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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든다'는 말이 있다. 대체로 긍정적인 뜻으로 쓰는 말이다. 그렇다면 철들지 않는 건 나쁜 일일까? 어린 아이에게 '철들라'는 주문을 하지는 않는다. 철들지 않는 게 아이들에게 괜찮은 것이라면 그 자체로 나쁜 건 아닐 터이다. 그렇다면 왜 어른은 철이 들어야 할까.

어른이 되는 건 많은 것을 얻으면서 더 많은 것을 잃는 과정이다. 여기서 잃는 것 중 하나가 '철들지 않을 권리'다. 철든다는 건 현실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고, 그에 맞추어 꿈의 크기를 조절하는 것이다. 결국 철든다는 건 꿈의 크기를 줄이는 일이다. 우리는 꿈을 포기하며 어른이 된다. 나이가 들어서도 어린 시절의 꿈을 간직한 사람을 향해 우리는 말한다.

"철 좀 들어라."

별 헤는 아이
 별 헤는 아이
ⓒ 한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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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아침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만물이 사랑스러웠다. 주위 모든 사람을 향해 웃고 싶고, 세상 모두를 안아주고 싶었다. 다툰 동무와는 잘잘못을 가리지 않고 사과의 손을 내밀고 싶었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아침이 줄기 시작했고, 마침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른이 된 것이다.

어른 중 어른이 된 후 깨닫게 된 건, 자신을 괴롭히는 많은 문제들이 '철 드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먼저 사과하지 못하는 자존심도, 쉽게 나누지 못하는 탐욕도. 언제부턴가 '동심의 회복'이 그저 천진했던 과거로 잠시 여행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를 고통 속에 몰아넣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야말로 철없는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 문제를 설명하는 여러 이론을 공부한 후 대학강단에 서면서 이런 생각은 더 분명해졌다. 도무지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얽힌 사회문제들도 대부분 단순한 원인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도저히 바뀔 것 같지 같은 구조적 문제도 탐욕과 몰이해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동심으로의 휴가'를 떠난 이유

사람들은 말한다. 한두 명이 사회를 바꿀 수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사회는 개인들의 집합이기에, 한두 사람이 바뀌면 사회는 한두 사람 몫만큼 바뀐 것이 된다. 그리고 사회는 관계이기에, 한두 사람의 변화는 그들이 속한 관계를 변화시켜 더 많은 사람을 바꾸게 되고, 사회는 새로 바뀐 사람들의 수만큼 더 바뀌게 된다. 한두 사람이 사회를 바꿀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내가 '특별한 휴가'를 계획한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평생 철들기를 거부한 사람 만나, 비결과 지혜를 배우고 싶었다. 세상을 불필요하게 복잡한 것으로 여기도록 만들어 변화를 포기하도록 하는 '어른의 시각'을 벗어 던지고 싶었던 것이다. 어른아이의 눈에 비친 단순한 세상의 모습에서 변화의 희망을 더 뚜렷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날개 돋은 호랑이
 날개 돋은 호랑이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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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은 첫 '어른아이'는 정해져 있었다. 나무인형 조각가 한명철이다. 그가 2009년에 연 '유니세프와 함께 하는<웃는나무전>' 보도를 뒤늦게 본 후 꼭 만나고 싶던 작가다. '기저귀 가방을 멘 호랑이' '산을 지고 가는 기린', '벌집을 건드린 유니콘' 등 그의 모든 작품은 60대 작가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천진한 시선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측에 만나고 싶다는 뜻을 조심스레 전했다. 이럴 때마다 우리 어른들은 상처 받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우리는 늘 거절당하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가. 곧바로 좋다는 대답이 왔다. 본래 아이에게 경계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친구맺기에 지위, 학벌, 수입 등 전제 조건이 붙기 시작하는 건 철이 들면서 아닌가.

