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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SBS드라마 <싸인>(2011.01.05~2011.03.10)에서 법의학자 윤지훈(박신양 분)이 고다경 (김아중 분)에게 끊임없이 강조했던 말이다. 살아있는 사람은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거짓말을 하지만 시신은 자신이 죽기 전 상황을 흔적으로 남기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37년 전 오늘(17일) 광복군 출신으로서 박정희 독재 정권에 항거했던 장준하 선생이 경기도 포천시(당시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489m)에 올랐다가 높이 14m의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숨졌다. 사인(死因)은 '실족사'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신뢰하지 않았다.

의문투성이었던 장준하 선생 죽음, 37년만에 유골 함몰 흔적 발견

그 때는 정론지였던 <동아일보>는 장준하 선생 의문사 이틀 후 19일자 <장준하씨 사인에 의문점> 제목 기사에서 "검찰은 김 씨가 65년부터 3년 동안 신민당 서울 제4지구당 총무로 있었는데 사고 당일 등산길 버스 안에서 장 씨와 우연히 만났다고 진술한 점과 김 씨가 사고 직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군부대에 신고한 점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검찰도 경찰 발표에 의문점을 가졌다.

"①추락지점은 산이 너무 험해 젊은 등산가들도 마음대로 오르내리지 못하는 경사 75도 길이 12m의 가파른 절벽인데 장씨 혼자서 아무런 장비없이 내려오려 한점 ②사고현장 벼랑위에 오를 때는 멀리 등산코스를 돌아 올라갔는데 내려올 때는 등산 코스도 아닌 벼랑으로 내려오려한점 ③사고직후 김씨(최초목격자)가 장씨 시계를 차고 있던 점 등이다"-1975.08.19 <동아일보> 장준하씨 사인에 의문점 

1975년 8월 19일자 <동아일보>, 장준하 선생 사인에 의문점을 제기하고 있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1975년 8월 19일자 <동아일보>, 장준하 선생 사인에 의문점을 제기하고 있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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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특히.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그 동안 장 선생가 공권력에 의한 타살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1993년 3월 민주당 '장준하 선생 사인 규명 진상조사위원회'와 2004년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가 죽음에 대한 진실 찾기에 나섰지만, 공권력이 타살했다는 완벽한 실체는 밝혀내지 못했다.

"시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37년만에 장 선생 유골에서 '타살' 흔적이 발견됐다. <오마이뉴스>와 여러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장준하 기념사업회는 지난 1일 장 선생의 유골을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 장준하 추모공원으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법의학 교수 및 장 선생 장남 장호권씨 등이 참여한 가운데 유골 검사를 실시했는데 오른쪽 귀 뒤쪽 두개골이 지름 6cm 크기 원형으로 함몰돼 있고 머리뼈에 금이 간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지난 1일 검사한 고 장준하 선생의 유골. 오른쪽 귀 뒤쪽 두개골에 원형으로 함몰된 흔적이 있다.
 지난 1일 검사한 고 장준하 선생의 유골. 오른쪽 귀 뒤쪽 두개골에 원형으로 함몰된 흔적이 있다.
ⓒ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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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영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당시 정황상 외부 가격에 의한 사망이라고 확신한다"며 "국가 차원에서 더욱 정밀한 검사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동안 제기됐던 공권력에 의한 타살이라는 주장이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선 것이다.

문제는 장준하 선생이 숨진 때가 박정희 폭압정권이 정점을 향하던 1975년이라는 점이다. 광복군 출신이었던 장준하 선생은 만주군 장교 출신이자, 민주헌정을 유린한 박정희와 함께 할 수 없었다.

장준하 "너는(박정희) 만주군 장교 출신"

장 선생은 언젠가 박정희를 만난 자리에서 "일제가 그냥 계속됐다면 너는 만주군 장교로서 독립투사들에 대한 살육을 계속했을 것이 아닌가"라는 말로 직격탄을 날렸다. 황군장교 출신 박정희에게는 '비수'였을 것이다. <오마이뉴스>블로그에 '김삼웅 인물열전'을 연재 중인 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주필, 제7대 독립기념관장을 지낸 김삼웅 선생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장준하의 박정희 증오 감정은, 사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일왕에게 충성을 다짐하면서 일본군인의 길을 충직하게 걸었던, 그의 과거 행적에 대한 증오이고 비판이었다.

