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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으로 부터 축하화분을 받은 이진희씨, 부모님의 진심어린 정감이 물씬 풍긴다.
 부모님으로 부터 축하화분을 받은 이진희씨, 부모님의 진심어린 정감이 물씬 풍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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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강원도 화천군에는 큰 규모의 공무원 인사발령이 있었다. 30여 퍼센트에 이르는 직원들이 자리를 옮겼으니 대규모의 인사라는 표현이 맞는 말이다. 신규직원을 비롯해 부서를 옮기게 된 사람 등 인사발령 이후 뒷이야기는 참으로 많다. 누구는 왜 어느 부서로 갔고, 누구는 왜 진급에서 누락되었고, 모두다 인사에 대한 정통한 평가위원들이 된다.

인사발령이 있는 날은 지역 내 꽃집과 식당이 '대박' 나는 날이다. 각 사무실은 평소 친분이 있던 사람들이 인사발령자에게 보낸 화분 내지는 꽃다발로 넘치고, 각급 식당에는 새로 온 사람들에 대한 환영회, 타 부서로 가는 이들을 위한 송별회 등으로 지역 공직사회의 인사발령은 그야말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몫을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 많은 축하화분 중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발령을 축하해~ 엄마 아빠가"

신규직원인 이진희씨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화분.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과 정이 묻어나는 축하글귀. 늘 보아온 '축 영전', '축 진급' 등의 틀에 박힌 내용보다 딸의 시험공부기간에 대한 노고 또 자식이 공직자로 첫발을 내디딘 것에 대한 긍지를 한마디로 함축한 글귀라는 생각이다.

"넌 성격이 좀 별나니까 상급자들에게 대들지 말고 잘 지내."

1989년 내가 처음 강원도 정선군으로 발령을 받던 날. 어머님은 내게 딱 한 말씀 하셨다. 그동안 고생했다거나 발령을 축하한다는 말씀도 아니고 '상급자에게 대들지 말란다.' 그게 어머님만의 사랑 표현이었다.

"과거에는 조직 관리부서, 즉 행정, 서무, 예산, 경리, 기획부서 등 이들 부서가 소위 끝발 있는 부서로 취급 되었는데, 요즘은 현장에서 뛰는 사업부서가 인정을 받는 추세입니다. 그리고 얼마 동안 직원들의 얼굴과 분위기를 익히도록 하세요."

주무계장인 내 입장에서 우리과로 발령을 받은 직원들에게 한 말이다. 신규발령 받은 직원들의 고충을 안다. 모두 바빠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데 나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뭐 도와줄 것이 없느냐고 물어도 대꾸도 없다. 그러고는 딱 한마디 한다. 퇴근 시간이 되었으니까 집에 가라고….

공직생활 시작할 때 날 달래준 '누룽지 맛'

공직생활을 처음 시작할때 6개월만에 제대로 된 보직을 받았다.
 공직생활을 처음 시작할때 6개월만에 제대로 된 보직을 받았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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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규직원이었을 때는 어땠나. 공무원 시험 준비를 4년간 했다. '쟤는 얼마나 대단한 공부를 하기에 더운 여름에 제 어머니는 밭에 나가 저렇게 일을 하는데 공부를 한답시고 방에 처박혀 있을까'라고 마을사람들이 생각할 것 같은 피해의식. 그런데 그 녀석이 어느 날 지역 면사무소에 앉아있다면 그들이 나를 비웃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가자. 공무원 시험공고를 쭉 보니 태백시가 40명을 뽑는단다. 그러나 태백시는 뉴스에 보아온 것처럼 탄광촌이다. 매일 광부들 농성에 대한 기사뿐이다. 그런데 농촌 마을이라고 생각했던 정선군에서도 40명을 뽑았다. 시험에 합격하고 이사발령이 난 곳은 고한읍사무소. 당시엔 이곳 고한읍이 전국 최고로 꼽히는 탄광촌이었다. 농촌마을인줄 알고 응시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심심하실테니 이거나 보세요."

고한읍사무소 재무계로 발령을 받은 내게 차석이란 분이 두툼한 까만 표지의 책자를 건넨다. 지방세법. 당시엔 인터넷도 없었다. 그러니 그거라도 볼 수밖에…

다른 직원들은 바빠 죽겠다며 이리저리 뛰어다는데, 난 멍청하게 지방세법 책만 보고 있어야했다. 뭘 물어볼라치면 바쁘다는 듯 인상부터 쓰는 상급 직원들의 표정. 그런데 드디어 한 달 만에 내게도 임무가 주어졌다.

