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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한 때...쉼표 찍기...
▲ 호박소계곡 즐거운 한 때...쉼표 찍기...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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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올라...
▲ 밀양 백운산 정상에 올라...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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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한 마디로 '그리움 때문'이라고 했던가. 그리움이란 지금 저에게 없는 것, 제가 지니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심리적 갈등이라고 했다. 그것은 끝내 사람을 가만히 앉아 있도록 놓아주질 않는 모양이다. 산은 그것을 쳐다보는 이에게 손짓하고 눈짓하니 말이다.

산은 돌아서면 다시 그리움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옹달샘에 고이기 시작한 물이 찰찰 넘쳐 흐르듯이, 그리움 넘쳐 정수리를 넘어서면 그리움 안고 산으로 간다. 산으로 가는 것은 쉼표를 찍은 행위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속삭임'을 듣는 경청의 시간이다. 산은 홀로 가도 여럿이 가도 언제나 넉넉한 품새를 열어 보인다. 산은 또한 내면 여행이다. 안으로 눈을 돌리는 시간, 내 안에 있는 내가 모르는 길을 답사하는 시간이다.

밀양 백운산, 암릉길을 넘고 넘어서

계곡을 건너며...
▲ 백운산 가는 길... 계곡을 건너며...
ⓒ 포도원등산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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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들이 이어진다. 한 여름 등산은 누가 뭐래도 계곡산행이 최고다. 부산 근교 산들 가운데 계곡산행 할 만한 곳은 대략 금정산 범어사계곡과 해운대 장산, 영축, 신불산을 낀 파래소 폭포계곡, 가지산과 백운산 사이 호박소계곡 등이 있다. 오늘 우리가 만나러 가는 밀양 백운산(해발 885m)이다.

백운산은 암릉미를 자랑하는 산으로 이 일대를 둘러싼 영남 알프스 산군처럼 1천 미터 이상 되진 않지만 만만하게 볼 산이 아니다. 긴장과 아찔아찔한 스릴감을 느낄 수 있고 제법 험한 암릉 능선을 타고 넘는 산인 까닭이다.

산을 좀 탄다하는 사람들, 바위를 즐겨 타는 사람들이 즐겨 타는 산이기도 하다. 백운산은 백운슬랩 훈련장이 산비탈에 있어 현기증 나는 벼랑가를 슬쩍 보면 가파른 암벽에 붙어 있는 바위 타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백운산은 지척에 가지산을 나란히 하고 있고 가지산 백운산 사이 밑자락에는 명주실 한 타래가 들어간다는 호박소계곡이 있어 한 여름 더위를 피해 온 사람들에게 시원함을 선사하고 있다.

드디어 정상을 앞두고...밧줄 타고 오르며...
▲ 백운산 가는 길... 드디어 정상을 앞두고...밧줄 타고 오르며...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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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밀양 백운산(해발 885m)과 호박소계곡을 만나러 갔다. 이날 정기산행에 참가한 회원은 모두 54명. 35인승 버스한대와 승합차 두 대를 나눠 타고 백운산과 호박소계곡으로 출발했다. 여느 산이 그러하듯 백운산 역시 만나러 가는 길도 갈래갈래다. 산행 들머리에서부터 밧줄을 잡고 바위를 타고 오르는 암릉길 타고 가는 길도 있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호젓한 숲길로 이어지는 길도 있다. 이날은 삼양교 옆 가지산도립공원 대형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울창한 숲길로 이어지는 길로 가기로 했다.

몸풀기운동을 하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왼쪽으로 개울물 건너 등산 들머리로 들어섰다. 오른쪽엔 가지산으로 왼쪽은 구룡소폭포가 있는 길로 이어지다가 중간에서 가지산과 백운산 가는 길로 다시 갈라진다. 계곡을 건너 구룡소폭포 쪽으로 향했다. 이제 산행 시작이건만 날도 흐린데다가 습도가 몹시 높은 날이라 몸은 금방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숲길은 나무들로 우거졌고 개울을 끼고 숲길을 걸었다. 경사는 점점 높아지면서 철 계단길이 나오고 급경사 오름길 옆에 구룡소폭포가 나왔다. 구룡소폭포는 물이 떨어진다기보다는 큰 바위를 타고 굽이굽이 흘러내린다는 표현이 딱 알맞을 듯싶다.

