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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버섯이지만 화분에 난 게 신기합니다
▲ 화분에 버섯이 돋았습니다 독버섯이지만 화분에 난 게 신기합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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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환기를 시키려고 발코니 창문을 열어놓고 돌아서다가 작은 버섯 한 쌍을 발견했습니다. 행운목 줄기 하나가 싹을 틔우고 있는 그 바로 밑에서 맑은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형제인가 봅니다. 나란히 있습니다.

우리 동네 잔디밭 길을 오가다 보면 가끔씩 버섯들을 만나고는 합니다. 풀밭 속에 숨어서 옹기종기 모여 있지만 갓이 넓고 두꺼워서 얼른 눈에 띄었습니다. 물론 독버섯입니다. 얼마나 예쁜지를 모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어머 버섯 좀 봐" 하고 눈길을 줍니다. 버섯은 비가 오고 난 후에 잔디밭에서나 보게 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 거실 화분에서 갑자기 쑥 돋아나다니 이런 일은 생전 처음입니다.

잔디밭에서 만난 버섯과는 비교도 안 되게 작고 색깔도 별로지만 신기해서 들여다보고 있는데 복도에서 신문을 집어 들고 들어온 남편이 "뭘 그렇게 봐?" 하면서 다가왔습니다.

"거, 거 신기하네. 어떻게 아파트 꼭대기까지 포자가 날아들었대?"
"더위에 창문을 열어놓고 사니까 얘가 들어왔나 봐. 손님이라구, 반가운 손님! 근데 독버섯도 이름이 있을 텐데 얘는 이름이 뭘까?"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남편은 '얼른 아침이나 준비하시지' 하는 눈빛으로 피식 웃고 소파로 갑니다. 그리고 신문을 펼쳐들었습니다.

언젠가 우스갯소리 잘하는 이웃과 같이 잔디밭길을 지나다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탐스러운 버섯을 발견하였을 때입니다. 내가 "근데 얘는 이름이 뭘까" 하자 이웃이 "뭐긴, 잔디밭에서 났으니까 잔디밭 버섯이지" 해서 웃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행운목 기둥 밑에서 행운목 기운을 받고 돋아났으니까 행운목 버섯이지 뭐."

그러나 남편은 돌아다 보기는커녕 펼쳐든 신문을 내리지도 않습니다. 나는 버섯 형제들을 발견한 순간부터 즐겁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쩐지 오늘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을 것만 같고,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습니다.

버섯은 수명이 짧습니다. 쨍쨍한 햇볕에 약합니다. 잔디밭에 돋아난 갓이 두꺼운 버섯들도 저녁 무렵에 가보면 저절로 없어졌거나 죽어서 널브러져 있습니다. 잔디밭 버섯에 비하면 버섯형제는 갓도 얇고 키도 아주 작습니다. 햇빛이 들이치면 그대로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버섯 형제가 흔들리지 않게 가만 가만 화분을 밀어서 햇볕이 덜한 구석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흙이 건조하기만 해도 이내 없어질 것 같아서 분무기로 조심조심 화분 테두리에만 물도 뿌려 주었습니다. 버섯 형제가 더 싱싱해 보입니다. 수명이 한 시간 정도라도 더 길어지기를 바랐습니다.

"그거 독버섯이야! 독버섯 만진 손으로 눈 비비면 큰일 난다구" 

갓이 두텁고 탐스럽습니다
▲ 잔디밭에 버섯들 갓이 두텁고 탐스럽습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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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설거지가 끝나자 모아 두었던 음식물 찌꺼기가 담긴 비닐봉투를 들고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날씨가 참 좋습니다. 하늘이 쪽빛입니다. 따가운 햇볕이 버섯형제에게까지 들이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음식물 찌꺼기를 버리고 돌아서다가 이웃을 만났습니다. 이웃 역시 음식물 찌꺼기가 담긴 비닐봉투를 벌려 통에 쏟아버립니다. 손을 씻으려고 수돗가로 가는데 이웃이 따라오면서 말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졌어, 그리도 덥더니 말야."
"그러네. 참 우리 집에 가서 버섯 구경하고 가."

"버섯? 뭔 버섯?"
"글쎄 오늘 아침에 행운목 화분에 버섯이 났지 뭐야. 아주 작은 게 얼마나 예쁜지 몰라."

그러자 이웃은 한심해하는 눈빛부터 보내고 말했습니다.

"그거 독버섯이야! 손으로 만졌어?"
"아니."
"독버섯 만진 손으로 눈 비비면 큰일 난다구. 코나 입을 만져도 안 되구."

나는 기분이 찝찝합니다. 예쁜 버섯형제가 독버섯이라는 건 알지만 그 독성에 대해서는 깜박 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고 작은 버섯이 독을 가지고 있어봤자 얼마나 되겠어. 그것도 저녁 때가 되면 저절로 죽을 텐데'

이웃이 내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이 한마디를 더 합니다.

"작은 독버섯이라도 씨가 날리면 안 되니까 당장 뽑아버리라구. 비닐봉지를 팍 씌워서 깊이 떠서 잔디밭에 버려. 그럼 햇볕에 이내 죽을 거야. 나도 얼마 전에 화분에 난 걸 그렇게 했다구. 우리 며느리가 어린 손자들 생각해서 그렇게 하라고 하지 뭐야."

포자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내 손에 묻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화분에 날아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아까 보다 더 기분이 찝찝해졌습니다. 생각해보니까 독버섯에 대한 상식은 누구나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나는 사람들 모두가 잔디밭에 버섯을 힐끗 보거나 "어머 버섯 좀 봐" 하며 그냥 지나갔던 것입니다. 아이들도 "독버섯이야, 독버섯!" 할 뿐 그냥 지나갔습니다.

나는 수돗가로 가서 수돗물을 콸콸 틀어 일부러 손을 뽀드득 소리가 나게 씻습니다. 그래도 찝찝한 기분이 가시지를 않습니다. 집안 청소를 하기 전에 버섯형제들부터 잔디밭에 옮겨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뒤에서 이웃이 "빨리 오라구. 엘리베이터 왔으니까!"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태그:#화분에 돋은 버섯, #잔디밭에 버섯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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