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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그라피(Changdong-graphy)》포스터
 창동그라피(Changdong-graphy)》포스터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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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의 창동창작스튜디오는 꽤 먼 듯 보인다. 실제적인 거리상으로도, 심리적인 거리로도. 그럼에도 꽤 중요한 전시라 생각되어 현장을 찾았다. 스튜디오는 서울 도봉구 창동 소재, 서울의 외곽 지역에 위치해 있는데, 거의 '지속가능한 지역연계 프로젝트를 향하여'라는 주제로 17일 열린 창동창작스튜디오가 주최한 세미나의 거의 끝 무렵에 도착했다.

이번 세미나는 17일부터 8월 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이 개최하는 상반기 지역연계 프로젝트 결과보고전 '창동그라피(Changdong-graphy)'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열렸다. '창동그라피'는 프로젝트가 실시된 지역 '창동'과 '쓰인, 그려진, 기록된 것'이라는 뜻의 'graphy'의 합성어로, 창동의 기록을 전시로 옮겼음을 의미한다.

창동창작스튜디오는 지역 주민과 창작자를 연계하는 소통과 교류의 장으로서, 지난 3월 상반기 지역 연계 프로젝트를 실행할 작가를 공개 모집, 리금홍, 홍원석 작가를 최종 선발했다. 이 두 작가는 3개월간 창동 및 도봉구 일대를 중심으로 지역 주민 및 공동체와 커뮤니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술작가들의 창작 여건 활성화와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화를 위해 운영하는 창작스튜디오는 국내외 작가들 간 상호 경험을 공유하고 토론을 통해 창조적인 담론을 생산해 냄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에는 창동 외에도 고양창작스튜디오도 포함된다.

'창동그라피'전에서, 리금홍 작가는 창동에 거주하는 할머니들의 이름들을 낙관석에 새겨 전시하고, 이번 전시명이기도 한,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인명사전 <규방가사-각명기(刻銘記)>를 출판했다. 한편 홍원석 작가는 그동안 진행해온 '아트택시 프로젝트'의 연장선으로 '시발(時發)공짜택시'를 무료로 운행하면서 다양한 승객이 된 지역 주민들을 인터뷰한 영상과 창동 일대 지역을 담은 사진 및 회화 작품을 전시했다.

'타자 관계적인 예술로서 커뮤니티 아트'

파스칼 길랭,「매핑 더 커뮤니티아트: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창조적 에너지」 중에서, 『공적 영역에서의 예술의 역할: 지역재생의 과제와 커뮤니티아트』_2010 금천예술공장 국제심포지엄
 파스칼 길랭,「매핑 더 커뮤니티아트: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창조적 에너지」 중에서, 『공적 영역에서의 예술의 역할: 지역재생의 과제와 커뮤니티아트』_2010 금천예술공장 국제심포지엄
ⓒ 금천예술공장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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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에서 창동창작스튜디오가 '지역을 기반으로 해서 펼쳐지는 공동체 예술로도 번역되는 커뮤니티 아트(Community Art)'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기관의 홍보 및 전략 차원에서의 정체성에 대해 창동창작스튜디오의 김유미 매니저의 발표로 짧게 들은 이후, 토론이 이어졌는데, 가천대학교 김용익 교수가 '커뮤니티 아트'의 논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아 지향성, 타자 지향성, 전복적, 순응적', 이 네 가지 특성이 X축 Y축 도식으로 나뉜 도표를 설명하며 그 포문을 열었다(실제 도표와 김용익 교수가 언급한 용어는 차이가 있지만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지난 2010년 금천예술공장에서 열린 "공적 영역에서의 예술의 역할: 지역재생의 과제와 커뮤니티아트"라는 심포지엄에서 네덜란드 글로닝언 예술대학 파스칼 길랭 교수의 발표에서 차용해 온 도식으로, 이러한 분류법은 대다수 작가들은 자아 지향적인데 공공미술 내지는 커뮤니티 아트를 하는 과정에서 억지로 타자 지향적인 작업에 자신의 작업을 맞춰야 된다는 것으로서, 이날 현장에서의 논의가 어느 정도 압축됐다.

김용익 교수는 이 자아 지향적이고 전복적인 특성을 고수함에 의해 다시 타자 지향적인 결과를 맺을 수 있는 하나의 전복적 지점을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이 전환의 계기는 작가 스스로가 어떤 하나의 격식과 룰, 곧 공기관의 스튜디오 작가로 소속되어 거기서 주어진 미션 내지 지령에 얽매이지 않고, 그 자체만으로 어떻게 타자 지향적인 예술 작업을 만들 수 있느냐에 대한 다소 애매모호한 물음을 그 안에 담고 있었다.

일단 이는 자아 지향적인 곧 자신만의 예술 형식, 정확히는 '표현의 형식을 자신의 삶의 지층 속에서 도출해 내는 예술가'란 존재가 '그 삶을 아우르는 작업의 지형과 지향을 바깥 구역으로 확정 지음'의 문제로 볼 수 있고, 자율적이고자 하는 예술가에 대한 사회의 관용적인 수용이 필요함과 동시에, 예술가 스스로 이 바깥을 지향해 작업을 표현하는 데 대한 구체적인 접근의 방법론(메소드)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된다.

