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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아빠가 하트 보내래. 빨리!"

밤늦게 집에서 걸려온 전화는 날 웃기기에 충분했다. 동생의 다급한 목소리 뒤에서는 '라스트 팡! 팡팡'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 아빠는 1200만 명 넘게 한다는 그 게임, '애니팡'에 푹 빠졌다.

 오늘 내가 세운 애니팡 신기록.
ⓒ 김은희
지난 52년을 살면서 그저 인터넷으로 하는'맞고'가 게임의 전부였던 아빠를, 핸드폰으로 문자 한 통 보내는 것도 힘겨워 하는 아빠를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여야 하는 '애니팡' 게임에 끌어들인 범인은 바로 나다.

선데이토즈에서 개발한 스마트폰용 퍼즐게임 '애니팡'은 그동안의 모바일 게임과는 다르게 카카오톡과 연동된다는 차별점이 있다. 때문에 카카오톡으로 맺어진 친구들과 게임 랭킹 순위와 점수를 비교할 수 있으며 '하트'(게임을 할 수 있는 원천)를 주고 받을 수도 있다.

'하트' 한 개로 1분동안 게임을 할 수 있는데 하트가 다 떨어지면 아직 '애니팡' 앱을 다운받지 않은 카톡 친구들을 초대해서 하트를 획득할 수 있다. 또 '애니팡'을 하고 있는 카카오톡 친구들과 '하트' 선물주기를 통해 하트를 얻을 수 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애니팡에서 게임을 한 판 하려면 하트가 한 개 필요한데, 그 하트는 8분에 하나씩 자동으로 충전되기도 하고, 친구가 보내주면 (게임을) 한 판씩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8분이란 시간을 인내하며 기다릴 수 없었다. 같은 동물 3개 이상을 맞이면 '팡팡' 하고 터지는 그 화면을 보고 있자면 1분도 기다릴 수 없었다. 그래서 아빠를 꼬드겼다.

"아빠, 애니팡 앱 다운로드 하고 나한테 하트 좀 보내줘. 제발!"

 애니팡 게임 장면
ⓒ 김은희

애처롭게 '하트'를 구걸하는 내가 웃겼는지, 결국 아빠는 애니팡 앱을 다운 받았다. 그리고 나에게 하트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아빠의 애니팡은 시작됐다. 덕분에 나는 하트가 없어 게임을 할 수 없고, 인내심 없이 8분도 기다릴 수 없을 때면 어김없이 아빠에게 '하트' 를 요청했다. 그렇게 나의 게임은 지속될 수 있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의 '애니팡' 랭킹은 카카오톡 친구들 사이에서 단연 1위, 점수도 40만 점이 넘는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아닌 아빠였다. 애니팡 앱을 다운받은 아빠는 그후로 밤낮없이, 시간이 날 때마다 애니팡을 했다. 나보다 더 많이 "하트를 좀 보내줘"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하트'를 요청했다.

아직 9만점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빠는 나에게 애니팡 고득점을 얻는 비법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 덕에 나도 매 시간마다 아빠와 하트를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와 카카오톡으로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평소에 연락도 잘 주고받지 않는 아빠와 나사이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애니팡으로 대동단결, 훈훈한(?) 부녀지간이 됐다.

애니팡 덕에 끊겼던 인연을 되찾았다

나의 애니팡에 얽힌 훈훈한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일명 '상부상조' 하트 주고받기는 많은 친구들 사이에서 이미 흔한 일이 됐다. 친구가 하트를 보내주면, 나도 반사적으로 애니팡에 접속하고 친구에게 하트를 보내준다. 간혹 나와 서먹서먹한 사이의 사람도 하트를 보내오는데, 그럴 땐 '하트가 얼마나 간절했으면 나한테…'라는 생각에 하트를 마구 보내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트 주고받기뿐만 아니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애니팡 덕에 친구와 연락됐다"라는 경험을 나도 겪었다. 연락이 끊겼던 친구와 '하트'로 인해 연락이 닿았다. 핸드폰을 바꾸면서 번호를 미처 저장하지 못해 연락이 끊겼었는데, 친구가 내게 '하트'를 보내면서 연락이 닿은 것이다.

 강의가 끝난 후에 확인한 카카오톡에는 온통 '하트'뿐이다. 아빠가 보내준 하트도 있다.
ⓒ 김은희

내게 애니팡은 재미와 훈훈함, 친구들과의 친밀함을 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이면에는 단점이 존재한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강의가 끝났을 때, 핸드폰을 확인하면 하트가 줄줄이 소시지처럼 와 있다.

수시로 날아오는 하트 때문에 '하트 노이로제'에 걸린 사람도 있다고 한다. 지금은 애니팡 메시지 수신거부를 할 수 있어 그나마 불편을 덜었지만 말이다. 일각에서는 애니팡은 '하트 노이로제'외에도 한국 특유의 경쟁심을 유발하는 '씁쓸한 경쟁시대의 자화상'을 담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단점과 비판에도, 나는 꾸준히 애니팡을 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냥 재밌으니까.

핸드폰의 소리를 높게 조정해놓고 애니팡을 하고 있으면 속이 시원하다. 가끔은 눈이 먼 것처럼 보이지 않아 답답하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펑펑 터지는 폭탄을 보고 있노라면 지루한 강의에 지쳤던 마음에 깨알 같은 위로를 주기도 한다.

나처럼 애니팡을 하면서 깨알 같은 위로를 받으며 점수를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오늘 내가 세운 애니팡 신기록을 공개한다. '423,646점'. 내가 전혀 상상해보지 않았던 점수다. 내가 애니팡을 처음 시작할 때엔 겨우 3만점을 웃돌면서 하위권을 기웃거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운 좋게도 신들린 듯 팡팡 터지는 '그분'을 만났고 큰 점수를 받았다.

신들린 듯 팡팡 터지는 '그분'을 만나는 비법을 약장수처럼 전수하자면, "손 놀리지 않는 자, 점수 얻을 수 없다. 쉬지 않고 손 놀리면 알아서 고득점으로 가게 된다!"이다. 눈이 아프고, 카카오톡으로 날아오는 '하트'가 내 선잠을 깨울지라도 당분간 나의 '애니팡' 사랑은 계속 될 듯하다.


태그:#애니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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