이다. 양 옆에 있는 서익헌과 동익헌은 외국사신이나 중앙에서 출장 온 관리들이 머물던 요즘으로 보자면 최고급 국영호텔이다.

금성관은 내용정면 5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로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호다.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나무를 짜 맞추어 건축한 이 건물은 조선 초 이유인 목사가 건립한 것으로, 선조 36에 크게 중수하였고, 고종 21에 박규동 목사가 또다시 중수했다.

나주시
▲ 나주 금성관과 객사 나주시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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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관의 규모는 한양에 있는 궁궐 정전과도 비슷할 정도로 크기도 크고 웅장하다. 금성관이라는 앞면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쓴 것으로 전해진다. 금성관은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에는 건물의 일부를 개조하여 군청 청사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후 1963년과 1976년 두 차례에 걸쳐 완전 해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겹처마집으로, 외일출목(外一出目)의 주심포양식을 이루고 있는데, 정면 중앙 3칸은 네 짝의 빗살문을, 양쪽 협간에는 두 짝의 빗살문을 달았고, 측면 또한 빗살창문으로 중앙 2칸은 네짝 문이고, 양쪽 1칸에는 두 짝을 달았다. 크기도 대단하지만 대청이 넓어 행사장으로 쓰기에도 무척 좋았을 것 같아 보인다.

궁궐의 기둥처럼 웅장하다
▲ 나주 객사 동익헌 궁궐의 기둥처럼 웅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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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관 전체는 최근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되어 좌측에는 종3품 이하의 하급관리들이 머물던 서익헌과 우측에는 정3품 이상의 고급관리들이 머물던 동익헌을 다시 지었다. 특히 동익헌은 육관대청의 큰 마루와 방을 갖추고 있어 그 웅장함과 크기가 대중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나주의 역사를 지켜본 은행 나무들
▲ 객사 뒷편 은행나무 두 그루 나주의 역사를 지켜본 은행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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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에는 십여 개의 공덕비와 뒤편에는 큰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있다. 그리고 우측 담장 옆에 있었다는 육방 관속 등의 집들은 현재는 없지만, 장기적으로 나주시는 복원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나주객사를 둘러 본 우리들은 다시 차를 타고 공산면 신곡리에 위치한 '나주영상테마파크'로 갔다. 단일 규모로는 전국에서 가장 큰 드라마 촬영장인 이곳에서는 '주몽' '이산' '바람의 아들' '태왕사신기' 등 인기 드라마가 촬영되었고, 현재는 '신의' '전우치' 등을 찍고 있다고 한다.

아주 큰 드라마 촬영장이다
▲ 나주영상테마파크 아주 큰 드라마 촬영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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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는 부여와 졸본부여의 왕궁을 중국 황궁의 모습에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웅장하게 재현해 두었고, 권력의 중심을 담당하였던 제사장이 활동하던 신단과 당시 최고의 힘과 권력을 상징하였을 철기무기제작소인 철기방 등 신기한 구경거리가 많았다.

나주영상테마파크
▲ 영산강과 나주평야가 보인다 나주영상테마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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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개인적으로는 세트장 맨 뒤편에 있는 전망대에 바라본 영산강과 나주평야의 전경이 무척 좋았다. 황포돛배를 타는 곳도 보였다. 배도 고프고 시간도 별로 없어서 배를 타는 것은 포기하고 돌아서 나왔다.

그리고 입구에 있는 '삼족오의 비상'이라고는 하는 김숙빈 선생의 조각을 보면서 너무 감동을 받았다.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모습과 현대의 로보트 태권브이를 결합한 형태의 조각으로 우리 민족의 기상과를 미래를 표현한 듯하여 기분이 좋았다.

광개토태왕과 로보트 태권브이를 합친 조각이다
▲ 멋진 조각 광개토태왕과 로보트 태권브이를 합친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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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나주시내로 나와 남내동에 있는 나주문화원장과 전남도의원을 지낸 '박경중 선생의 고택' 사랑채를 이용하여 한식당을 하고 있는 '사랑채'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반찬도 깔끔하고 맛도 좋아서 정말 맛있게 식사를 했다.

정말 맛있는 점심
▲ 사랑채 정말 맛있는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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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 인근 커피 전문점에서 맛있는 아메리카노로 졸음을 쫒은 다음, 일행은 다시 금성산 중턱 경현동에 위치한 '다보사(多寶寺)'로 이동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인 다보사는 661년(신라 태종무열왕 8)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금성산에서 초옥을 짓고 수행하던 스님이 땅에서 솟아난 칠보로 장식된 큰 탑 속에서 다보여래가 출현하는 꿈을 꾼 뒤 사찰을 창건했다 하여 다보사라고 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계곡이 좋다
▲ 다보사 계곡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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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학승들의 정진도량으로 이름이 놓은 곳이다. 아울러 깨끗하고 맑은 물이 많은 계곡이 너무 좋고 상사화 등의 꽃이 수없이 피어있고, 700년 된 보호수인 팽나무와 가을에는 단풍이 예뻐 이곳을 찾는 신도와 관광객 또한 무척 많다고 한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선불교의 법맥을 잇는 선방(禪房)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다보사는 좁은 골짜기 지형 속에 들어앉아 사방이 울창한 숲과 산등성이로 둘러싸여 있는 수려한 경관이 좋은 곳이다.

작지만 이쁜 절이다
▲ 다보사 대웅전 작지만 이쁜 절이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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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볼거리가 많은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전각으로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87호로 지정되어 있다. 실내에는 석가모니불과 문수, 보현의 삼존불이 안치되어 있다. 

정면 3칸 문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쌍여닫이 빗꽃살문이 설치되어있다. 문살에는 국화, 매화, 모란 등의 문양이 정교하고 뛰어난 솜씨로 새겨져 있어 매우 아름답다. 다보사를 방문하는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보고 와야 할 멋진 문창살이다.

대웅전 문창살
▲ 다보사 대웅전 문창살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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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앞으로는 석등, 부도, 5층 석탑, 우화당 대선사비, 진상화상 창적비 등이 세워져 있다. 또 다른 볼거리였단 보물 1343호 '괘불탱(掛佛幀)'은 현재 나주시 향토문화회관으로 옮겨져 있다.

아울러 절 입구 사천왕문은 기존 절의 경우 사천왕 4명이 무서운 표정으로 서 있지만, 이곳의 경우 어린 동자승 둘과 전혀 무섭지 않은 사천왕 둘이 서 있어 첫 방문자도 두려움 없이 문을 통과할 수 있어 좋다.

그리운 절이다. 대웅전 앞에서
▲ 다보사에서 기념 촬영 그리운 절이다. 대웅전 앞에서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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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다보사까지 둘러 본 우리들은 성수를 집까지 바라다 주고는, 10월 초순에 국제농업박람회장을 다시 찾기로 약속을 하고 서울로 향했다. 무척 즐겁고 재미난 나주 여행이었다. 


태그:#나주시, #나주객사 , #나주금성관, #정수루 , #다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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