아침, 점심, 저녁밥을 짓는 일. 당시 광부들의 농성 진압을 위해 2000여 명의 전경들이 읍사무소 대회의실에 임시로 숙소를 정하고 장기간 기거했다. 내게 주어진 일은 그 사람들의 밥을 해 주는 역할.

공무원 때려치우자. 난 공무원이란 직업이 화이트칼라, 즉 넥타이는 매지 않더라도 깔끔한 와이셔츠에 정장 차림으로 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반바지에 새벽 일찍 출근해 젊은 전경 아저씨들 밥을 해 줘야 하는 것이 내 일이다. 이런 것을 어머님이 아시면, '엄마 싫다고 멀리 가더니 잘됐다'고 생각 하실까봐 '여기 정말 끝내준다'고 전화로 뻥을 쳤다. 어떻게 '나 갑자기 식모가 되었어요'라는 말을 하겠는가!

하지만 전경들의 식사를 위해 가마솥을 걸어놓고 나무로 불을 땐 후 밥을 퍼내면 솥바닥의 누룽지는 정말 맛있었다. 그때 느낀 건 '역시 밥은 가마솥에 나무로 지은 밥이 최고다'였다. 그렇게 누룽지 맛에 매료되어 6개월을 보냈다.

타 지역 출신은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다

직장인들 최고의 바람은 진급이다. 2년이 되자, 진급자에 대한 인사발령이 있었다. 9급에서 8급으로의 진급자 명단. 아무리 봐도 내 이름이 없다. 대상자 40명 중에서 36명이 진급하고 4명이 누락된 거다. 왜 내가 빠졌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누락된 4명 명단을 보니 답이 나왔다. 그곳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 그게 정답이었다.

지금도 그런 후진적 인사를 한다는 지자체가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과거에는 그런 것들이 비일비재했다. 아무리 일류대학을 나오면 뭐하나. 오직 그곳에서 소위 명문(?)이라고 하는 시골 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으면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 학교출신들이 요직에 포진해 있고, 자신들의 후배를 양성하는 체제로 이어간다. 타지에서 온 사람의 머리 또는 기획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들은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도 이런 지자체가 있다면, 이같은 결과는 조직원들의 와해는 물론 스스로 자멸하는 지름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공무원 신규직원 분들, '공직자=화이트칼라' 그런 환상 버려라! 모든 지방공무원들은 비가 많이 내리면 밤 새워 수해복구를 해야 하고, 눈이 내리면 그 눈을 치우는 몫 또한 공무원들의 일이다. 산불이 나면 어떤가! 밤새워 불을 꺼야 하는 것도 당신들의 몫이다.

지난 5월 우리부서의 계획서. 차이는 있겠지만, 토요일과 일요일이 더 바쁜 부서도 있다.
 지난 5월 우리부서의 계획서. 차이는 있겠지만, 토요일과 일요일이 더 바쁜 부서도 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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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생활 얼마나 하셨어요?"

어떤 계획서 작성 시, 생각이 나지 않으면 직원들에게 묻는 말이다. "5년 좀 넘었는데요." 라고 말하는 직원에게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그 머리에서의 이야기는 뻔하다. 법 따지고, 문제가 생겼을 경우 대처에 대해서도 말을 하는 녀석들이 있다. 고정화되어 이미 틀이 형성된 그들의 생각. 어쩌면 그렇게 철저하게 공무원 스타일로 두뇌가 만들어져 가는지 모를 일이다.

문제는 상급자들에게 있다.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왜 그걸 니가 해" 내지는 "니가 군수야? 왜 오버를 해?", "무조건 안 된다고 하란 말이야" 등등 신규직원들의 아이디어나 발전적인 생각을 묵살하는 조직 분위기.

신규직원들의 아이디어는 다소 엉뚱할 수 있다. 그건 그들의 시각이고 생각이다. 존중해 주자. 그들의 엉뚱한 생각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것이 (상급자들 내지는 관리자들) 당신들이 만든 틀에 맞지 않는다고 무시하지 말기를 바란다.


태그:#화천, #화천군, #공무원, #신규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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