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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
▲ <경성 탐정 이상> 겉표지
ⓒ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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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희의 2012년 작품 <경성 탐정 이상>에는 제목처럼 <오감도>, <날개>로 유명한 시인 이상이 탐정으로 등장한다.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이상이 웬 탐정?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국 현대사 인물들 중에서 탐정으로 이상만큼 어울리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 건축기사이자 공학도였기에 두뇌회전도 괜찮고 숫자 계산에도 능할 것이다.

시인 특유의 시선으로 사건과 사람을 관찰하다 보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면을 꿰뚫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입담 좋은 소설가라면 사람을 설득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털어놓게 만들 수도 있다.

사건 수사에는 추리력이나 관찰력 못지않게 직감도 커다란 역할을 하니까 문인만의 독특한 직감도 한몫할 것이다. 이상이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일본에서 요절했다는 것도 왠지 신비로운 탐정의 분위기와 걸맞는다.

천재 시인과 룸펜 소설가

<경성 탐정 이상>의 무대는 1934년 12월의 조선 경성이다. 건강 문제로 조선총독부 건축기사 일을 그만둔 이상은 종로 1가에 '제비'라는 이름의 다방을 개업하고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한다. 동시에 이상은 일종의 문학동호회인 '구인회'에 가입하게 된다.

작품은 이상이 구인회 모임에 첫 참석하면서 시작된다. 이상이 모임이 열리는 장소인 조선중앙일보 회의실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역시 구인회에 새로 가입한 소설가 구보 박태원이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살 터울인 두 사람은 이곳에서 서로를 '구보', '상이'라고 부르며 가까워지게 된다.

하지만 구인회의 정식 가입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문단의 대선배인 염상섭은 정식 가입 조건으로 4월에 경성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해결하라고 말한다. 그 사건은 일본이 창경원으로 개명한 창경궁에서 일어났다. 벚꽃놀이 기간을 맞아서 창경궁을 야간개장한지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 문도 열지 않은 이른 아침에 한 여인이 목졸려 변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지 반년이 넘도록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으니 일본 경무국의 수사력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상과 구보에게 이 사건을 해결하라는 임무가 내려진 것이다. 구보는 당황하고 이상은 투덜대지만 모임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물론 구인회에 가입한다고 해서 당장 부와 명예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문단의 쟁쟁한 선배들 도움을 받으면 신문소설 연재라도 얻어낼 수 있다. 다방을 운영하는 이상과 달리 백수에 룸펜인 구보는 구인회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두 사람은 창경궁을 찾아가는 것으로 사건 수사를 시작한다.

일본 강점기 경성의 풍경

이상의 실제 성격과 스타일이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작가가 묘사하는 이상은 꽤나 탐정에 가깝다. 움푹 들어간 눈 속에는 빛이 번뜩이는 눈동자가 있고, 셜록 홈즈를 연상시키는 매부리코 밑으로는 선명한 인중과 두툼한 입술이 자리잡고 있다. 그가 강인한 눈에서 빛을 발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면 이상스러울 만큼 남들에게 신뢰를 준다.

엉뚱한 면도 있다. 구보가 <오감도>에 대해서 "정신이 해체되고 자아가 와해되는..." 식의 평을 하자 그의 말을 끊으면서 "됐소, 나는 생각없이 쓴 것이오"라고 말해서 사람을 민망하게 만들기도 한다.

잘 만들어진 팩션(Fact+Fiction)이 그렇듯이 <경성 탐정 이상>도 허구와 사실을 적절히 뒤섞고 있다. 실제로 이상은 1933년에 종로에서 '제비'라는 다방을 열었고 1934년에는 구인회에 가입했다. 구보 박태원은 이상의 둘도 없는 '절친'이었다. 1935년에는 다방을 그만두고 계속해서 사업실패를 겪었으니 1933-1934년이 이상에게는 가장 여유있게 창작에 몰두했던 시절이었을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고민은 있었을 것이다. 암울한 일본 강점기 시절, 펜으로 민중을 돕겠다는 카프문학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것도 아니다. 구보는 이상의 구겨진 양복과 허름한 뒷모습에서 그가 빠진 이율배반의 상황을 엿본다. 이상은 혼돈의 시대, 혼돈의 심리상태를 난해한 시어로 표현한 것이다. <경성 탐정 이상>을 읽다보면 이상이 요절했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깝게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 <경성 탐정 이상> 김재희 지음. 시공사 펴냄.



경성 탐정 이상

김재희 지음, 시공사(2012)


태그:#경성 탐정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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