밀양 백운산...
 밀양 백운산...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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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던 땀은 온몸도 땀으로 적셨다. 처음엔 땀이 부담스럽고 끈적거려서 불쾌하지만 땀으로 아예 젖어버릴 땐 그것도 어느새 적응이 된다. 그럴 때 이따금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은 얼마나 시원하고 고마운지. 추수 때에 목마름을 해갈해 주는 한 모금의 얼음냉수를 마신듯 마음과 몸이 상쾌해짐을 느낀다.

이제 등산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부터 힘들어서 뒤처지는 일행들이 생겨 그들과 간격을 좁히느라 자주 멈춰 쉬어야 했다. 이번 정기산행 역시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고 청소년들로부터 비롯해서 청, 장년, 중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함께 했다. 이 중에는 왕초보도 있고 노련한 '산 꾼'도 있다. 함께 하는 산행이라 걸음걸음을 맞춰야 하지만 동행이 즐겁다.

등산선교회가 시행하는 등산은 세대와 세대를 초월한 만남이 있어 좋다. 한 가정 안에서도 부모와 자녀가 한 자리에 함께 하는 시간이 짧은 현실이다. 그런데 등산선교회 등산에서는 어린아이서부터 어른들까지 그야말로 세대초월의 만남이 있고 소통이 있다. 한 두 사람이 애들 손잡고 함께 참가했던 산행이 이젠 부모와 함께 등산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 보기가 좋다.

비탈에 서 소나무...
▲ 백운산 비탈에 서 소나무...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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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쓰러져가는 움막 옆을 지나 능선사거리를 만났다. 잠시 휴식 후 다시 걷는 길. 갈수록 경사는 드높아지고 가파른 등산로를 숨차게 올랐다. 이어지는 숲길이지만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급경사 길로 이어졌다.

눈앞에는 경사 높은 오름길만 버티고 있어 앞이 조망되지 않았다. 드디어 지척에 백운산 정상 봉우리가 드러나 보였다. 가파른 바윗길을 올라 보니 눈앞에 버티고 있는 암봉, 밧줄을 의지해 백운산 정상에 발을 디뎠다. 인원이 많은데다 험한 바위를 타고 오르는 구간이라 모두 정상에 올라오기까지 제법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남편이 가져온 보조자일이 백운산 정상 바위를 타고 올라오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밀양 백운산 주변 산들이 칠월의 짙은 녹음에 물들었고 크고 작은 산맥들이 파도처럼 아득히 넘실거렸다. 백운산은 운문산과 가지산 능선 사이 남쪽 밀양 산내면에 위치해 있는 암릉산으로 산 전체가 한 조각 흰 구름처럼 보이는 화강암석으로 돼 있다 해서 백운산이라 불린다. 비오듯 땀을 흘리며 힘들게 올라온 백운산 정상에서 긴 호흡으로 가다듬었다.

하산 길은 왔던 길을 뒤에 두고 바위능선을 타고 암릉길을 넘고 넘어서 간다. 암릉길은 제법 험하고 밧줄 잡고 바위를 오르내리고 철 계단을 타고 가기도 하고 한동안 계속되는 바윗길로 오르내린다.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이 험한 구간을 잘 통과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도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잘 올라왔는데 암릉길인 듯 못 가랴 생각되었다. 드디어 스릴 넘치는 암릉 길을 무사히 통과해 백운산을 내려왔다.

호박소계곡에서 피로를 풀며 쉼표을 찍다

쉼표 찍는 시간...
▲ 호박소 쉼표 찍는 시간...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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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도로를 건너 호박소계곡으로 향했다. 호박소계곡 일대는 주말인데다가 장마도 끝나고 더위는 계속되어서인지 북적이는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어보였다. 물놀이하면서 떠들썩한 젊은이들의 모습들, 래프팅을 즐기듯 튜브를 타고 높은데서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물과 함께 곤두박질치듯 하강하며 소리 지르는 모습들... 여기저기 계곡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환한 물소리보다 사람들 소리다. 비온 뒤 한껏 불어난 계곡 물소리조차도 삼키는 목소리들이었다. 이따금 사람들 목소리에 계곡물소리가 묻혔다가 물소리에 사람들 웃음소리가 묻혔다가를 반복했다.