8월의 삼복더위가 콘크리트마저 녹일 것 같았던 주말, 작가가 살고 있는 충북 괴산군 칠성면 도정리를 향해 떠났다. 잘 알려진 유원지 쌍곡계곡이 있어 여름이면 관광객들로 붐비지만, 괴산은 여전히 때묻지 않은 자연과 상업화에 찌들지 않은 소박한 마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도정리는 산에 둘러싸인 분지로, 여러 계곡 물이 모인 달천이 높지 않은 산비탈을 돌아 흐른다. 작가의 집은 바로 이 냇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자연의 모습을 발굴하는 작가

충북 괴산군 칠성면에 있는 작가의 집
 충북 괴산군 칠성면에 있는 작가의 집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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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열린 사립문이 낯선 객을 맞았다. 칠하지 않은 소박한 나무 울타리 위로 능소화가 주황 물감을 막 짜놓은 듯 빛을 발하고, 열린 문 사이로 꽃과 어울리는 연노랑 색 목조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가는 표정만큼 편안해 보이는 노란 색 셔츠를 입고 필자를 반겼다. 황토로 직접 옷에 물을 들였다고 했다. 그는 자연속에 살며, 자연을 입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 이야기를 인사 삼아 대화를 시작했다. 한명철 작가는 "이곳은 밤에 추울 정도로 서늘해서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고 답한다. 그는 정말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그가 명함을 건낸다. 이름 옆에 그의 서명인 낙타 그림이 그려져 있다. '꿈꾸는 낙타'. 낙타의 등 위에는 해와 달이 함께 떠 있다. 밤이나 낮이나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뜻일까.

명함을 뒤집어 본다. 손으로 그린 '약도'가 있다. '우리집'을 빼면 건물은 세 개 뿐이다. '면사무소', '칠성교회', '동생집'. 어린 시절, 우리도 이런 지도를 그려보지 않았던가. 길 찾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되는 마음의 지도.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우리집'을 그려 넣는 작가를 나는 만나고 있었다.

작가 명함 뒤에 그려진 '우리집 약도'
 작가 명함 뒤에 그려진 '우리집 약도'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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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철 작가는 재료의 본래 모습을 최대한 살리려고 애쓴다. 때문에 모양을 '만든다'기보다 '되찾아 준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굽은 나뭇가지는 인형 팔꿈치나 무릎이 되고, 나무 줄기에 붙은 옹이는 동물의 눈두덩이가 된다. 죽은 가지가 떨어져 나간 상처에는 앙증맞은 풍선초 씨앗이 눈알로 박힌다. 이 씨앗 위에 자연이 그려 준 하트모양 무늬는 인형에게 생기를 주는 눈동자가 된다.

그에게는 자연은 거대한 재료 창고였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는 공원을 산책하다가 나무 밑에 열매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밤톨처럼 진한 갈색에, 모양은 더 둥근 탐스런 열매였다. 사람들은 이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열매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독이 있어 동물과 벌레조차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 마로니에 열매였다.

작가는 이 쓸모 없는 열매를 인형의 머리로 즐겨 쓴다. 껍질이 단단하고 광택이 있는 이 열매에는 여러 형태의 엷은 주름이 있고, 이 주름은 인형 얼굴에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 준다. 열매의 독은 천연 살충제 역할을 해 작품을 오래 보존해 준다. 작가는 자연을 자신의 의지 속으로 끌어들이기보다 자연의 의지 속으로 들어가는 편을 택한다.

우리 모두 불완전하기에 특별하다

한명철 작가는 버려진 나무를 재료로 쓰며, 자연 본래의 형태를 최대한 살리며 작업한다. 옹이는 동물의 눈두덩이로, 풍선초 씨앗은 눈알로, 굽은 가지는 관절로 사용되었다. 두번째 사진 왼쪽에 놓인 작품은 '손톱을 감춘 호랑이.
 한명철 작가는 버려진 나무를 재료로 쓰며, 자연 본래의 형태를 최대한 살리며 작업한다. 옹이는 동물의 눈두덩이로, 풍선초 씨앗은 눈알로, 굽은 가지는 관절로 사용되었다. 두번째 사진 왼쪽에 놓인 작품은 '손톱을 감춘 호랑이.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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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주재료로 쓰는 이유가 있느냐'고 묻자, 주변에서 흔히 널린 재료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그는 작품을 위해 나무를 베지 않는다. 목재를 가게에서 사 오지도 않는다. 오직 버려진 나무만 사용한다. 비바람이나 사람에 의해 꺾이거나 베어져 땅바닥에서 뒹구는 나무들은 작가의 손에 의해 다시 생명을 얻고, 이렇게 태어난 작품은 사람들 입가에 웃음을 되돌려 주는 것으로 보답한다. 이 동심의 작가는 '지속 가능한 성장' 같은 말을 쓰지 않고도 작품에서, 삶에서, 같은 신념을 구현하고 있었다.

