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화천 자전거 대여소에서 일하는 박분이 씨와 한림성심대 문인영 양.
 화천 자전거 대여소에서 일하는 박분이 씨와 한림성심대 문인영 양.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화천군청 관광과 계장이라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만..."
"붕어섬 입구 자전거 대여소에 일하시는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아세요?"
"아니요. 누가 근무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무슨 일 있으셨어요?"
"그렇게 훌륭하신 분들도 모르는 분이 어떻게 관광과 계장일 수 있습니까. 직무유기 아니가요?"

화천 자전거 대여소, 1회 이용시 1만원을 내면 1만원권 상품권을 교환해 주니까 공짜나 마찬가지입니다.
 화천 자전거 대여소, 1회 이용시 1만원을 내면 1만원권 상품권을 교환해 주니까 공짜나 마찬가지입니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지난 4일. 여름휴가를 화천 쪽배축제에 맞춰 다녀왔습니다. 기사 앞머리에 나온 대화는 한 지인의 연락을 받고 저녁식사 자리에서 나눴던 것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나를 초청한 지인과 나눈 대화가 아니라 그와 함께 온 (처음 만난) 어느 할아버지와 나눈 이야기입니다.

'자전거 대여 업무가 군청 어느 부서의 일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관광과 소속이라는 이유로 직무유기까지 운운한 건 지나친 실례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자리를 박차고 나갈까라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왜 이 사람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아야 했습니다.

할아버지 말씀은 이랬습니다. 그 할아버지의 가족 중에는 지체부자유자인 손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갈 때나 밖에 나갈 때면 늘 옆에 보호자가 있어야 했지요. 그래서 이 아이는 늘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이를 가엾게 여긴 할아버지는 화천여행에 손자를 데리고 갔습니다.

화천에 도착하자마자, 시골에 온 것이 마냥 신난 손자는 붕어섬 입구의 자전거 대여소를 가리키며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졸랐답니다. 섭씨 36도가 넘는 날씨. 할아버지는 손자를 말려봤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할아버지는 '아이 혼자 자전거를 체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자전거를 한 대를 빌렸습니다.

이를 본 자전거 대여소에서 일하는 박분이(49·화천읍 거주)씨는 '아이가 길을 잃거나 차량이 다니는 일반도로로 나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전거를 한대 공짜로 빌려 드릴 테니 할아버지가 같이 동행해 주시면 어떠냐'고 제의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우리 손자, 이 녀석은 약간의 장애는 있지만, 판단력이 좋아서 어렵지 않게 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자전거 코스가 타원형으로 형성돼 있고, 손자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동행하기를 거절했습니다.

손자의 벌게진 얼굴, 그래도 다행이었습니다

북한강변 자전거길 출발지점
 북한강변 자전거길 출발지점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박분이씨로부터 손자가 돌아오는 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는 설명을 듣고, 할아버지는 읍내에서 저녁에 필요한 간식거리와 손자를 위한 음료를 사러 갔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아이를 만나기로 한 자전거 대여소 밖에 앉아 기다렸지요.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저 멀리 손자가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뒤를 보니 1시간 전에 자전거 대여소에서 본 여학생(문인영·한림성심대)이 10여 미터의 거리를 두고 따라오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날씨도 덥고, 혹시 아이가 길을 잃을지 몰라,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물을 들려서 손자 몰래 뒤따르게 했어요."

박분이씨는 마치 잘못을 한 사람처럼 할아버지께 이렇게 해명했습니다. 도착한 손자와 뒤따라 온 여학생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두 사람의 얼굴은 섭씨 36도의 뜨거운 햇볕 아래 벌겋게 데어 있었다 합니다.

"관광과에 계시니까 더 잘 아실 테지만, 이런 서비스가 관광객을 감동시키는 겁니다. 내가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면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만나는 사람마다 할 거예요."

할아버지는 이어 "내 80 평생을 살아오면서 이런 서비스를 받아 본 경우는 처음이고 화천에 와서 다른 어떤 불편한 상황을 겪더라도 이곳 화천은 세상에서 제일 친절한 동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라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다음날 붕어섬 입구 자전거 대여소를 찾은 나는 어제 혹시 이런저런 일이 있었느냐고 묻고,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박분이씨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며 취재를 극구 사양하기에 간단하게 나눈 대화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친절에 감사한다는 말에 "당연한 거 아닌가요?"

화천 북한강 자전거 100리길, 강변을 끼고 커다란 타원형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화천 북한강 자전거 100리길, 강변을 끼고 커다란 타원형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 아이의 보호를 위해 할아버지께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 드리겠다고 말씀하신 게 인상에 남는 것 같습니다.
"화천군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자전거를 빌리는데 1만 원을 받고 1만 원권 상품권을 내 드리고 있지만, 아이의 안전이 우선이잖아요. 그래서 아이의 보호차원에서 그렇게 제안한 것이었고, (돈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해) 군에서 뭐라고 한다면, 내 돈을 대신 내 드릴 수도 있습니다." 

- 아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요.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요. 아르바이트 학생을 뒤따르게 했다는 세심한 배려도 아울러 감사드립니다.
"내가 직접 따라갈까 하다가 자전거를 대여해 줄 사람은 남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아르바이트 학생을 가리키며) 문인영 학생에게 물을 들게 해 보냈는데, 지금도 미안해 죽겠어요."

- (문인영 학생을 향해) 그 더위에 아주머님께서 뒤따라가라고 말할 때 솔직히 나 같으면 안 간다고 했을 텐데, '왜 그런 힘든 일을 내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제가 아르바이트를 통한 돈버는 게 목적이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죠. 근데 사회경험이 목적이었어요. 그래서 어제는 너무 덥고 힘들었지만, 착한 일을 했을 때 이런 큰 보람도 있구나 하는 것을 배운 기회였던 거 같아요."

- 아이가 혹시 돌출행동은 하지 않던가요?
"그런 일은 없었어요. 두 갈래 길이 나올 때는 당황해 하는 표정이었어요.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그 아이도 심심할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접근해서 물도 건네주고, 말도 걸어 주니까 아이가 무척 반가워했어요."

36도가 넘는 무더위. 정신지체인 아이를 위한 배려. 자신의 한 일에 대해 당연한 도리라며 오히려 부끄럽다고 말하는 두 사람을 보며, 친절은 백 마디의 말보다 실천이 감동을 주고, 한 사람의 친절한 행위로 인해 지역 전체가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을 박분이씨와 문인영양을 통해 배웠던 기회였습니다.  


태그:#화천, #북한강자전거길, #쪽배축제, #박분이, #문인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밝고 정직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오마이뉴스...10만인 클럽으로 오십시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