우리는 호박소계곡에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내려놓고 신발도 벗어놓고 양말도 벗어버리고 무릎 위에까지 바지를 걷어 올리고 계곡 물에 발을 담갔다. 흘러내리는 물에 발을 담그고 있노라니 오늘 산행하느라 힘들었던 모든 피로는 씻은 듯 사라지고 몸도 마음도 가뿐해졌다. 맨 마지막에 오고 있는 일행들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꽤 긴 시간동안 물에서 놀았다.

망중한...
▲ 호박소 망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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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기산행에 참가한 김문훈 목사님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계곡에 발을 담근 채 아이처럼 천진한 표정으로 상념에 잠기기도 하고 대화도 나누기도 하면서 쉼표를 찍고 있었다. 뒤에 오던 사람도 도착했고 우리는 이제 호박소계곡을 뒤로하고 왔던 길로 돌아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했다. 늦은 오후가 되도록 계곡 일대는 사람들로 붐볐다.

타고 왔던 버스에 다시 몸을 실었다. 우리들은 비 오듯 흘렀던 땀으로 온몸을 적시며 백운산을 넘었고 호박소계곡을 만났다. 힘들었던 산행 후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피로도 씻은 듯이 날려버렸다. 함께 했던 시간... 아쉬움을 남기고 다음을 기약하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사람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도 그 환한 물소리도 뒤로 하고서. 물소리 희미하지만 밤이 찾아오고 어둠이 깃들면 계곡물소린 홀로 깨어있으려나. 밤이 새도록 그 명징한 소리를 내며 그렇게 온밤을 깨어 있으려나. 어둠 속에서나마 고요가 깃드는 시간이면...

엄마와 함께 온 재혁...이젠 안 빠지고 등산에 참여하고 있다...
▲ 호박소 엄마와 함께 온 재혁...이젠 안 빠지고 등산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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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쉼표 찍는 시간...
▲ 호박소 아...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쉼표 찍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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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보다는 식보, 식보보다는 행보'라고 동의보감에서 말했던가. 하루에 30분 이상 걷는 사람과 걷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 크다고 했다. 오죽했으면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말까지 생겼으랴.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걷는 것은 꼭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등산은 쉼표 찍기다. 가끔은 잿빛 도시 속의 빡빡한 일상을 벗어놓고 '하나님의 속삭임' 속으로, 자연의 품에 한껏 안겨볼 일이다. 산은 우리가 지극히 작은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주는가 하면 그 작은 피조물이 얼마나 귀하고 위대한 존재인지를 또한 일깨워준다. 산은 말없는 말로 인내와 겸손을 가르친다. 산은 하나님의 그 위대하고 오묘한 창조솜씨를 일깨워주고 호연지기를 가르치며 마음 넉살을 키워준다.

가끔은 도시를 벗어나 숲으로 들어갈 일이다. 숲을 흔드는 바람소리, 바람이 잎새를 흔드는 것과 바위를 타고 흐르는 저 유장한 계곡물 소리 들으며, 바위도 나무도 모든 것을 핥듯이 어루만지며 키우는 햇살 받으며 자연 속에 묻혀 볼 일이다. 무거운 생각일랑 내려놓고 잠시 쉼표를 찍을 일이다. 가볍고 청청해질 일이다. 그렇게 다시 일상을 힘껏 살기 위해.



호박소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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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화

덧붙이는 글 | 산행수첩
1. 일시: 2012년 7월 21일 (토) 흐림
2. 산행: 포도원교회 등산선교회 7월 정기산행
3. 산행기점: 삼양교 옆 대형주차장
4. 산행시간: 4시간 25분
5. 진행: 삼양교옆 주차장(10:40)-몸풀기 운동-출발(11:00)-구룡소폭포(11:15)- 움막(11:25)-능선사거리(12:00)-휴식 후 출발(12:15)-백운산 정상(12:35)-하산(1:05)- 하산 도중 숲속 작은 공터에서 점심식사(1:25_2:00)-도로(2:55)-호박소 주차장(3:00)- 호박소계곡(3:05)



태그:#밀양 백운산 호박소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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