어떻게 보면 이 '타자 지향의 예술', 내지는 '타자의 예술'은 자아 지향의 전적인 외부가 아님은 분명하다. 가령 예술가는 자신의 내재적인 작업을 선보이지만 이는 분명히 외부의 시선과 대응하게 된다. 어떤 예술이든 보는 자의 참여가 뒤따라야 함은 원론적인 이야기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참여의 독자에 의해 완성되는 예술의 특성이 대표적으로 바르트의 텍스트의 개념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자아 지향(또는 자기 관계적)과 타자 지향(또는 타자 관계적)의, 두 개의 가치가 실제 어느 하나로 수렴되거나 합치됨의 지점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커뮤니티 아트가 어떻게 작가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을까의 물음

리금홍, 규방가사-각명기, 단채널동영상, 16분, 2012
 리금홍, 규방가사-각명기, 단채널동영상, 16분, 2012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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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중요한 것은 '타자 지향의 예술의 표현 형식을 개발'하는 것이고, '이 표현 형식이 이 타자들의 참여나 그들을 반영한 예술의 내용 자체가 되어' 예술가의 기존 작업의 형식과 상반되는 게 아닌, '그 자체로 다시 작품의 내용이 되는 과정과 방법론을 개발'하는 것의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표현의 형식'을 개발함은 다시 '내용의 실질'을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지역의 질서(현실)는 하나의 콘텐츠(내용이나 주제)가 아닌 그 자체의 표현 형식이 되어야 한다'.

이 점이 어떻게 보면 가장 많이 '공공예술과 예술가의 작업이 섞여 드는 지점에 있어 결코 합치될 수 없는 불가능성의 지점'을 애초에 새기고 출발하며 갈등의 지점을 발생시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이러한 생각은 리금홍의 작업을 보며 확실해진다. 결코 역사나 현실의 이름에 기입될 수 없는 소수자의 이름, 아니 그 이름조차 없는 사람들을 그 자체의 하나의 몫으로 계산하는 것은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말에 따르자면, 하나의 '정치적 목소리'를 만드는 것이다.

리금홍의 작업은 '그들의 이름을 하나의 예술의 표현 형식으로 제시'하는 것이고 이 표현의 내용은 이미 주어진 것들, 그러나 '사실 주어지지 않는 비사회적·비정치적인 은폐된 소수의 자리'가 되는 것이다. 이는 매우 단순하지만 정치적이고 또한 민주적이며 실제 민주주의의 은폐된 민주를 드러내는 정치적 주장이 된다. 동시에 매우 인간적이며 우리의 살갗에 부딪치는 선연한 감각을 제시한다.

'창동그라피' 전시, 타자의 이름과 그들의 흔적을 담다

홍원석,21세기 삐끼 창동시장 퍼포먼스 영상 컷, 2012
 홍원석,21세기 삐끼 창동시장 퍼포먼스 영상 컷, 2012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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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석의 작업은 '알려지지 않은 자의 이름들을 하나의 존재로 기입해 내며 병렬해 놓은 리금홍'의 작업에 비해 자신의 '시발공짜택시'를 탄 사람들이 그 체험과 기억들을 토대로 그린 작업들 자체를 '모음 형식으로 거칠고 투박하게 드러낸다'. 여기에는 '순수한 그네들의 관점들'이 투영된다.

이는 다시 '아마추어 예술가들의 작업'이 예술가의 작업이 곧장 될 수 있는가 라는 문제로 소급된다. 동시에 작가와 일반인의 경계를 허무는 태도를 전제한다. 한편으로 영상은 이 작업들 간의 진행 과정의 기록과 인터뷰 등을 담고 있다. 꽤 긴 러닝타임이고 꽤 긴 시간 동안 시발공짜택시가 참여 프로젝트의 성격으로 진행됐음을 짐작케 한다.

리금홍이 표현의 형식을 개발했고 소통의 장치를 그 자체의 표현으로 바꿈을 개발했다면,홍원석은 자신의 회화라는 매체 자체를 비우고 다른 이들의 표현을 하나로 조합하는 수집과 채집, 또한 '대화와 소통의 과정 자체의 주제'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비물질적인 동시에 신체적인 체험' 그 자체로 자신의 작업을 퍼포먼스로 환원하고, 이를 일부 기록화했다는 점에서 아카이브적 성격이 강한 전시를 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둘 다 집합적인 전시이지만 분명 그 두 전시의 성격은 매우 다르다.

커뮤니티 아트 전시의 두 가지 가능성

세미나 이후에 전시 오프닝 자리에서 리금홍과 함께 전시 파트너로서 긴밀하게 짝을 이뤄 온, 이수영 작가와 잠깐 나눈 대화에서 '공기관의 스튜디오가 커뮤니티 지향의 전시를 개최하는 데 있어 드러날 수 있는 문제점'을 짚어 낼 수 있었다. 이수영 작가와 리금홍 작가는 가령 가리봉동 조선족 음식문화를 리서치해 작업으로 선보이는 프로젝트를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네 분기에 걸쳐 진행한 바 있다.