한명철 작가의 작품에는 상식을 뛰어 넘는 재치가 있다. 호랑이는 뭇 동물과 사람에게 위협이 되기는커녕, 사지를 뻗은 채 졸린 강아지처럼 늘어져 있거나 바보처럼 웃고 있고, 천사가 두 손을 높이 든 채 뽐내는 머리 뒤 찬란한 광륜은 녹슨 깡통뚜껑이며, '수세미 머리'를 한 소년의 머리털은 정말 수세미로 되어 있다.

천사 견습생
 천사 견습생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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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작가의 위트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유머감각이 아니라, 약함과 불완전함을 보듬는 따뜻한 시선이다. 그의 모든 인형은 하나같이 '빈 구석'을 지니고 있다. 아직 한 개 밖에 없는 날개로 열심히 날아보려고 애쓰는 '천사 견습생'을 보자. 몸에 비해 턱없이 작은 날개를 퍼득이는 이 천사는 하늘로 오르기는커녕, 바닥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작가는 그 부족함을 조롱하며 웃음을 유발하지도, 그 허술함을 동정해서 연민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그는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찬양한다. 한명철 작가가 새기는 캐릭터는 불완전하기에 특별하고, 불완전하기에 사랑스럽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 말이다.

텔레비전에 완벽한 외모들만 등장하고, 몸에 칼을 대서라도 그 완벽함을 얻으라고 권하는 이 사회를 향해, 한명철의 작품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그 모습 그대로가 좋고, 태어난 모습 그대로 완전해요."

우리 모두는 삶을 깎는 예술가

한명철 작가는 조각보다 삶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었다. 뜰에 심은 야채며 과일, 자신을 위해 차리는 밥상 이야기였다. 일상의 소소함을 말하는 그는 작품 이야기를 할 때만큼 진지하고 행복했다.

작업실에서 작업중인 한명철 작가. 머리맡에 공중에 매달린 작품이 보인다.
 작업실에서 작업중인 한명철 작가. 머리맡에 공중에 매달린 작품이 보인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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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끼 먹는 것에도 정성이 필요하지요. 밥을 차린 후 즐겁게 먹고, 설거지를 하고, 차 한 잔 마시고, 이 모든 과정이 마무리 되어야만 '밥 한 끼 먹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가사는 정말 위대한 일이에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삶은 그리 대단한 일들로 이뤄져 있지 않다. 수저로 뜨는 밥 한끼, 친구에게 건네는 말 한 마디, 낯선 사람을 대하는 표정 하나를 지을 때 우리는 삶의 한 켠을 조각칼로 파내고 있는 것이다. 한명철 작가에게 나무인형은 삶이라는 커다란 예술활동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두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눈 후 밖으로 나왔다. 저녁 햇살이 울타리의 능소화를 더 붉게 만들고 있었다. 대문을 나서는 데 한명철 작가가 뛰어 나오며 나를 부른다. 활짝 웃으며 취재수첩을 건넨다. 작품과 이야기에 빠져 취재수첩을 놓고 나온 것이다.

작가의 뒷모습이 집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해 지는 시간. 낙타는 그 시간에도 꿈을 꾸고 있었다. 돌아오는 동쪽 하늘에 달이 낮게 걸려 있었다. 그 달을 보며, 나도 꿈을 꾸기 시작했다.

저녁 빛이 든 작가의 작업실
 저녁 빛이 든 작가의 작업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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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한명철 작가는 10월13일부터 두 달간 서울 동숭동 꼭두박물관에서 초대전을 갖는다.



태그:#한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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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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