"악한 행위보다 악한 존재는 더욱 사악한 것이다. 허언자의 입에서 아무리 미화된 현실의 말이 나온데도 역시 그것은 거짓이다. 인간을 적대시 하는 악인의 형제애적인 행위도 역시 증오가 될 뿐이다. 따라서 민족애와 정의의 탈을 쓰고 국민을 현혹케 하며 허위와 잔인의 패덕을 일삼는 독재자의 존재는 없애야 한다고 그는 역설했다." -2009.01.05 <김삼웅의 인물열전>'[96회] "박정희는 밀수왕초다"

장 선생은 또 박정희가 1972년 10월, '유신쿠데타'와 1974년 1월 긴급조치 1호를 시작으로 대한민국을 '병영국가'로 통치하자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조국 해방 30년을 맞은 1975년 1월 직접 박정희에게 편지를 썼다.

국헌을 준수한다고 서약한 귀하 스스로가 그 선서를 헌신짝같이 버리고, 헌법기관의 권능을 정지시키고, 헌법제정 권력의 주체인 국민을 강압적인 계엄하에 묶어놓고, '국민투표'라는 요식행위를 통해 제정한 소위 '유신헌법'으로써 명실상부하게 귀하의 일인독재 체제만을 확립시켰습니다. 이렇게 하여 통일에의 부푼 국민의 기대는 민주헌정의 파괴와 일인독재라는 참담한 결과로 둔갑해 버렸습니다.

이런 편지를 쓴 8개월 후 장준하는 의문의 죽임을 당한 것이다. 1975년 8월이라면 박정희 폭압정권이 정점을 향하던 1975년이라는 점이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이 15일 "진상 규명과 더불어 유신독재의 정치적 계승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의 사과와 태도 변화를 촉구한다"면서 "박 후보가 이미 2007년 대선후보 출마 당시 장준하 선생 유족과의 화해 노력 등을 했지만 최근 장준하 선생이 목숨을 걸고 싸워온 5·16쿠데타 세력과 유신독재에 대한 태도로 볼 때 당시의 태도가 진정성이 결여된 것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 이유가 단순한 '정치공세'가 아니라 설득력이 있는 이유다.

'어물쩍' 박근혜 "진상조사위 조사, 기록 봤다"

그런데 '5.16 군사반란'을 "구국의 혁명", "불가피한 선택", "대한민국 초석"으로 규정했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이번에도 '이미 끝난 일'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박 후보는 17일  "진상조사위원회에서 현장, 목격자에 대한 조사가 그동안 이뤄지지 않았나"며 "그런 기록들이 있는 것을 (나도) 봤다"고 말했다고 <오마이뉴스>는 보도했다.

그 동안 박 후보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행한 일들 중 민주헌정을 유린한 것에 대한 비판은 반박하거나 어물쩍 넘어갔다. 하지만 경제성장 등 국민 뇌리에 각인된 것은 강조했다.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 역시 박 후보에게는 진실 여부에 따라 뼈아픈 타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유족과 장준하 기념사업회 그리고 야당과 시민들이 철저한 진실규명을 촉구하기 전에 박 후보가 먼저 나서서 진실을 밝히기를 요구해야 한다. 그게 박 후보를 위해서도 훨씬 낫다. 비록 1975년 8월이 박 후보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고, 장준하 선생 죽음에 박정희 정권이 직접 개입한 것으로 밝혀져도 박 후보가 직접 개입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판은 받아도 '대선후보 사퇴'같은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진상조사위가 조사를 했다면서 진상규명 촉구를 정치공세로 여기며 넘어가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 박정희와 자신이 어머니를 대신해 정치적 활동을 했던 때에 일어났던 국가기관에 의한 민주인사 타살 의혹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진실규명에 나서야 한다. 그게 민주공화국 대통령이 되려는 정치인으로서 기본자세다. 국가 공권력이 민주시민을 죽인 것을 어물쩍 넘어간다면 또 다시 이런 일이 반복 될 수 있다.

박근혜 후보가 그 진실 찾기에 앞장서라

앞에서 인용했던 장준하 선생이 박정희에게 보낸 편지는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이 지구상에는 수백 억의 인간이 살다 갔습니다. 그 중에 '가장'이 되었던 사람들은 누구나 '내가 죽으면 내 집이 어찌 되겠는가'라는 걱정을 안고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사회는 발전하여 왔습니다. 우리들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박정희에게 사퇴를 촉구한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는 사퇴는 커녕 5월 13일 긴급조치 9호를 선포한다. 유신쿠데타가 만든 '헌법'을 비방ㆍ반대ㆍ개정주장 및 긴급조치 9호에 대한 그 어떤 비판도 금했다. 장준하 선생 그해 8월 17일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37년 만에 두개골 함몰 흔적이 발견됐다. 과연 장준하 선생은 공권력에 의한 타살인가? 아니면 실족사인가? 박근혜 후보가 그 진실 찾기에 앞장서라. 그게 아버지 시대 일어났던 수많은 민주헌정 유린에 대한 최소한의 사죄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장준하,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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