일단 장소-특정적(Site-specific) 성격의 전시 성격을 넘어 '지역-특정적'이라는 개념에 더 부합될 것 같은 리금홍과 이수영의 전시는 어떤 지역에 대한 특별한 시선과 튼실한 리서치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이들이 커뮤니티 기반의 전시를 의도하는 기관의 의도에 맞춰 그 지역을 대상으로 작업을 만들어야 한다면, 자칫하면 오히려 이들이 가진 기존 작업의 성격을 제한하는 측면을 가질 수 있다.

'기관이 소재한 지역'이 작업의 소재로 적당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닌, 예술가 스스로의 동기와 연구가 뒷받침되는 가운데 이들이 선별한 특정 지역을 그것과 일치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커뮤니티 기반의 전시는 이중적으로 타자 지향의 예술이 되어야 할 수도 있다. '공기관의 미션과 그 형식에 맞춰야 하는 부분'과 '이 지역(타자)에 대한 관심의 눈을 열어야 하는' 두 가지 부분에서. 그래서 지역 연계 전시 내지는 커뮤니티 아트를 표방하는 성격을 내세우는 공기관이라면, 두 가지 측면에서 전시가 가능해질 것이다.

우선 자신의 지역으로 소급하지 않고, '스스로 지역을 찾아가는 작가들의 탐색'과 더불어 그들의 작품들을 모은 '아카이브 전시', 또 다른 전시로는 이 지역을 새롭게 발명해 낼 수 있는, 곧 '새로운 형식으로 동시에 스스로의 욕망으로 이 지역을 소재로 삼을 수 있는 작가의 발굴'과 더불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바로 김용익 교수가 꺼낸 화두, 곧 자아 지향적이고 전복적인 성격의 작가의 작업이 커뮤니티 아트가 될 수 있는 지점일 것이다.

[전시개요]
o 전 시 명: 2012년 창동창작스튜디오 상반기 지역연계 프로젝트 결과보고전 - '창동그라피'
o 전시기간: 2012. 7. 17.(화) ~ 8. 9.(목) (24일간) 
o 전시작품: 회화 및 영상, 설치 작품 18점 내외
o 전시장소: 창동창작스튜디오(서울시 도봉구 창동 601-107, ☎ 02-995-0995)
o 참여작가: 상반기 창동스튜디오 지역연계 프로젝트 참여작가 2인 - 리금홍, 홍원석

[부대 행사]
[전시설명 프로그램]
- 일시: 전시기간 내 평일 오후 1시
- 내용: 전시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전시해설 프로그램
- 대상: 일반인 및 단체(단체는 사전접수)

[어린이 교육프로그램: 창동 지도 그리기]
- 일시: 2012년 7월 23일(월) 오후 2시
- 내용: 홍원석 작가와 함께하는 미술실기 수업 (약 2시간)
- 대상: 초등학생

[작가 소개]
리금홍은 2009년 '짜장면 도해가' 프로젝트, 2010년 금천예술공장에 입주하여 '가리봉 옌볜타운' 프로젝트, 2011년 캔 파운데이션의 '오래된 집 재생 레지던시' 등으로 일상의 보이지 않는 틈을 발견하고 사소한 부분들을 기록해 내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오래된 집 재생 레지던시'는 성북동의 좁은 골목에 있는 집에서 평범한 사람이 남긴 흔적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이 외에도 '노마딕 레지던시'에 참여하여 몽골 남고비를 여행하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묻는 작업을 한 바 있다. 2012년 봄, 서울 창동에서는 할머니들의 이름과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를 담은 인명사전 <규방가사-각명기(刻銘記)>를 출판했다.

홍원석은 2006년 갤러리킹의 '야간운전' 개인전을 시작으로, 2007년 갤러리고도에서 '낯선손님', 2008년 갤러리도올의 '비상등', 2009년 갤러리현대의 'Window Gallery'전과 각종 기획전에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야간운전' 연작을 선보였다. 송은미술대상전, 중앙미술대전에서 수상한 바 있으며, 지난 2009년 이래 몇 개의 도시에 임시 거주하며 현지의 주민들과 만나 직접 운전을 하며 주민과 함께 이동하고, 예술적 표현 방식과 영역을 프로젝트 영상작업과 소셜 퍼포먼스로 확대하고 있다. 2012년에 국립현대미술관 창동창작스튜디오에서 회화작업과 더불어 소형승용차를 디자인해 다양한 연령층의 주민들을 태우고 목적지까지 동행하며 장소 특정적이면서 동시에 공동체 예술의 특성이 결합된 '시발(時發)공짜택시' 프로젝트를 진행해 화제를 모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아트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커뮤니티 아트, #창동창작스튜디오, #홍원석, #리금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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