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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지난 17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망언으로 고소·고발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유족들이 조 전 청장을 고발한 지 2년 1개월 만입니다.

조 전 청장의 허위 주장이 계속될 때도 전직 경찰 총수에 대한 예우를 내세워 서면조사만 반복한 검찰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MB정부가 들어선 이후 검찰이 제대로 된 수사를 한 적이 있었던가요. 지금 검찰은 '정치 검찰'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 검찰은 '개혁 대상'

경향신문 2012년 9월18일자 사설
▲ 경향신문 경향신문 2012년 9월18일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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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검찰은 지난 5월과 6월, 조 전 청장에 대한 두 차례 소환조사를 통해 전반적인 사실 관계를 파악했지만 그에 대한 기소를 석 달 가까이 미뤄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18일 치 <경향신문> 사설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 딸 정연씨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사건을 먼저 종결한 뒤 처리"하는 것이 검찰의 방침이었다고 합니다.

실소를 금치 않을 수 없습니다. <경향신문>이 지적한 것처럼 "도대체 두 사건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검찰 수뇌부에 노정연씨 사건과 조 전 청장 발언을 '엮어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는 <경향신문> 사설을 다시 한 번 유심히 바라보게 됩니다. 발언의 파장은 조 전 청장의 망언에서부터 시작됐지만, 검찰의 늑장수사가 유족의 피해와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킨 것은 분명합니다. '검찰책임론'이 제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검찰책임론' 못지않게 '언론책임론'도 지적하고 싶습니다. '조현오 망언'을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사회적으로 확산시킨 주범이 바로 언론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7일과 18일 언론의 보도만 봐도 그렇습니다. 아직 재판이 남아있기는 합니다만, 검찰이 수사를 통해 조 전 청장의 주장을 허위라고 판단했을 정도면 최소한 조 전 청장을 비판하는 기사가 나와야 하는 게 '기본'이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18일 치 종합일간지에서 검찰의 늑장수사와 조 전 청장을 비판하는 입장을 게재한 언론매체는 <경향신문>이 유일합니다. <한국일보>의 경우 사회면(8면)에서 "검찰 수사를 통해 조 전 청장의 주장이 허위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조 전 청장이 도덕적 비난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라는 법조계 의견을 전하고 있습니다. 대다수 언론은 검찰이 조 전 청장을 불구속 기소했다는 소식만 전하고 있을 뿐입니다.

언론의 일방적 받아쓰기, 언제 그칠까

저는 검찰이 조 전 청장을 불구속 기소한 사건을 크게 다루지 않았다고 언론을 비판하는 게 아닙니다. 조 전 청장이 근거도 없이 '망언'을 일삼을 때 검증 절차 없이 그 발언을 받아쓰기 바빴던 언론이었습니다. 그런데 검찰이 수사를 통해 '근거가 없다'고 판단하자 이번에는 검찰 수사 결과를 받아쓰기에 바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론의 검증도 없고, 언론의 책임도 없습니다. 조중동과 방송 3사는 물론 일부 언론을 제외한 거의 대다수 언론이 받아쓰기에만 열중입니다. 그들의 받아쓰기가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갔음에도 자기반성과 책임의식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한국 언론의 슬픈 현실입니다.

'조현오 망언'에 관련한 보도와 관련해 많은 언론이 비판을 받아야 하지만, 그중에서 <동아일보>는 사과문을 게재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아무 근거 없는 조현오 전 청장의 발언을 1면 머리기사로 장식하고, 주요 기사로 내보낸 언론이 바로 <동아일보>이기 때문입니다.

<동아일보>는 단순히 검찰의 수사결과를 받아쓴 데 그친 게 아니라 검찰 소환을 앞둔 상태에서 조 전 청장의 망언을 적극적으로 확대·재생산했습니다. 그의 발언을 이슈로 만들기 위해 주력했습니다.

<동아일보>는 1면에 사과문 내야

대한민국이 워낙 '다이내믹'한 사회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아무리 큰 대형사건이라도 금방 잊히게 됩니다. 조현오 망언도 비슷합니다. <동아일보>가 아무 근거도 없는 조현오의 망언을 어떻게 보도했는지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언급하려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자신의 지면에서 이 정도 보도를 한 언론이라면 1면에 사과문 내고 유족에게 용서를 구하는 게 온당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번 보시죠. 지난 5월 <동아일보>의 지면이 어떻게 춤을 췄는지.

동아일보 2012년 5월4일자 1면
▲ 동아일보 동아일보 2012년 5월4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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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12년 5월5일자 5면
▲ 동아일보 동아일보 2012년 5월5일자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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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은행, 누구 명의인지 다 까겠다">(5월 4일 치 1면)
<'조현오 파일' 실체 존재한다면 대선판 전체 흔들 '뇌관'>(5월 5일 치 5면)

근거도 실체도 없는 발언을 여과 없이 중계한 것은 <동아일보>였습니다. 그랬던 <동아일보>가 지난 17일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되자 18일 사회면(12면)에 <검 "조현오, 노 차명계좌 발언은 명예훼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보도했습니다.

동아일보 2012년 9월18일자 12면
▲ 동아일보 동아일보 2012년 9월18일자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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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측에는 확인도 안 하고 중수부가 던져준 자료만으로 차명계좌가 없다고 하는 건 승복할 수 없다, 재판 과정에서 충분히 밝혀지리라 생각한다"는 조 전 청장의 반박과 함께 말이죠.

<동아일보>의 보도에는 최소한의 염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조현오 망언'을 둘러싼 검찰과 언론의 태도에서 왜 그들이 개혁의 대상인지 명확히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홈페이지에도 올렸습니다.



태그:#조현오, #동아일보,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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