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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씨 세상과 바람나다.〉
▲ 책겉그림 〈정숙씨 세상과 바람나다.〉
ⓒ 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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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기 생각을 상대방에게 알리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일이기도 하겠죠. 역사나 정치나 문화나 사회 전반에 관해 진지하게 대화하는 일도 되겠죠. 다만 무언가를 포장하는 만남에는 어색함이 쌓이겠지만 꾸밈없는 만남에는 진정성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만남이란 어찌 보면 정해놓지 않는 자유여행과도 같겠죠? 틀에 박힌 길을 따라 사람을 만나는 것 말고, 그저 길섶에 자라고 있는 들풀을 대하듯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는 것 말이죠. 들풀이든 들꽃이든 그들이 내게로 다가오려면 나 역시 내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야 할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무릇 만남에는 가르침과 배움이 있기 마련이죠. 사람들이 훌륭한 멘토를 만나려는 것도,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을 찾아 만나려는 것도 같은 이치지요. 자기 삶에 연약한 모습이나 부족함을 깨우치고자 말이죠. 물론 세 살배기 꼬마에게도 뭔가 배울 게 있기는 마찬가지겠죠.

그만큼 모든 만남에는 겸손한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런 마음이 자리 잡고 있지 않으면 제 아무리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이라도 소귀에 경 읽기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한 나라를 바르게 이끌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겸손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죠.

그런데 대통령 후보의 아내가 되겠다는 사람, 어쩌면 '퍼스트레이디'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 그런 만남을 가졌다면 어떨까요? 보통 사람들은 분명 색안경을 끼고 들여다보겠죠. 여러 사람들을 자기 남편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그런 만남을 주선했다고 말이죠. 하지만 문재인 씨의 부인인 김정숙 씨의〈정숙씨 세상과 바람나다〉는 이 책은 그런 구린내가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너무나도 솔직하고 참으로 따뜻하게 다가온 책이었습니다.

이 책에는 우리 시대의 참 스승으로 불리는 '신영복 선생'과의 만남을 비롯해, 드라마 〈추적자〉에서 대통령 후보 강동윤 역을 맡았던 김상중 씨, 가수 이은미 씨와 방송인 김제동 씨, 연극배우 손숙 씨, 패션디자이너 김지나 씨, 사진작가 김중만 씨, 영화감독 임순례 씨, 만화가 윤태호 씨와 여행작가 김남희 씨 등 모두 10명의 사람들과 만나 나눈 대화가 담겨 있습니다.

사실 김정숙 씨가 신영복 선생을 찾아간 것은 우리 시대의 참 스승이자 훌륭한 멘토로 생각한 까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김정숙 씨에게 신영복 교수는 놀랄만한 대답을 해 주죠. 이른바 '스승은 당대에는 없다'는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현재 시점에서는 다들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는 생각 때문이죠. 그것이 역사 속에서만 스승이 있다고 밝힌 이유였습니다.

그렇다고 신영복 선생이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들만은 아니라고 하죠. 오히려 만나고 싶지 않는 사람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반드시 만나려고 하고, 지역이나 진보-보수를 떠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유인 즉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편협해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죠. 김정숙 씨는 과연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저는 우리나라가 무형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가치가 없다고 요즘의 아이들이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해 보일 수도 있으나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면서 무언가 이루어나가는 사람들의 힘과 가치가 인정받는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당연히 서로 존중도 하게 될 것이고, 더 깊은 이해도 있을 것이고, 절로 따뜻한 사회가 될 거라고 봅니다."(87쪽)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면서 더욱더 널리 알려진 가수 이은미 씨의 바람입니다. 사실 그녀는 가요계 문제에 쓴 소리를 아끼지 않고 작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는 대선배로 불리는 존재라고 하죠. 최근에는 파업 콘서트나 집회 장소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고요.

그런 그녀가 '어쩌면 퍼스트레이디'가 될 김정숙 씨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였습니다. '무형의 가치', 바로 그것이었죠. 왜 그랬을까요? 어쩌면 그녀 스스로 음반 시장의 제도와 시스템에 한계를 느낀 때문이 아닐까요? 그와는 달리, 앞으로는 누구나가 자신만의 음악을 내 놓고, 자신만의 가치와 장점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그런 미래 세대를 꿈꾸었겠죠.

"전 사모님이 이런 말씀 하시는 게 좋아요. 거창한 얘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요. 다른 분들을 만날 때도 이렇게 하세요.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얘기, 요즘의 심리적 '멘붕' 상태도 그대로 얘기하세요. 인터뷰라는 게 상대방의 속을 들여다보는 거잖아요. 자기 속을 먼저 안 까놓는 사람에게 나도 내 속 안 까요. 저쪽에서 다리 꼬고 있으면 나도 다리 꼬아요. 누구나 그래요. 저한테 지금 전혀 인터뷰 내용과 관계없는 불따구 처진 얘기를 하시잖아요.(웃음) 사람들은 그럴 때 무장해제 돼요."(120쪽)

인터뷰어의 달인인 김제동 씨가 한 이야기입니다. 뭔가 그럴 듯한 레퍼토리와 질문지 문구를 다 준비해왔지만, 김정숙 씨는 그를 만나는 동안에 꼭 사위를 삼고 싶었다고 하죠. 그 때문인지 대화 내용에도 없는 이야기들이 불쑥 끼어들게 되었다고 하죠. 그러나 그런 자연스러움, 그런 솔직담백함이야말로 사람을 만나는데 있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합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진정성은 바로 그로부터 시작된다고 하니 말이죠.

이 책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앞으로 국민들은 대통령을 바라고서 자기 살림살이를 내다보지는 않는다고 말이죠. 대통령이 나서서 경제를 일으키고 가계 살림을 책임져 줄 것이라고 바라봤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말입니다. 이제는 국민들과 함께 고통을 짊어지고, 함께 웃고 함께 울 수 있는, 그런 대통령을 원한다고 말이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그런 대통령을 말이죠.

그래서 그랬을까요? 이 책 끄트머리에 실려 있는 '닫는 글'이 참 인상적입니다. 꼭지 제목이 '여기 또 있네? 여기 또 왔네!'입니다. 이른바 문재인 씨와 김정숙 씨의 연애담 이야기죠. 그런데 두 사람의 연애담이라는 게 1980년 5월의 시위 대열에 함께 했던 만남이라고 하죠. 그만큼 두 사람은 고통도 괴로움도 함께 짊어지고 시대를 헤쳐 온 셈이겠죠. 오늘 우리시대의 대통령도 바로 그런 대통령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바로 그런 대통령의 아내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정숙씨, 세상과 바람나다 - 어쩌면 퍼스트레이디

김정숙 지음,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2012)


태그:#김정숙 , #〈정숙씨 세상과 바람나다.〉, #문재인 후보, #김제동 씨, #이은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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